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아들
장혜영

“막내아들을 찾으려고 집이며 가산이며 죄다 팔아버리고 올라가셨대요. 막내아들이 어려서부터 몸이 허약해 늘 앓았대요. 그게 걱정이 되어서……서울 가서 셋방 잡고 거리바닥에 난전을 펼치고 장사를 했지만……” 
 “아들을 찾지 못하셨나 보죠.”
 “네.”
 “자식이 부모를 버리다니?!”
 맥주를 따르는 일회용종이컵에 어디서 날아 온 것인지 하얀 모란꽃 잎 한 떨기가 떨어졌다. 파랑은 그대로 꽃잎을 입가에 가져다 대고 단숨에 잔을 비운다.
 “할머니는 평생을 남을 위해 살아오신 분이세요.”
 정도가 비닐포장을 벗겨 건네는 소시지를 받아 입 안에 넣으며 파랑은 마을 앞으로 굽이굽이 흐르는 냇물을 내려다 본다. 냇물이 햇빛을 반사하며 은빛으로 반짝인다. 그 빛이 파랑의 아름다운 얼굴에 날아와 금물결로 찰랑이고 있었다.  아까의 애수와 슬픔에 잠겼던 표정이 퍽이나 진지하고 강인한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런데도 할머니에게 차례진 것은 행복이 아니라 불행이었다는 사실에 납득이 가지 않아요. 하느님은 불공평해요. 권선징악이라는 말도 기만에 불과한 거고요. 착한 사람에게는 고통만 차례진다면 너무 억울한 거잖아요.”
 파랑의 눈빛이 강렬해지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의 경우가 다 그런 건 아니죠. 할머니의 경우는 특수할 수도 있잖습니까. 정직과 선이 반드시 구복의 목적에서 출발한 것이 아닐 테고 또 반드시 행복과 이어지는 것도 아니겠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운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름다움은 반드시 고통을 전제로 해야 된다는 현실논리도 불만스럽고 아름다움이 행복과 인연이 없다는 사실도 이상하네요.”
 지금까지 참된 인생을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정도였지만 그 참된 인생의 결과가 부당한 버림과 배신을 받은 고인의 억울함을 보상해 줄 적절한 이유를 찾기조차 힘들었다. 어쩌면 인생의 이 불공정함이 파랑이 이 세상을 향해 던진 저주의 원인인지도 모른다. 쩍하면 원칙을 배반하는 정당성에 혐오감을 느낄 법도 하다.
 “할머니는 평생 선善을 지켰지만 결국은 선의 버림을 받고 말았어요. 선은 할머니의 충성을 외면한 거지요. 선생님께서는 아마 할머니의 과거사를 들으시면 할머니를 우롱한 선이라는 기만에 분노하실 거예요.”
 맥주 한 병이 금방 바닥이 났고 두 번째 병을 터트려 컵에 따랐다.
 정도는 조용히 앉아서 파랑의 말만 듣고 있었다. 남을 위한 삶이 그 대가로 도리어 타인에게서 배신만을 돌려받았던 망자의 억울한 과거사가 파랑의 입을 통해 절절한 호소로 터져 나왔다.

 1950년 6월 25일.
 그날은 인순이가 둘째 아기를 임신한 지 4개월 되던 날이었다.
 첫애 때는 몰랐는데 둘째 애 임신은 유별나게 입덧을 했다. 입 안이 소태처럼 써 음식냄새만 맡아도 구토가 발작했다. 언제까지고 굶을 수만은 없는지라 억지로 보리밥 한 술을 입 안에 떠 넣으면 그대로 배 안의 위액까지 죄다 토해버리곤 했다. 이상하게 앉으나 서나 비릿한 고등어생선이나 명태생선이 먹고 싶어 감질이 날 지경이었다.
 보다 못해 남편이 제사 때 쓰려고 깊숙이 간직해 두었던 잣이며 벌꿀이며 챙겨들고 가평읍내 저잣거리로 떠났다. 그것을 판 돈으로 바다생선을 사오려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전날 아침에 가평 장터로 떠나간 남편은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산행길이라 왕복노정에 걸리는 시간만 해도 반나절이나 되었지만 그래도 새벽에 떠나면 둬 시간 장을 보고 어둡기 전에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가평 잣과 벌꿀이 이 고장 토산물로 원근에 소문이 나긴 했지만 워낙 집집마다 생계를 잇기 어려운 때라 뜻대로 팔리지 않는 모양이다.
 저녁이면 맛볼 줄 알았던 고등어생선국을 먹지 못하게 된 인순은 또 하루 굶주린 창자를 맹물로 달래며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내일이면 맛볼 수 있겠지. 그 생각을 하니 미리부터 입 안에 군침이 돌며 잠을 청할 수 없었다. 이리저리 뒤척이며 온밤을 뜬눈으로 밝히다가 닭이 첫 홰를 쳐서야 겨우 쪽잠에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천지를 진동하는 굉음소리에 놀라 잠을 깼다. 번갯불이 번쩍거리듯 누런 문창지가 벌건 불물을 투과하며 드르릉- 드르릉- 떨리고 있었다.
 배가 고파 밤새 울고 보채다가 늦게야 잠들었던 큰애가 잠을 깨어 또다시 바스라지게 울음을 터트린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 난거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 있는데 갑자기 출입문이 벌컥 열리더니 대한청년단에 다니는 남동생 경호가 후다닥 방 안에 뛰어든다.
 “전쟁이야! 빨갱이 놈들이 전쟁을 도발했다고. 누나 뭘 해. 얼른 일어나 피신해야지.”
 피신이라니?
 자기 집을 버리고 고향을 떠나 어디로 피난을 간단 말인가. 더구나 가평 간 남편도 아직 귀가하지 않았다. 나 혼자 자식들을 데리고 임신한 몸으로 어딜 도망친단 말인가.
 “난 안 가. 너 혼자 가.”
 “누나. 죽고 싶어? 여기 있다가는 꼼짝없이 빨갱이들의 총에 맞아죽을 거란 말이야.”
 경호는 무작정 누나의 팔을 잡아 일으켰다. 그리고는 울고 있는 조카애를 누나의 잔등에 올려놓고 담요를 씌워준다.
 “빨리 빨리 서둘러야 돼. 어물거리다가는 모가지가 날아난단 말이야.”
 “경호야. 누난 못 가.”
 “왜?”
 “가평 장에 가신 네 매부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어.”
 “매부 절로 알아서 진작 피난가지 않았을 가봐. 걱정 마.”
 “내가 왜 피난 가. 죄진 일도 없는데. 땅 파먹는 농부일 뿐이잖아.”
 “누나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는구나. 나 누구야? 누나 동생 맞지?”
 “그런데?”
 “대한청년단이잖아. 빨갱이들이 잡아 죽이려고 눈에 불을 켜는 반동분자라고. 그리고 형은 뭐지? 국군이라고. 빨갱이들이 말하는 괴뢰군이라고. 그러니까 반동가족성원인 누난 두말없이 총살감이지. 여기서 이렇게 입씨름할 사이가 없어. 개놈들이 얼마  안 있으면 밀고 내려올 테니까.”
 “가더라도 짐은 챙겨야……”
 “죽고 사는 판에 짐이 다 뭐야. 몸만 떠나. 살아남기만 하면 모든 것이 다 있어. 그리고 우린 다시 돌아올 거라고.”
 경호가 무작정 등을 떠미는 통에 인순은 등에는 아기를 업고 배에는 태아를 임신한 몸으로 기우뚱기우뚱 힘겹게 집을 나섰다. 북쪽 산 너머에서 새벽어둠을 불사르며 검붉은 화광이 번뜩였다.
 밖에서는 어느새 간편한 보퉁이들을 이고 진 친정식구들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날이 밝자 양평으로 이어진 도로에는 피난민들이 길게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인순이네만은 임신부인 그녀가 운신이 힘들어 종일 걸었지만 20 리도 걸으나마나 했다. 날이 어두워지자 어느 절간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난 집으로 돌아갈래.”
 인순은 다시 고집을 부렸다. 피난길에서 내내 사람들을 살펴보았지만 남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지금쯤 집에 돌아와 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안 돼. 마을은 벌써 빨갱이들 손에 들어갔을 거다.”
 이번에는 친정아버지가 나서서 딸의 경거망동을 제지한다.
 “남쪽으로 가는 길이 이길 하나뿐이 아니니까 내려가다 보면 언젠가는 만나게 될 테이니 걱정 말거라.”
 “내려오지 않으면 어떡해요?”
 “왜 내려오지 않겠어. 빨갱이들 손에 죽으려고 환장을 했으면 몰라도. 거기 남아 있을 리가 없지.”
 피난길 내내 인순은 남편을 걱정했다. 돌아갈 수 없는 북녘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속절없이 눈물만 흘렸다. 그래도 다행스럽게도 자지러지게 울던 큰애가 언제부턴가 탈진한 듯 울음을 딱 그치고 잠잠해졌다. 친정엄마의 등에 업혀 잠이 든 모양 인기척이 없다. 그 애가 굶어죽은 걸 발견했을 때는 벌써 여러 날 째 걸어 이천을 지나 용인부근에 도착했을 무렵이었다. 하도 잠잠하기에 등에서 내려보니 혀를 빼문 애의 입가에 파리 떼가 새카맣게 모여들어 있었다.
 눈물도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목이 메어 말도 나가지 않았다.
 인순은 두 손으로 자신의 빈약한 가슴만 아프게 집어 뜯었을 뿐이다.
 “안 갈래요. 자식을 타향에 묻고 나 혼자 어딜 가요. 여기서 같이 죽을 거예요.”
 자그마한 봉분에 엎드려 손가락에 피가 나도록 허볐으나 경호와 친정아버지는 또다시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죽은 사람은 죽고 산사람은 살아야 한다. 더구나 넌 홀몸도 아니잖니. 복중의 핏덩이라도 지켜야 할 것 아니냐.”  
 그렇게 큰애를 용인 땅에 묻어두고 길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전선에서의 국군방어 작전은 날이 갈수록 수세에 몰려 패전을 거듭하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오산 땅에 이르러 경부국도에 올라서니 도로위에는 국군패잔병들과 서울에서 쏟아져 내려온 피난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모두들 국군의 한강방어선이 무너지고 인민군이 한강을 도하하여 남쪽으로 밀고 내려오고 있다고 쉬쉬하며 불안한 표정들이었다.
 뒤숭숭한 가운데 피난민행렬은 뒤죽박죽 엉키고 설쳐 차량이며 수레며 가축들이며 사람들이며 마구 뒤엉켜 경부선국도를 꽉 메운 채 시작도 끝도 없이 길게 장사진을 이루고 느릿느릿 거북이걸음을 한다. 수레바퀴가 굴러가는 덜커덩 소리, 서로 길을 다투는 욕지거리소리, 어린애들의 자지러진 울음소리, 가축들의 거친 울음소리, 차량들의 엔진소리는 먼지와 배기가스와 똥 구린내와 범벅이 된 채 도로위에 군림했다. 피난민들의 행색 또한 초라하고 남루하기 그지없다. 해어진 옷, 먼지를 뒤집어쓴, 삼 검불 같이 헝클어진 머리카락, 누렇게 뜨고 여윈 얼굴, 초조하고 불안한 표정, 험상궂게 찌그러든 면상……
 게다가 우군인 미군의 공중오폭까지 잦아 피난민들의 수난은 더욱 극심했다.
 육중한 폭격기편대가 하늘을 까맣게 덮으며 도로위를 걷는 피난민들의 머리 위로 날아오면 저마다 알아서 급급히 길옆의 은폐물을 찾아 재앙을 피해야만 한다.
 그러나 임신한 불편한 몸으로 여러 날 동안 걸어 내려 온 데다 굶주림까지 겹쳐 인순은 운신은 고사하고 이제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맥조차 없었다. 친정아버지와 남동생의 부축을 받으며 거의 끌려오다시피 했을 뿐이다. 언제나 폭격기편대는 갑자기 나타났기에 급히 피한다고 해도 노인들이나 어린애들은 인명피해를 입기가 십상이었다.
 공습 때면 인순은 젖 먹던 힘까지 다 내어 뛰었다. 자기 때문에 남동생과 친정식구들이 피해를 입어서는 안 된다는 자각에서였다. 이를 악물고 다리를 움직일 때마다 하복부가 찢겨나가는 듯한 통증이 발작했다. 사실 그런 진통은 이천을 지나면서부터 벌써 가끔씩 발작했던 증상이다.
 그날도 공습은 불의에 감행되었다.
 먼저 폭격기편대를 호위하고 온 전투기가 기수를 낮추더니 피난민 행렬 위를 스칠 듯 지나가며 맹렬한 기총소사를 했다. 뜨거운 열풍이 확 풍기며 기총탄이 대각선을 그으며 도로위에 쭈르륵 박혀 나갔다.
 어디선가 벌써 비명소리가 들려왔고 어린아이와 할머니 한 분이 팔을 허공중에 허우적거리더니 맥없이 땅바닥에 넘어진다. 이어 육중한 폭탄이 투하되는 소리가 쒸-이익- 요란하게 울리며 폭격기의 시커먼 배때기에서 줄줄이 떨어졌다.
 “빨리 엎드려!”
 경남이 다급한 소리를 지르며 운신이 힘든 누나를 길 옆 웅덩이에 떠밀어 넣었다.
 털썩!
 웅덩이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복부에 강한 충격을 느낀 인순은 정신이 아찔한, 극심한 통증을 느꼈다. 
 낙태구나!
 번개같이 뇌리를 스치는 예감이 그녀를 전율시켰다. 순식간에 하신이 축축하게 젖어들었고 피비린내가 확 풍겼다. 급히 치마를 쳐들고 보니 땅바닥에 호박 만한 핏덩이가 쏟아져 있었다. 인순은 저도 모르게 몸서리를 치며 두 눈을 감았다. 그 자리에서 맥을 버린 채 의식을 잃어버렸다.
 인순은 정신을 잃은 채 꼬박  한 주야를 남동생 경호의 등에 업혀서 이동했다.
 그러나 그녀가 자식을 잃고 낙태까지 하고도 자살하지 않고 살아남게 된 것은 하느님이 점지해 준 또 다른 자식들 때문이었다.
 피난길에서 폭격을 만나 부모와 헤어지고 고아가 된 두 형제를 우연히 슬하에 두게 되었던 것이다.
 “하늘이 저한테 점지해 준 거예요.”
 친정식구들이 말렸지만 인순은 그 애들을 품속에 부둥켜안은 채 한사코 놓아주질 않았다. 그때 그들 형제는 맏이 영식이가 4살이었고 동생 영수가 2살이었다.
 인순은 영식은 자기가 업고 영수는 툴툴거리는 경호 등에 업혀 부산까지 내려갔었다. 나중에 피난길에서 친정집 식구들과는 헤어지게 되었지만 그 애들만은 늘 품속에 껴안고 다녔다. 친정식구들은 그때 흩어진 뒤로 지금도 죽었는지 살았는지 그 행방을 모른다.
 부산에 도착한 인순은 걸식으로 애들을 먹여 살렸다. 틈틈이 삯빨래도 하고 부두에 나가 그물에 걸린 고기도 땄다. 때로는 먹을 것이 없으면 거리에 나가 쓰레기통을 뒤져서라도 애들만은 굶기지 않았다.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고 서울이 수복되자 인순은 애들을 데리고 고향인 가평으로 올라왔다. 그때에야 그녀는 남편이 피난을 하지 않았으며 의용군에 입대해 인민군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인순은 하루아침에 빨갱이가족이 되었고 마을사람들의 비난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녀는 한번도 인민군에 입대해 아내에게까지 누를 끼친 남편을 원망해 본적이 없었다. 누군가 죄가 있다면 그것은 남편이 아니라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남편의 자식은 하나도 지켜내지 못했으니 말이다.
 그녀는 묵묵히 아들을 기르며 남편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살아 있다면 언젠가는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무심한 세월은 눈 깜짝할 사이에 그녀의 청춘을 약탈해 갔고 얼굴에 깊은 주름살을 파놓고 머리에 흰서리를 뿌렸다. 그래도 남편은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인순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그녀의 믿음은 일편단심이었다.
 아이들은 대학까지 공부시켰더니 어느 날인가 느닷없이 제 부모를 찾아 서울로 훌쩍 떠나가 버렸다. 그녀는 혼자 남았다. 그러나 인순은 자식들을 원망하지 않았다. 그들이 잘 되기만을 바랐을 뿐이다. 노년에는 늘 몸이 허약해 알음자랑을 하던 영수가 걱정되어 가산마저 다 팔아버리고 애들이 산다는 서울로 올라왔다. 돈을 벌어서 그 애에게 보약이라도 지어주고 싶었던 것이다. 영수가 어려서 홍역을 앓아 죽을 번했을 때도 인순은 엿 장사를 해서 살려냈었다.
 그러나 영식이와 영수는 끝내 엄마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신문에 사람 찾는 광고도 수 없이 내보냈지만 모두 강물에 돌 던진 격으로 종무소식이었다.……

 이야기는 어찌나 긴지 서울로 올라오는 차 안에서도 계속되었다. 왕십리를 지나서야 고인의 과거사는 끝났다.
 파랑의 말이 사실이라면 고인의 일생은 너무나 불행하다.
 할머니의 집에 다시 들렀다. 유품을 정리해야만 했다.
 벽에 걸린 사진들을 떼내어 차에 실었다. 그런데 그 대관령설경액자를 벗겨 내리자 그 뒤에서 웬 편지봉투 하나가 방바닥에 툭 떨어졌다.
 무심코 봉투를 집어 들고 보니 거기엔 이런 글 한 줄이 비뚤비뚤하게 적혀있었다.

 이 도늘 우리 영수 몸 보양하는 데 보태 써라.

 파랑은 말없이 고개를 돌린다.
 정도도 콧등이 시큰해났다.
 누구도 돈의 액수를 세어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돈 액수 같은 게 무엇이 그리 중요하랴. 그 돈이 얼마이든지간에 자식에 대한 망자의 마음에는 못 미칠 것이다.
 “너무너무 불공평해요. 인생은.”
 파랑은 나직이 속삭였다. 그녀의 두 눈에 맑은 이슬이 맺혀 찰랑거렸다.
 도대체 인생이란 어떻게 살아야 되는 걸까?
 정도는 느닷없이 아내의 외할아버지가 쓴 자서전이 생각났다.
 다시 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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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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