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아들
장혜영




                                                  9장 죽음의 그림자

 


                                                                   1

 

 파랑이 감시카메라에 대해 물은 것은 이삼일 전의 일이다. 사진 찾으러 왔다가 지나가는 말처럼 슬쩍 던진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냥 호기심에서, 그녀와 마주서면 언제나 감도는, 조금은 긴장하고 그래서 어색한 분위기를 쇄신하려는 화제려니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선생님. 혹시 cctv고화질감시카메라에 대해서도 알고 계시나요?”
 “네. 잘은 모르지만 조금은요.”
 동네찜질방 사장과 정도는 아는 사이었다. 찜질방 사장의 부탁으로 실내에 감시카메라를 설치해 준 적이 있었다. 의복이나 금품유실을 감시하기 위한 방편으로 설치했던 것이다.
 “쓸만한 걸 한대 구입하려면 가격대가 얼마나 되죠?”
 호기심 정도에 그치는 질문 같지가 않다. 화제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품이 그랬다. 정도는 그래도 좋았다. 그녀와 이렇게 마주서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화제의 내용 같은 게 무슨 상관이 있으랴.
 파랑이만 들어오면, 무슨 눈치를 챈 모양 여동생 미경은 카운터를 떠나 스튜디오나 방구석에 가서 딴전을 피우며 그들만의 시간을 만들어 준다.
 내 얼굴표정에서 이상한 낌새라도 보이는 걸까?
 “글쎄요. 50만 원에서 300만 원 정도…… 기종 성능에 따라 각이하겠죠.”
 “화질이 좋은 고가품으로 한 대 구입해 주시겠어요. 어려운 부탁인줄 알지만 제가 감시카메라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라. 여기 돈이 있으니 이것으로.”
 파랑은 핸드백에서 자기앞 수표를 꺼내더니 볼펜으로 수결까지 두어 정도에게 건넨다.
 “아니. 이건……”
 무엇에 쓰려고 그러느냐 묻고 싶었지만 꼬치꼬치 캐고 드는 좀스럽고 옹졸한 모습을 보이기가 싫었다. 그녀 앞에서만은 대공무사하고 결격사유 없는 사내답고 싶었다.
 “오늘 낼 중으로요. 그럼 수고 부탁드려요.” 
 감시카메라를 어디에 쓰려고 그러지?
 짓궂은 의문이 목에 걸린 가시처럼 의식의 통로를 가로 막았다. 몰래카메라라면 범죄와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기가 보통이다. 도둑감시, 증거확보, 사생활 훔쳐보기……
 그중 어느 사항이 파랑의 의도와 일치할까?
 그러나 파랑은 외모나 언행이나 너무도 완벽하고 미의 극치어서 그중 어느 것과도 어울리지 않는다. 그녀와 이어진 모든 것은 아름다움일 것만 같다. 범죄, 부도덕 같은 건 그녀와 아무런 인연도 없을 것이다. 다만 그녀의 얼굴에 웃음이 없다는 사실, 웃음은 둘째고 미소마저 없다는 사실은 의혹을 유도하기에 충분했다. 그래도 그녀는 밉지 않다. 종일 웃음을 담고 있는 불량소녀보다 훨씬 더 아름답다. 아름다움은 반드시 웃음과 밝은 표정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파랑을 보고서야 알았다. 때로는 우수에 잠긴 표정, 평온한 모습, 슬픔에 겨워 우는 모습이 웃는 모습보다도 더 아름다울 수도 있는 것이다. 심지어는 분노하는 모습조차도 그랬다.
 파랑은 감시카메라구입을 부탁한 지 꼭 이틀 만에 문의전화를 걸어왔다.
 “선생님. 제가 부탁한 카메라는 구입하셨죠?”
 “네. 요긴하게 쓰실 거라고 해서 고가품으로 구입했습니다.”
 “잘하셨어요. 제가 그쪽으로 가면 좋겠지만 아무래도 신세지던 바에 선생님께 설치까지 부탁드리고 싶어요. 이쪽으로 나오실 수 있어요?”
 “네네. 제가 가지요. 거기가 어디죠?”
 “H호텔 1028호에요.”
 “호텔이라고요?”
 어찌된 영문인지 파랑의 모든 행동은 석연치가 않다. 늘 신비와 비밀스러움이 그녀의 주위에 안개처럼 자옥하다.
 호텔에다 몰래카메라를 설치하기라도 하겠다는 말인가.
 아무튼 그녀와 만날 수 있다는 기쁨은 모든 의혹을 잠재웠다. 정도는 서둘러 사진관 일을 미경에게 맡기고 집으로 향했다. 집에 가서 차를 운전하고 H호텔로 곧장 달렸다.
 파랑은 호텔방 거실소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정도를 기다리고 있었다. 방에는 그녀 혼자  뿐이었지만 침대는 더블이다. 호화롭고 사치한 방이었다. 정도로서는 이런 고급호텔방이 처음이어서 조금 주눅이 드는 기분이다. 4월이라고 하지만, 거리와 공원들에 모란, 산수유, 철쭉, 개나리꽃들이 활짝 피어났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냉기가 완전히 가시지 않았는데도 그녀의 옷차림은 더운 실내라선지 벌써 여름철이다. 엷은 스커트와 티셔츠만 입은 그녀의 몸매는 신체볼륨들이 싱싱하고 섹시한 융기 점들을 드러내며 남자의 시선을 현혹했다. 물론 옷걸이에는 그녀의 바바리가 걸려 있었다.
 “오라 가라 폐를 끼쳐서 죄송해요.”
 파랑은 소파에서 일어나며 깊숙이 허리를 굽힌다. 그 모습이 어찌나 우아하고 세련되고 눈부셨던지 정도는 약간 어지럼증까지 발작했다.
 “일단 커피나 한 잔 드시고……”
 “아니 일부터 시작합시다. 어디다가 설치할 의향이신지?”
 “글쎄요. 이 침대를 화면에 충분히 담을 수 있으면서도 눈에 띄지 않는 위치여야 할 텐데요. 어떤 곳이 적절할까요?”
 “침대 말입니까?”
 “네.”
 정도는 의도적인 반문을 통해 파랑의 변화하는 표정에서 숨겨진 의도를 읽어내려고 했지만 허사였다. 파랑의 얼굴표정은 시종일관 담담할 뿐이다. 이 세상에 대한 모든 욕망과 관심을 포기하고 인생에 대한 미련을 체념한 듯 고요하고 잠잠할 뿐이다.
 초점이 침대라면 더 물을 것도 없이 그녀가 장악하려는 건 남녀의 정사장면일 것이다. 불륜장면이 아니라면 몰래 촬영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녀는 확실한 증거가 될 무언가를 확보하려는 것 같다.
 언니가 죽었다던 파랑의 말이 문득 기억 속에 떠올랐다. 덕유산 암자의 밤의 어둠 속에서 그녀가 들려 주던, 분노요 복수요 하던 무시무시한 말들도 꼬리를 문다. 이 모든것들은 어떤 하나의 일관된 연관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지.
 “카메라 은폐에는 천장이 좋겠지만 촬영효과도 나쁠 것이고 또 너무 높아서 설치가 불가능한 불편도 따르고……여기가 좋겠습니다. 이 벽에 걸린 장식등조각품 말입니다.”
 “거긴 거리가 너무 멀지 않을까요. 초점이 희미하면 안 될 텐데요.”
 “이만한 거리면 생동한 화면의 촬영이 아마 가능할겁니다. 그런데 이 방은 파랑 씨 방인가요?”
 “아니요. 시골서 올라온 제 친구 방이에요.”
 “잘 사는 집인가 봅니다.”
 “제가 구해준 거예요. 서울에 아는 사람도 없고 해서요.”
 아무리 친구 방이라고 해도 그렇지, 설사 친구와 연적 사이라고 해도 그렇지 이렇게 몰래카메라를 설치하고 남의 사생활을 감시하는 건 불법행위입니다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웬일인지 그 말이 목구멍에 걸려 입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그녀는 불법행위 같은 걸 하지 않을 사람으로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행동도 자칫하면 불법일 수 있다는 우려감마저도 들지 않았다. 그런 나쁜 짓을 하기에는 파랑은 너무나 결백하고 순수해 보였다.
 이런 방을 구해준 걸 보니 파랑의 남편이 연상이긴 해도 대단한 재력가임이 분명하다. 그러면 파랑이 연상의 남자에게 시집간 건 그의 재산 때문이었던가?
“친구 분은 뭘 하는 사람인데요?”
 정도는 카메라를 설치하면서 이것저것 물었다. 무관심한 척, 지나가는 말처럼, 한두 마디씩 던졌지만 내심으로는 그녀의 친구를 통해 파랑의 베일에 가려진 정체를 한 껍질이라도 더 벗기고 싶은 충동을 억제할 수 없었다.
 “연예인지망생이에요. 탤런트 꿈을 이루려고 상경하긴 했는데……가부는 두고 봐야죠.”
 “탤런트라고요.”
 느닷없이 친구 석준범의 얼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에게 부탁하면 연예계에 발을 들여놓는 건 시간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파랑과 자기사이에 준범이를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 여태 친구의 사업에 우정을 빌미로 간섭이나 청탁을 한 적이 없었다.
 “거기 투명테이프를 좀 집어 주십시오.”
 의자위에 올라선 채 방바닥에 서서 카메라를 설치하는 것을 쳐다보고 있는 파랑을 내려다  보는 순간 정도는 눈앞에 펼쳐진 황홀한 그림에 그만 정신이 아뜩해 나는 자극을 받았다. 파랑의 가슴이 셔츠깃 속으로 환히 들여다보였던 것이다. 눈부실 정도로 하야말쑥하고 봉긋봉긋 솟아오른 젖가슴은 탐스럽고도 싱싱했다. 다치면 금방이라도 톡하고 터질 것처럼 통통 무르익어 있었다. 저도 모르게 몸의 균형을 잃고 의자위에서 비틀거렸다.
 정도는 황급히 눈을 감아버렸다. 아내와 별거한 지 어언 6개월이 된다. 시간이 갈수록 꿈자리가 어수선해지고 영문 모를 불안감과 초조감 때문에 늘 안절부절못했다. 잠자리에만 들면 벌거벗은 여자들 속에서 뒹구는 음탕한 꿈에 시달려야 했다. 파랑과는 생각만 해도 낯 뜨거운 정사까지 몇 번이나 가졌다. 언제는 늘 사진관을 지나다니는 요구르트장사아줌마와도 꿈속에서 그 짓을 했다. 나이가 스무 살도 넘게 연상인데다 얼굴까지 박색인 여자였다. 아니 그녀를 여자라고 생각해 본적도 없었다. 평소에는 그녀와 인사도 나누지 않았다.
 집단구타라도 당한 듯, 용역이라도 다니는 일용직노동자처럼 언제나 삭신이 뻐근하고 오금이 쑤시고 때로는 신진대사의 원활한 소통이 두절된 듯 까닭모를 하체통증까지 시달려야만 했다. 치한처럼 거리에 나서면 여자들의 가슴이나 엉덩이에 저도 모르게 무례한 시선이 날아가기도 했다. 때로는 그의 무치한 시선을 느낀 여자들의 질타의 시선을 받기까지 했다. 자신이 이러다가 정말 후안무치한 치한이 되고 저질인간이 되지 않을까 걱정까지 된다.
 정도는 무안한 나머지 그날 작업이 끝날 때까지 한번도 파랑과 시선을 마주치지 못했다. 자신이 그녀의 눈에 치한이나 호색한으로 비쳐질까봐 두려웠다. 친구 준범에게서 결백증환자라고 불리울 만큼 정직하고 신사적인 정도였지만 파랑의 앞에서 만큼은 더욱 결백하고 싶었다.
 카메라설치가 끝나자 파랑이 저녁식사를 대접하려고 청했지만 선약이 있다는 구실을 대고 총총히 호텔에서 빠져나왔다.
 밤에 잠자리에 누워서도 자꾸만 그녀의 풍만하고 기름진 젖가슴이 눈앞에 얼른거려 잠을 청할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는 파랑의 지적이고 절제된 세련미와 청아한 애수의 그늘이 드리운 신비감이 정도의 호기심을 정복했다면 오늘은 그녀가 여성의 아름다운 육체미로 그의 넋을 정복해버린 것이다.   
 파랑은 결국 여자였다. 파랑에 대한 정도의 호기심과 관심은 결국 사모와 애정이었고 궁극적 유혹은 이성의 매력이었던 지도 모른다. 다만 그런 의식은 여태껏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었을 뿐이고 의식은 언제나 정도를 청백하고 정직하고 도덕적결백의 완벽주의자로 만들었기에 무의식의 존재를 허용하지 않았을 뿐이고.
 설치와 철거 사이의 시간은 불과 하룻밤이었다.
 이튿날 11시 쯤 정도는 또다시 그녀의 부름을 받고 호텔로 가서 감시카메라를 수거했다.
 어제 있었던, 정도의 무례한 시선에 수치나 무례를 느꼈을 사람 같지 않게 파랑의 태도는 여전히 각별하지도 무심하지도 않은 평상심 그대로였다. 아예 정도의 표정 변화 같은 데는 관심이 없는 지도 모른다. 정도의 존재는 단지 사진현상에 필요할 만큼의 관계일 뿐이고 수많은 남자들 중의 한 사람일 뿐인 지도 모른다. 정도 혼자 민감하여 부르고 쓰고 고치고……
 어쩌면 그녀는 인간 전체에게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닐까?
 아니다. 적어도 그녀는 지난밤 이 침대에서 운우지정을 나누었을 남녀에 대해서 만큼은 관심이 있다. 관심이 있어도 지대한 관심이 있다. 무시무시할 만큼 집요한 관심이다. 그러나 그 관심은 긍정적이 아닌 관심 그 자체에 대한 무관심 즉 적개심이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 같다. 그녀는 분명 누군가를 관심하는 게 아니라 증오하고 있다.
 몰래카메라를 벽에서 분리하여 가방에 넣는데 전화가 왔다.
 석준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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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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