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아들
장혜영

 

                               
                                                                    2

 

 정도는 확대경을 들고 금방 현상된 밀착 인화지를 면밀히 관찰했다.
 역광을 이용한 늦가을의 호수는 춘천 의암호가 틀림없다. 산백양이 무성한 섬 풍경을 화면의 중경에 잡고 원경에는 병풍 같은 호수를 둘러 싼 산줄기들과 근경에는 출렁이는 수면과 단풍 든 은행나무들을 적절하게 선택한 작품이다.
 1/16~1/4슬로셔터촬영효과로 소슬한 가을바람에 날리는 은행낙엽과 출렁이는 물결의 동감은 물론 청각까지 유도할 만큼 심상이 섬세하고 생동하다. 하이라이트와 그림자 부분의 분리에 의한 강한 입체감과 원근감은 모노톤 선택으로 더욱 선명하다. 이런 작품은 프로작가들도 촬영하기가 쉽지 않다.
 작위적인 노출오버효과로 석양의 황적색의 기다란 산그늘에 묻힌 적설 속의 고색창연한 사찰은 자신의 어마어마하게 큰 그림자를 거느린 채 고즈넉한 산사의 이미지를 넉넉한 표정으로 보여주고 있다. 화면중경을 장식한 검은 윤곽뿐인 법당 처마 밑의 구리풍경은 허상의 세계의 상징처럼 희미하면서도 분명하다.
 겨울 자작나무숲은 뿌리도 잎도 상, 하단이 죄다 잘린 채 앙상한 줄기들로만 화면을 꽉 채우고 있다. 그림자도 명암도 없는 이른 새벽의 순광 속에서 희읍스름하게 빛나는 자작나무줄기들은 희미한 배경 속에서 줄기찬 곧음만을 지향하며 얼음 같이 차가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순광 속에서도 피사체의 질감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이다. 거의 신들린 듯 고난도의 촬영을 무난하게 소화하는 파랑의 기량이 돋보인다.
 “프로사진작가로 활동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거야. 한 컷, 한 컷 죄다 명작들이잖아.”
 짧은 시간에 이처럼 눈부신, 장족의 발전을 보여준다는 건 실로 놀라운 일이다. 천부적 재능이 없는 보통사람들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이 사진들은 20년 가까이 카메라를 만져온 정도와 비겨도 조금도 짝지지 않는 것들이었다.
 “어쩐지 범상한 아가씨가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어.”
 아가씨!
 그녀는 이미 아가씨가 아니다. 연상의 남자와 결혼한 유부녀이고 아줌마이고……
 아니다. 파랑은 정도의 마음 속에서는 영원히 아가씨일 것이다……
 띤-따- 랄라- 띠리리- 랄라-
 갑자기 휴대폰벨소리가 울렸다.
 광혁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전화를 걸어오는 광혁이다.
 그러나 지난 달포 가량은 전화가 없이 조용하게 지냈었다.
 그런데 웬일인가. 미경이가 또 진남이 녀석과 관계를 회복한 걸까? 오늘도 11시가 넘었는데 미경은 아직 스튜디오에 얼굴을 내밀지 않고 있다.
 전화번호를 확인하지도 않고, 시선은 파랑의 사진에서 떼지 않은 채 전화를 받았다.
 “네. 패밀립니다.”
 이상하게도 휴대폰에서는 잉잉거리는 전류의 흐름소리만 들릴 뿐 말이 없다.
 “전화를 주셨으면 말씀을 하셔야죠.”
 전화를 들기 바쁘게 휴대폰이 터지라고 왁작 고아댔을 터인데 은밀하게 상대방의 동정을 살피는 조심스러운 품이 광혁이는 아닌 것 같다.
 혹시 파랑 씨가?
 번개 갗이 뇌리를 스치는 예감이 정도를 바싹 긴장시켰다.
 “여보세요. 윤정돕니다. 혹시 은파랑 씨가 아닌지요?”
 “네.”
 “아, 역시 파랑 씨였군요. 제 예감이 적중……”
 “절 좀 도와주실래요?”
 조금은 성급한 어조다. 상대방의 말허리를 자르는 경망한 언행을 할 만큼 무례한 파랑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얼마나 긴박했으면 결례를 무릅쓰면서까지.
 “그럼요. 무슨 일인지 말씀만 하세요. 다리 상처가……”
 “할머니의 병환이 위독하세요. 병원으로 이송해야겠는데……”
 “할머니라니요?”
 “독거노인 말이에요. 전번에……”
 “네네. 알겠습니다. 금방 갈 게요.”
 정도는 통화를 끊기 바쁘게 스튜디오를 나섰다. 셔터도 내리지 못하고 출입문만 잠그고는 뒷골목을 에돌아 달음박질을 쳤다. 독거할머니가 사시는 셋방은 사진관에서 멀지 않았다.
 골목길에는 파랑의 차인 듯 외제차가 세워져 있다.
 대문은 열려 있었다. 5m 되나마나한 뜰을 지나면 출입문이다.
 “파랑 씨.”
 이름을 부르며 방안에 들어서니 어두컴컴한 방 가운데 할머니가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파랑은 노인의 이마에서 흐르는 피를 손수건으로 닦아주고 있었다. 초조함 때문인지 그녀의 보송보송한 이마에 구슬 같은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어쩌다가?”
 “혼자서 화장실 다녀오시다가 부엌에서 넘어지신 것 같아요. 들어와 보았더니 피를 흘리며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어요. 맥을 버리고 누워계셔서 혼자 들 수도 없고. 길 지나가는 사람도 없고. 바쁘신 줄 알면서도 이 동네에는 아는 사람이라고는 선생님뿐이기에……”
 “잘 부르셨습니다. 미안해 하실 거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잖아도 할 일이 없어서 무료했었는데. 자. 할머니를 제 등에 업히세요. 어서 병원으로 옮겨야죠.”
 제일 가까운 순청향병원을 향해 차를 달렸다.
 “돌아가시지 말아야 할 텐데요.”
 파랑은 차를 운전하면서도 연신 룸미러를 통해 뒷좌석에 죽은 듯이 늘어져 있는 할머니를 살펴 본다.
 “제가 보기에는 이미 희망이……”
 파랑에게는 너무 잔혹하게 들릴 것 같아 뒷말을 삼켜버렸다. 인간에 대한 불신과 저주를 넘어 복수까지 꿈꾸고 있는 파랑에게는 할머니와의 우정이 인간 세상에 대한 마지막 미련일 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정도와의 인연도 있지만 아직까지 뭐라고 이름 짓기도 애매한 관계일 뿐이다. 그냥 호기심 차원에 그치는……
 “저 때문이에요. 저 때문에 사고치신 거예요. 자주 와서 보살펴 드렸어야 했는데……”
 파랑의 말꼬리가 물기에 젖으며 가라앉는다. 친할머니도 아닌데. 책임 같은 것도 없을 것이고. 인간을 향한 따뜻한 인정은 아직도 그녀의 가슴 속에 초불처럼 타오르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설사 어떤 앙숙으로 누군가를 복수하려고 한다 하더라도 그건 그녀의 마음의 전부의 모습은 아닐 것이다.
 환자를 다급히 응급치료실로 옮겼지만 느낌은 어쩐지 불안하다.
 로비 소파에 앉아 진단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두 사람은 침묵을 지켰다.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이 순간 그들이 공유할 화두는 죽음 하나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죽음을 앞에 두고 천연덕스럽게 자연이며 촬영이며 날씨 따위를 운운할 분위기도 아니었다.
 침묵의 공간을 메울 수 있는 언어는 침묵 뿐이다. 침묵은 기대이고 소망이고 기도이다.
 20분도 채 안 되어서 응급치료실문이 열리더니 의료진이 나왔다.
 파랑은 본능적으로 소파에서 일어났으나 입은 열지 못했다. 죽음 앞에서 너무나 담담한 의사의 표정은 누구도 읽을 수 없을 만큼 모호한 것이었다.
 정도가 파랑 대신 앞에 나서며 한마디 물었다.
 “어떻게 됐습니까?”
 “돌아가셨습니다.”
 그 표정이나 억양이 어찌나 태연한지 살아났습니다. 라고 말하는 듯싶었다. 그리고는 조수와 점심식사를 뭐로 할 것이냐며 일상의 담소를 나누며 그들의 옆을 지나갔다. 사실 죽음은 의사들보다도 더 태연하고 조용하게 정도와 파랑의 앞으로 지나갔다.
 파랑은 조용히 돌아서서 창문가로 걸어갔다. 그녀의 오른손이 핸드백에서 손수건을 꺼냈고 이어 눈가로 옮겨졌다.
 정도는 슬프다고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눈물 같은 건 나오지 않았다. 할머니의 타계보다는 오히려 눈물을 흘리는 파랑이 더 측은해 보인다. 어쩌면 파랑이 매달렸던 인간에 대한 최후의 미련이었을 지도 모르는, 피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할머니의 느닷없는 사망은 정도로서는 그 깊은 의미를 모를 만큼 거대한 충격이고 아픔이고 절망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할머니에게 그녀는 위안이 되었을 것이지만 그녀에게도 할머니는 위안이 되었을 것이 틀림없다.
 자식들의 버림을 받은 할머니의 장례는 파랑과 정도가 치러줄 수밖에 없었다. 할머니네 집의 낡은 옷궤 속에는 언제 마련해둔 것인지 수의가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었다. 수의와 할머니의 이부자리, 옷가지들을 차에 싣고 화장터로 달려가는 내내 파랑은 침묵을 지켰다. 4월의 하늘은 여전히 화창했고 모란꽃은 화사하고 봄을 맞이한 시민들의 얼굴엔 웃음꽃이 활짝 피어 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누군가가 애석하게 죽었다는 사실은 아무도 아는 것 같지 않다. 어느 화단 밑에서 개미 한 마리가 죽은 것처럼 일상은 그런 것에는 왼눈 하나 팔지 않고 춤을 덩실덩실 추며 내달린다.
 그래도 그 죽음을 슬퍼하는 파랑이 있다는 현실 하나 만으로도 할머니는 행복한 분이시다. 파랑의 가슴속에 남을 수 있다면 정도는 지금이라도……
 아니. 내가 무슨 허황된 생각을……
 모든 것은 침묵 속에서 진행되었다.
 간단한 영결식이 끝나자 시신은 불 속에 들어가 순식간에 한 줌의 잿더미로 변했다.
 유골함을 받아들자 그제야 파랑의 굳게 닫혔던 입이 열렸다.
 “어떻게 해야죠?”
 “글쎄요. 그냥 강이나 산에 뿌리는 게 어떨지요.”
 “할머니의 고향땅에 유골을 뿌려주고 싶어요.”
 “고향이 어딘 데요?”
 “가평 안새 골이에요.”
 “아니, 강원도라면서요?”
 “그건 나중에 이사한 거죠.”
 정도로서는 그녀의 제의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고인에게 파랑은 자식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안새골은 차도 통하지 않는 오지이다.
 국도를 타고 북쪽으로 주행하다보면 비포장도로가 나타나고 나중에 그마저 소실되면 도보로 산길을 걸어 들어가야만 한다. 도로 주변과 오지의 자연풍광은 무르익은 4월의 봄철을 맞아 온통 꽃 바다가 펼쳐졌지만 오늘 만큼은 누구도 자연에 흥취를 느끼지 못했다. 인간의 죽음을 너무도 하찮게 받아들이는 자연의 축제 분위기가 도리어 파랑에게는 눈꼴이 시였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정도는 못내 카메라를 휴대하고 오지 못한 것이 후회 되었으나 속마음은 드러내지 않았다. 이런 곳에, 관광지도에도 표시되어 있지 않은 이런 편벽한 시골에, 농부의 고달픈 삶만 때 묻어 있을 거라고 여겼던 산간벽지에 이처럼 수려한 자연풍광이 숨어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고인이 살던 고향집은 이미 허물어져 폐허가 돼버린 지 오래었다. 앞뜰과 뒤울안엔 쑥대만 무성했다.
 고인의 유골을 집 주변이며 뒷산이며 마을 앞 냇가에 골고루 뿌렸다.
 “할머니께서 왜 고향을 버리고 낯선 서울로 올라가신 겁니까?”
 마을의 자그마한 가게에서 산 맥주와 마른 안주를 들고 뒷산으로 올라갔다. 노란 개나리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난 양지바른 언덕에 자리 잡고 나란히 앉았다. 산수유 꽃들과 모란꽃이 피어난 골짜기에는 꽃물결이 넘실거렸고 그윽한 꽃향기가 은은하게 풍긴다. 편연재 "바람의 아들"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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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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