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아들
장혜영





                                                                    에필로그

 


 
  갓난아기는 한 달 만에야 병원에서 출원했다. 조산이 원인인지는 모르나 체중 미달에 폐활량 불량, 심장기능 저하 등 선천적 체질장애가 극심해 병원간호가 불가피했던 것이다. 그러나 설령 아이의 상태가 양호하여 며칠 안에 퇴원이 가능했다고 하더라도 정도는 거취 문제 때문에 선 듯이 아기를 받아 안고 병원문을 나서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도 아기를 품에 안고 일단 병원을 나서긴 했지만 방향감각을 잃은 채 차 안에 우두커니 앉아만 있었다. 집으로 안고 갈 수도 없었다. 미미에게 아기 신분을 밝힐 용기도 없었고 거짓말을 할 만큼 허위적이지도 못했다. 설령 어린 미미는 속여 넘긴다고 해도 어머니 양진옥은 뭐라고 속인단 말인가. 더구나 양진옥은 생모도 아니잖은가. 게다가 양진옥은 불륜에 상처를 입은 여자여서 아기의 출신에 민감할 것이 틀림없다.
 이럴 때 생모가 계셨으면 얼마나 좋으랴 싶었다. 그녀는 당신의 경험을 미루어서라도 이 불륜의 씨앗을, 불행한 사생아를 선 듯이 품에 받아 안으실 것이다. 그러나 생모는 아직도 교도소에서 수형을  살고 있는 죄수이다.
 애를 맡길 만한 친구 준범이도 죽었다. 여동생 윤미경이도 가출한 뒤 여태 귀가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애완동물처럼 어디 감춰두고 기를 수도 없다.
 불현듯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습이 있었다.
 아버지였다.
 그곳에 보내면 이 사실을 누구도 모를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가 받아 주실까?
 불륜의 씨앗이라고 질타하시고 내치시지는 않을까. 이름도 없고 출생 신고도 하지 않은, 이 세상이 용납하지 않는 아기니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아버지 말고는 찾아 갈 사람이 없다. 갔다가 쫓겨 오는 한이 있더라도 일단 시도는 해 보자.
 차에 시동을 걸고 싸리골을 향해 출발했다. 인젠 눈에 익은 풍경들이 차창 밖으로 춤을 추듯 흔들흔들 지나갔다. 진달래, 산수유, 목련은 물론이고 인젠 철쭉꽃과 벚꽃마저도 죄다 졌지만 5월 말의 숲은 흐드러지게 살져 있다. 소나무들과 전나무들은 자작나무들과 백양나무들과 어울려 북극 고산지대의 이색적인 풍경을 한껏 자랑하고 있다.
 차를 싸리골까지 곧장 몰고 올라갔다. 도중에서 몇 번이나 아기가 울고 보채어 차를 세우고 기저귀도 갈아주고 우유도 먹여야 했다. 다행이도 차가 산길에 접어들자 아기는 잠이 들었는지 잠잠하다.
 초야에 파묻혀 시골노인이 된 아버지 앞에 양복차림으로 차를 운전하고 거들먹거리며 나타나는 게 불경이고 방종이라는 민망한 생각이 없지 않았지만 오늘 만큼은 아기 때문에 별 수 없었다.             
 차를 초옥에서 보이지 않는 비탈 아래 세워 두고 아기를 품에 안고서 뜰로 올라갔다.
 언덕위에 올라 선 정도는 눈 앞에 벌어진, 이전과는 달라진 집 주변의 변화한 모습에 놀랐다. 장승들은 어디 갔는지 하나도 보이지 않았고 돌탑들도 절반이 넘게 사라졌던 것이다. 헐렁한 베적삼을 걸치고 목에 수건을 두른 아버지는 땀을 뻘뻘 흘리며 한창 돌탑을 헐어내고 있었다. 헐어낸 돌들을 하나하나 골짜기 아래 냇가로 굴러 보낸다.
 정성껏 깎고 쌓아 올렸던 장승들을 뽑아버리고 돌탑들을 헐어버리는 이유가 뭐지?
 그만 어안이 벙벙해지고 말았다. 돌탑이 어머니 채순희의 우상이었고 사랑의 상징이었다면 아버지 윤도율에게 그 우상들은 어머니 채순희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마음속의 우상들을 헐어버리다니?
 혹시 정신상태가?……
 아버지의 정신상태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느낀 건 오늘 갑자기 떠오른 생각이 아니었다. 다만 그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믿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까닭인즉 그것은 아버지의 존엄과 절대적 권위의 붕괴를 의미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정의와 정당함의 상실을 의미하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무슨 연유로 최근 들어 부쩍 아버지의 정신문제를 다시 거론하고 싶어지는 것일까? 아버지의 과거 실수는 아버지의 의지에 따른 결과물이 아니며 그에 대한 아버지의 뒤늦은 참회도 정상적인 정신상태에서 내린 결단이 아니라는 판단을 도출해 내고 싶었던 것인가. 아버지가 버린 영광의 현실은 결코 부정될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인가. 아버지는 정상적인 정신상태에서는 절대로 이런 시골에 내려와…… 
 갑자기 품 안에서 쌔근쌔근 잠을 자던 아기가 무엇에 놀라기라도 한 듯 자지러지게 울어대기 시작했다. 그 바람에 집 뒤에서 진돗개가 불쑥 뜰 안으로 달려 나왔다. 그러나 단 두 번을 다녀갔는데도 안면이 있는 듯 짖지 않고 꼬리를 설레설레 저으며 그에게로 달려온다. 낑낑 응석을 부리며 머리를 내젓기도 하고 앞발을 땅에 꿇고 허리를 낮추며 재롱을 부리기도 한다.
 정도는 담요 안에서 급히 우유병을 꺼내어 아기의 입에 물려 주었다. 그러자 녀석은 금방 울음을 그친다. 볼우물을 폭폭 파며 호물호물 우유를 빨아들이며 재수 없는 아빠의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느닷없이 아기의 천진한 눈을 바라보기가 부끄러워졌다. 아버지구실도 못할 거면서 날 낳기는 왜 낳았어요. 하고 질책하는 눈빛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아기울음소리를 듣고서인지 윤도율은 큼지막한 돌 하나를 돌탑위에서 헐어내다 말고 허리를 펴더니 이쪽에 시선을 던진다.
 정도는 불현듯 돌아서서 도망이라도 치고 싶었다. 아버지의 입에서 추상같은 호령이 떨어질까 봐 두려워진 것이다.
 “이놈아. 그게 무슨 자랑거리라고 여기까지 안고 온 거냐. 수치스럽지도 않냐. 당장 내 눈 앞에서 꺼지거라. 넌 내 아들이 아니야. 나에겐 너 같이 치사하고 못난 자식이 없어.”
 그렇게 질타하실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무 말도 없이 다시 허리를 굽히고는 돌멩이를 헐어 가슴에 부둥켜 안고 터벅터벅 걸어가더니 골짜기 아래로 휭-하니 내던진다. 나뭇잎들과 가지가 부러지는 소리와 바윗돌에 부딪치는 소리가 잠깐 계곡을 들썽하게 한다.
 확실히 아버지는 제 정신이 아니야!
 정도는 용기를 내어 발걸음을 옮겨 아버지한테로 다가갔다.
 그러나 윤도율은 아들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아버지. 죽을죄를 졌습니다.”
 정도가 먼저 울먹거리며 사죄의 말을 건넸다.
 윤도율은 그래도 눈길을 외면한 채 돌탑을 헐어내는데 만 열중이다. 얼굴에 땀과 먼지와 검불이 달라붙어 범벅이 되어 있었다. 햇볕에 꺼멓게 탄데다 영양실조로 누렇게 뜬 면상은 수척하다 못해 해골을 방불케 했다. 진정한 참회라기보다는 아버지는 혹시 과거의 충격 때문에 정신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아버지.”
 “넌 아버지가 부처님인 줄 아냐.”
 윤도율은 고개도 쳐들지 않은 채 한마디 불쑥 던진다.
 “불효막심한 이 자식을……가문의 명예를 더럽힌 저를……”
 “하느님 앞에서는 누구나 다 죄인이야. 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큼지막한 돌멩이를 안으려다가 힘에 부치는지 선 자리에서 둬 번 비틀거리다가 다시 땅바닥에 떨어트린다. 사리가 정연한 말을 들어보아서는 정신이 잘못 된 사람 같지는 않고……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아버지께 염치불구하고 이 아이를……그냥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잖습니까.”
 정도는 저도 모르게 슬픔이 북받치며 무릎을 털썩 꿇었다. 그 바람에 놀란 아기가 또 바스러질 듯이 울음을 터트렸다.
 그제야 윤도율은 허리를 펴더니 수건으로 얼굴의 땀을 닦으며 아들을 물끄러미 내려다 본다.
 “너도 끝내는 금단의 열매를 훔쳐 먹은 게로구나.”
 한숨을 푹 내쉬며 돌 위에 걸터앉더니 담배 한 대를 붙여 물고는 뻐끔뻐끔 연기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사실 일부러 그런 마음을 가졌던 건 아니었습니다. 저도 어쩌다가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엄마는 난산으로 숨지고 아기만 덜렁 저한테 맡겨졌으니……어떻게 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염치불구하고 아버질 찾아왔습니다. 애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그 애의 운명이 어떻게 되겠냐고? 그건 아무도 모르지. 하느님도 부처님도 몰라. 그 애는 누구도 닮지 않을 것이고 자기 방식대로 살아갈 거야.”
 “많이 생각해 봤어요. 그래도 아버지한테 맡기는 게 애의 장래를 봐서라도 좋을 것 같아서. 부담이 되시고 수치가 되실 줄 알면서도……”
 “미래? 그 애의 미래는 미리 씌어진 각본이 없다. 그 애가 나름대로 써나갈 거야. 할아비가 가르쳐준다고 될 일이 아니지.”
 “아버지께서 가르치셔야 저도 시름이 놓일 것 같습니다.”       
 “네 아버지는 그 애를 가르칠 자격이 없다. 어서 돌아가거라.”
 윤도율은 느닷없이 버럭 화를 내면서 입에 물었던 담뱃대를 퉤하고 땅바닥에 뱉어냈다. 그 모습이 판에 박은 시골농부이다. 윤도율은 손에 장갑을 끼고 일어나서는 다시 돌을 들고 계곡으로 걸어갔다. 어느 순간에는 정상적인 사람 같고 또 어느 순간에는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사람 같아 보여 도저히 종잡을 수가 없다. 워낙 정상적인 것과 완벽한 것의 끝에는 비정상과 불완전함이 교체되기 마련인가?
 윤도율은 한번 아니라면 그만이었다. 식구들 중 누구도 감히 토를 달지 못했다.
 “그럼 아버지. 전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부디 건강하십시오.”
 돌아서서 뜰을 걸어 내려 오려니 저도 모르게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 내렸다.
 “아버지가 왜 공들여 깎은 장승을 죄다 뽑아버리고 손끝에 피가 터지도록 쌓아 올린 돌탑을 몽땅 헐어버리는지 넌 아마 모를 거다. 돌은 워낙 산비탈이나 냇가에 있어야 의미가 있고 나무는 땅속에 뿌리를 박고 숲을 이루거나 죽어서 썩은 뒤 거름이 돼야 의미가 있는 거다. 아버진 인제 그것들을 죄다 제 자리로 돌려보내련다. 모두 제 자리로. 굳이 의미 없는 의미를 만들려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으련다.……”
 아버지의 중얼거리는 말소리가 등 뒤를 따라와 옷자락에 매달린다.
 모두 제 자리로!
 모두 제 자리로!
 정도는 입속으로 몇 번이고 그 말을 곱씹었다. 몇 마디 말속에 깊숙이 뿌리박은 의미가 깨칠 듯도 하고 말 듯도 하다. 그냥 초불처럼 의식 속에서 가물거릴 뿐이다.
 의미 없는 의미를 만든다고? 그게 뭐지. 장승, 돌탑……그리고 또……
 인제는 아기를 누구한테 맡겨야 하는가.
 생각할수록 막연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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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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