바람의 아들
장혜영

  

                    

                                          7장 강물은 계곡을 따라 흐른다


                                                                   1


 
 의용군훈련소는 서울과 지방에서 모집된 각계각층의 젊은이들이 집중단기훈련과정을 거치는 곳이었다. 수백 명이 되었는데 그 속에는 수도 노동자들, 지방의 농민들, 기자, 회사원, 거리의 노숙자들까지 별의별 신분의 사람들이 다 있었다.
 대체로 자원병들이었다. 간단한 군사훈련과 사상 학습, 인민군대수칙과 규율을 공부했다. 군사훈련이라 해봐야 소총, 자동소총사격술과  수류탄 투척, 대열훈련, 행군 정도의 초보적인 것이었지만 군사교관들은 거의 중국 항일 전쟁이나 중국해방전쟁에 참가했던 전공자들로 사람들은 그냥 『로빠루』라고 불렀다. 그리고 문화 학습과 사상 학습을 책임진 정치지도원들은 대체로 남로당출신들로 북한 강동학원 같은 데서 『소련공산당사』『중국혁명사』와 마르크스주의이론들인 『변증법적 유물론』『자본론』등을 배운 사람들이었다.
 “공화국의 군대는 노농대중의 아들딸들로서 구성된 인민의 군대입니다. 인민군대는 남반부 인민들을 해방하는 영예로운 사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의 적은 이승만 괴뢰정부와 괴뢰군이지 남반부인민이 아닙니다. 새는 공기를 떠나 살 수 없고 물고기는 물을 떠나 살 수 없듯이 인민군대는 인민을 떠나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공화국의 군대는 남반부인민들을 언제나 부모형제처럼 친절하게 대해야 합니다. 인민들의 재산은 물 한 그릇, 바늘 하나, 실 한 오리라도 무상으로 가져서는 안 됩니다. 돈이 있으면 값을 치르고 돈이 없으면 마당을 쓸고 물을 긷고 장작을 쪼개주더라도 그 값을 치러야 합니다. 괴뢰군은 인민의 재산을 약탈하고 백성을 구타하지만 인민군대는 절대로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인민군대 내에서는 병사나 군관 사이에도 존댓말을 써야 하며 욕하거나 구타하면 군법에 넘겨 처리할 것입니다.”
 인민군대수칙과 규율을 학습하면서 박병술은 인민군이 어딘가 국방군과는 다르다는 인상도 들었다. 중국공산당이 장개석국민당과의 내전에서 이길 수 있었던 비결이 바로 팔로군이 엄수한 『3대三大규율8항八項주의』라고 한다. 그에 비하면 솔직히 국군의 군 규율은 해이한 데가 없지 않았다. 부대 내의 상하등급차이가 극심했고 병졸에 대한 장교의 구타와 학대가 노골적이었다. 아직도 일본군대시절의 인습이 남아 상관의 기압과  전횡이 만연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노동자와 농민이 주인이 된다는 민주공화국! 인민을 위한다는 인민군대!……
 이곳에서 느껴지는 전체적 분위기가 국군과의 대결에서 그들이 승리자가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들게 했다. 그들의 선동에 의하면 국방군은 한 줌도 못 되는 지주, 자본가정권의 하수인이 되어 인민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눈 괴뢰군이라고 한다. 빨갱이는 마누라도 공산화하고 사유재산도 국가가 강탈하여 공유하는 비적떼들이라고 들어왔던 남한의 선전과는 어딘가 다른 점이 있는 것 같다. 속으로는 어떻던 공산주의자들 역시 남한이 주장하는 자유나 민주주의를 부르짖고 있다.
 “우리가 말하는 자유는 인민의 자유이고 이승만이 말하는 자유는 소수인 지주, 자본가들만의 자유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민주주의는 인민내부에서의 민주주의이고 이승만이 말하는 민주주의는 지배계급내부에서의 민주주의입니다. 어느 자유가 진정한 자유이고 어느 민주주의가 참된 민주주의입니까?”
 들을수록 일리가 있다고 생각되었다. 어쩌면 부대에서 낙오하여 국군과 멀어지게 된 것이 차라리 잘 된 일인 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간혹 들곤 했다. 날마다, 시간마다 전시상황을 알리는 훈련소 벽보의 남한지도에는 인민군의 진격노선을 표시한 붉은 종이깃발들이 자고나면 몰라보게 빠른 속도로 부산방향을 향해 꽂혀가고 있는 걸 보면서 이제 승리는 틀림없이 인민군대의 편에 있을 거라는 확신이 굳어갔다.
 신념도 중요하겠지만 승리자의 편에 선다는 사실도 결코 그에 못지 않게 가치 있는 선택이 아니겠는가. 더구나 수천 년 역사는 승자는 왕이고 패자는 역적이라는 수많은 사례들을 알려주고 있지 않는가. 역사는 이긴 자가 쓸 것이고 그래서 진리의 독점자도 승리자일 것이다. 아니, 이 모든 이유를 떠나서 생명은 승리자의 전유물이라는 사실하나만으로도 이 선택의 의미는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솔직히 양심의 가책 같은 것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조국을 배반하고 군인의 사명과 신념을 배신한 역적으로 오명을 남기게 되었다는 수치심이 늘 박병술의 마음에 그늘을 던졌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그 어떤 선택도 정당화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승리자는 무엇 때문에 진리의 독점자가 되고 역사를 자기 뜻대로 쓸 수는 있어도 자신의 행위를 최종적으로 정당화할 수는 없는 것일까? 정당성과 진리는 모순 되는가.
 단기훈련을 마친 의용군은 새로 모집되어 오는 후기생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각기 인민군 여러 사단들에 투입되어 훈련소를 떠났다.
 박병술은 수십 명의 대원들과 함께 12사단에서 올라온 『팔로군』출신의 연대연락참모의 인솔을 받으며 중부전선으로 이동했다.
 남쪽으로 진격할수록 미군과 국방군의 연합방어전선에 의한 저항이 커져 인민군의 손실도 급증했다. 사상자 수가 부단히 늘어나 최전선사단들의 충원이 무엇보다 급선무로 제기된 것이다. 남반부출신의 의용병은 사상적으로도 무장되지 못했거니와 실전경험도 부족해 대체로 후방부대에 편입시켰다. 다만 군사훈련에서 우수한 성적을 보인 일부 대원들만을 최전선에 투입시켰다.
 박병술은 워낙 군인이었던지라 사격, 대열, 행군훈련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모범을 보여 전선으로 이동할 때는 벌써 분대장이라는 군함을 갖게 되었다. 게다가 워낙 체구가 거창한데다 힘이 장사고 성미까지 불같아 첫눈에 연락참모의 눈에 들었다.
 “전선엔 바로 박 동무 같은 군인이 필요하오.”
 인민군 12사단은 전쟁발발 3개월 전에 입국한, 원 중국인민해방군 소속 조선족군인들로 구성 된 부대이다. 사단은 여느 연합부대들의 순조로운 공격과는 달리 전쟁초기에 벌써 38선 인제, 춘천지역전투에서 국군 6사단의 강력한 저지선에 막혀 수차 무리한 공격을 감행하느라 엄청난 사상자를 내야 하는 불운을 겪어야 했다.
 병력손실이 워낙 커 충원이 부족한 상태에서도 전반 전선의 균형을 유지하고 속전속결의 작전방침에 따라 부대를 정비할 충분한 여유마저 없이 남진을 계속했다. 그러나 그 뒤로도 홍천전투와 죽령전투에서 두 차례나 더 국군의 타격을 받고 병력손실을 입었다. 안동 북부에 도착했을 때 사단은 전쟁 초기의 규모에 훨씬 못 미쳤지만 7월 30일에는 전선사령부의 명령을 받고 안동공격전에 투입되었다.
 보충부대로 지원된 의용군이 12사단 주둔지에 도착한 것은 안동공격전이 개시되기 사흘 전이었다. 그즈음 옹천지역 내성천에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있던 국군 8사단은 주동적으로 철수하여 방어진지를 안동시가지 북쪽 6km 외각 선에 옮겼다.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안동방어에 투입된 국군부대는 1군단 8사단의 3개 연대 병력과 수도사단 1연대를 합쳐 2만 5천 명 정도였고 그에 반해 안동공격을 준비하고 있는 인민군 12사단 병력은 9천명도 채 안 되는 열세였다. 그러나 인민군은 승리의 신심에 넘쳐 있었고 패전을 거듭한 국군은 사기가 저락되어 있었다.
 박병술은 분대원들과 함께 안동 북측 외각지점인 황새골 지역에 주둔한 대대본부에 배치되었다. 소대는 이화역이 가까운 논과 습지대가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국군 8사단 16연대의 1대대와 3대대는 도로변의 가수내를 따라 기서리 일대에 방어진지를 구축한 박병술이네 대대와 대치하고 있었다.
 불과 한 달 전까지도 자신이 속해 있던 국군을 적군으로 상대하고 총부리를 돌려야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착잡해졌다. 살아남기 위해서였다는 구실이 명분이 될 리가 없다. 그러나 살아남고 싶었다. 동료와 전우의 가슴에 총부리를 들이대면서라도 치사하게……
 전투가 벌어지면 적아쌍방은 아수라장이 될 것이 분명하다. 그 틈을 이용해 국군 측으로 넘어가면 어떨까.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섣부른 경거망동보다는 좀 더 형세를 관망하고 신중한 결론을 내리는 쪽이 보다 현명할 것 같았다. 지금은 인민군대가 승리할 것 같은 전세지만 그래도 최종 결과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기회를 보았다가 살아남을 수 있는, 승자의 편을 선택해야겠다는 자신의 교활하고 비열한 행위가 결코 정당할 수는 없지만 그런 자신의 이기적 삶의 욕망을 억제할 수는 없었다.
 7월 30일.
 드디어 사단지휘부로부터 안동 총공격명령이 하달되었다. 새벽 하늘을 가르며 붉은 신호탄 세 발이 기다란 곡선을 그리며 불 띠를 늘였다. 군복과 군모를 나뭇잎으로 위장하고 차가운 참호 속에 엎드려 공격명령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소대원들은 돌격로를 개척하는 전차의 엄호를 받으며 적진을 향해 돌격을 개시했다.
 날 밝기 전 여명의 어둠은 먹물을 풀어 놓은 듯 캄캄했다. 대포와 자주포의 발포소리, 기관총과 자동소총, M1자동소총소리, 육중한 탱크의 절컥거리는 무한궤도소리, 대전차로켓포의 귀청을 찢는 듯한 포성이 일시에 울리며 청각을 멍하게 했다.
 박병술은 자동총을 거머쥐고 어두운 논바닥 위를 털썩털썩 달려갔다. 때로는 논둑에 발이 걸려 넘어지기도 했다.
 주위에서 만세! 하는 함성이 천지를 진동했다. 저항사격 같은 것도 없었다.
 소대는 철길을 따라 이하역으로 돌격했다. 어느새 날이 희붐히 밝으면서 역 건물들과 신호등들도 보이고 소대의 앞에서 달려가는 남홍색 공화국기도 보였다.
 박병술은 마치 꿈을 꾸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 들었다. 얼마 전까지도 그의 눈앞에서 휘날리던 깃발은 태극기였고 6사단 군기가 아니었던가. 미국식 국군복장을 입은 전우들이었다. 그런데 어찌하여 자신은 국군이 아닌 인민군대속에서 소련식 인민군복장을 하고 국군의 진지를 향해 돌진하고 있는가.
 어이가 없어 그는 피식 웃었다.
 “박 동무. 힘을 내라우. 적들이 진지를 버리고 도망치고 있으니께 힘을 내서 추격하여 한 놈도 남김없이 처단하라우!”
 박 일병이 아닌 박 동무!
 아직까지도 귀에 선 말이다. ‘옛. 소대장님.’하는 말이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튕겨 나올 번 하여 등 곬에 식은땀이 쫙 내뱄다.
그런데 이상하다. 국군병사들은 그림자도 얼씬하지 않는다. 기차역의 여지저기에 쌓여 있는 모래포대들과 버리고 간 M1소총들, 탄약상자들만 지저분하게 널려 있을 뿐이다. 이처럼 쉽게 무너지다니. 저항 한 번 해보지 않고 도망부터 치다니. 이게 무슨 군대야. 싸워보지도 않고 도망치는 오합지졸이. 전쟁 첫날 현리전투에서 허둥지둥 도망치던 일이 새삼스럽다.
 하긴 누군들 죽기를 원하랴. 죽은 정승이 산 강아지보다 못하다는 말도 있지 않는가. 손자병법에도 36계 줄행랑이 최고라고 한다.
 죽으면 누굴 위해 죽고 살면 누굴 위해 사는 지도 똑똑히 모르는 이 전쟁. 죽은 놈만 서러울 지도 모를 일이다. 인민군대는 인민을 위한다 하고 국군은 조국과 정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사수한다고 하니 도대체 명분은 어느 쪽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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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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