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아들
장혜영


  

                                                                   2

 

 가로수낙엽들은 막바지계절을 타고 서둘러 거리에 낙엽 비를 억수로 퍼붓는다. 환경미화원들이 쉴 새 없이 쓸어내도 인도며 차도에는 플라타너스, 은행낙엽들이 융단처럼 두툼하게 깔린 채 늦가을바람에 속절없이 뒹군다.
 윤도율은 대학생데모행렬이 경찰과의 충돌로 해산된 후 영화관에 잠시 피신했다가 날이 어둡기 시작할 무렵에야 후암동 자택으로 향했다. 퇴근시간의 붐비는 거리에는 아직도 데모진압에 동원된 경찰병력이 쫙 깔려 있어 버스 안에서도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나는 우리 조국의 평화와 통일 그리고 번영을 희구하는 국민모두의 절실한 염원을 받들어 우리 민족사의 진운을 영예롭게 개척해나가기 위한 나의 중대한 결심을 여러분 앞에 밝히려 하는 바입니다.
 
 박정희대통령의 그 유명한 특별선언이 발표된 지 열흘 만에 유신헌법이 공포되었고 그로부터 이 땅에는 민주화의 거세찬 파도가 휩쓸기 시작했다. 대학가에서는 학원군사교육철폐, 언론출판의 자유, 유신헌법반대, 자유민주주의회복 등을 주장하는 민주화열풍이 끊임없이 휘몰아쳤다.
 그러나 박정희독재정권은 이에 정면으로 맞서 국회를 해산시키고 정당 및 정치활동을 중지시켰으며 전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경찰과 군부대를 동원하여 학생들의 데모를 무자비하게 탄압했다.
 악명 높은 중앙정보부요원들과 경찰은 데모주동자들을 검거하려고 혈안이 되어 날뛰었다. 모르긴 해도 중앙정보부의 극비문서에는 벌써 시위대의 앞장에 섰던 윤도율의 사진과 S대법대대학원생이라는 인적사항이 입수되어 있을 것이다.
 후암동 자택에 이르니 집 주위의 골목에 사복경찰 같아 보이는 이상한 사람들이 깔려 있었다. 높은 계단을 올라가던 윤도율은 행인들을 흘끔거리는 그들의 살기등등한 눈길에서 불안한 예감을 느끼고 발길을 돌렸다. 어느새 주소지를 파악하고 가택수색까지 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귀가하는 그를 잡으려고 그물망을 펼쳐놓고 고기가 저절로 걸려들기를 기다리고 있을 테지.
 다시 거리로 내려왔지만 갈 곳이 없다. 도처에 경찰이 욱실거리고 정보부의 잠복요원들이 눈에 등불을 켜고 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고 거리모퉁이에 우두커니 서있을 수도 없었다. 도리어 경찰의 눈에 의심스럽게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통금시간이 되기 전에 이 밤을 지낼 거처를 물색해야 한다. 투숙이 가능한 여인숙 같은 것은 주변에도 많았지만 경찰의 주 조사대상이 여관일 것이 틀림없다.
 용만이.
 느닷없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름 하나가 있었다. 같은 대학원에 다니는 친구였다. 그의 집은 해방촌에 있었는데 후암동에서 멀지 않았다. 도보로도 20분가량이면 족했다. 용만이와는 경찰단속을 피해 영화관에 함께 숨었다가 해가 지자 갈라졌던 것이다.
 다행이도 용만이네 집 근처에는 잠복경찰 같은 것은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러잖아도 너의 집이 서울역 근처라 은근히 걱정했는데 마침 잘됐다. 시장할 텐데 어서 저녁이나 먹어라.”
 용만의 모친이 묵은 밥 한공기와 미역국 한 그릇을 데워 올려왔다.
 종일 목이 터지라고 구호를 외치느라 시장기가 극심했던 도율은 인사말도 변변히 못하고 식탁에 마주앉자마자 밥 한 그릇을 게 눈 감추듯 뚝딱 비워버렸다. 국 한 방울도 남기지 않았지만 간에 기별도 안 간다. 그러나 그 밥도 용만이 모친의 저녁식사 몫이었다. 아들 용만이를 한 술이라도 더 먹이려고 남겨둔 것이다.
 “밖에 나가 뭘 먹을 걸 더 사올까?”
 “아니 됐어.”
 용만의 호의를 사양하고 노랗게 우러난 누렁지물을 훌훌 마시는데 느닷없이 출입문이 벌컥 열렸다. 방안에 있던 세 사람은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사복차림을 한 한 무리의 장정들이 구두를 신은 채로 구들위로 우르르 쓸어 올라오더니 도율과 용만의 팔을 비틀어 등 뒤로 가져갔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난타하기 시작했다.
 “개새끼들! 하라는 공부나 할 것이지 왜 쓸데없이 정치에는 간섭하는 거야.”
 복부며 가슴이며 얼굴이며 허벅지며 옆구리며 가리지 않고 구둣발과 곤봉과 각목이 날아들었다. 쥐구멍만한 방안에는 삽시에 자지러진 비명소리와 거친 악담과 여인의 새된 부르짖음 소리와 툭탁거리는 매질소리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도율은 치명타를 피하려고 온몸을 골뱅이처럼 잔뜩 오그라트린 채 두 팔로 중요한 신체부위를 방위하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통증을 참을 길이 없어 몸부림을 쳤다. 치명적인 가격에 눈에서 불꽃이 번뜩였고 입술이 터지고 이가 부러지며 순식간에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었다. 왼쪽 눈 등은 이미 탁구공만큼 부어 시야마저 막혀버렸다.
 불청객들은 제풀에 탈진해서야 잠시 폭행을 중단하고는 본부에 무선전화통화를 했다.
 “여기 해방촌인데 주모자들을 잡았다니까. 얼른 차 끌고 와.”
 몇 명은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방안에는 사복요원 두 명만 남아 도율이네를 지켰다.
 도율과 용만은 포승줄에 결박당한 채 방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있었다.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잡혀간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해났다. 학명제적, 옥살이 같은 건 두렵지도 않다. 듣기만 해도 무시무시한 중앙정보부지하실에서의 악명 높은 물고문, 불고문, 통닭구이 같은 고문방법들은 캠퍼스 내에 소문이 자자하게 돌고 있었다. 그런 고문을 당하고 나면 설사 죽음은 면할 수 있어도 병신은 면할 수 없다고 한다.
 마침 윤도율의 머릿속에 하나의 묘책이 번개같이 떠올랐다. 그는 갑자기 방구들에 쓰러져 이리저리 뒹굴며 복통을 호소했다.
 “나 죽어요! 창자가 끊어지는 것 같아요. 제발 나 좀 살려주세요!”
 얼굴색이 흙빛이 되어 방바닥에서 몸부림치는 그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곰처럼 뚱뚱한 정보요원이 심드렁하게 한 마디 내던진다.
 “그래서 우리더러 어쩌라는 거냐? 병원에라도 모시고 가라는 거냐.”
 “병원이 아니고요. 화장실 좀 갔다 오게 해주세요. 당금 팬티에 쌀 것 같아요. 아이고, 나 죽는다!”
 “자식. 조금만 기다리면 될 텐데. 짜증나게 구네. 일어나. 화장실이 어디 있지?”
 뚱보사내가 아직도 겁에 질려 후들후들 떨고 있는 용만의 모친에게 묻는다.
 “집 뒤에요.”
 요원은 윤도율을 앞세우고 좁은 모퉁이를 돌아 화장실로 나갔다. 한사람이 겨우 비집고 다닐 만큼 좁은 골목이라 방범등불빛마저 미치지 못해 어두컴컴했다. 요원은 등 뒤의 포승줄을 풀어주며 구식변기에서 풍겨 나오는 역한 구린내에 코를 움켜쥔다.
 “싸게 볼일 보고 나와.”
 요원은 구린내를 피해 골목을 돌아나가 집 앞의 뜰에서 기다렸다.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한 윤도율은 재빨리 화장실 안을 둘러보았다. 뒤창문은 마분지조각으로 대충 막혀 있었다. 가장자리를 잡고 손으로 잡아당기자 금방 맥없이 떨어져 나왔다. 사람 몸뚱이 하나는 쉽게 나들만한 제법 큰 구멍이 드러났다.
윤도율은 그 구멍에 매달려 상반신을 내민 후 벽을 타고 바득바득 기어올랐다.
 창밖은 좁은 골목과 통해 있었다. 어둠 속에 묻힌 골목은 행인 하나 없이 괴괴했다.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상체부터 밖으로 나온 그는 어쩔 수 없이 높은 창 위에서 허공 길바닥 아래로 내리 떨어졌다. 무릎을 노면에 짓찧으며 통증이 발작했지만 그런데 신경 쓸 경황이 없었다. 빨리 이곳으로부터 멀리 도망가야 한다.
 윤도율은 골목을 따라 아래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얼마 달리지 않아 금방 왕복2차선 도로에 나섰다. 마침 지나가는 택시를 잡았다. 옆자리에 들어와 맥없이 풀썩 주저앉는 손님을 흘깃 쳐다보던 택시기사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역력하다. 피투성이, 먼지투성이가 되고 팅팅 부어오른 눈등과 터져서 피가 흐르는 입술을 보았을 것이다.
“아니,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습니까?”
 윤도율은 경계심을 풀지 않은 채 택시기사의 표정변화만 면밀히 주시했다. 자신에게 미칠 화가 두려워 당장 내리라고 축객할 수도 있고 차를 운전하여 경찰에 넘길 우려도 없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디로 모실까요?”
 “아무데라도 좋으니 빨리 이곳을 떠나주세요.”
 “알겠습니다.”
 택시기사는 별 반응이 없이 차를 이태원 쪽으로 운전한다.
 “대학생이지요?”
 “네.”
 “데모하다가 경찰에 쫓겼나보군요?”
 “네.”
 “그럼 통금 전에 서울을 빠져나가야 될 거잖아요?”
 “서울을 빠진다고요?”
 윤도율은 거기까지는 생각 못했었다. 오늘밤을 어디서 지낼 것인가 걱정은 태산 같았지만.
 나는 왜 서울을 벗어나면 안전하다는 생각을 못했을까. 그래 신변안전만 보장된다면 서울을 벗어난다고 나쁠 것도 없지.
 “청량리까지 모셔다 드릴 테니 거기서 기차를 타요. 춘천이던 강릉이던 신탄리던 동해든...... 서울을 빠져나갈 수 있을 거니까.”
 청량리역에 도착하자 택시기사는 요금마저 사양했다.
 “그 돈으로 기차표나 끊어요. 통금이 되기 전에 빨리 서둘러야 합니다. 빌어먹을 유신헌법 때문에 죄 없는 젊은이들만 고생하는군요. 이 마스크와 안경을 갖고 가요. 혹시 쓸모가 있을지. 그 얼굴로야 어디로 갑니까.”
 윤도율은 택시기사에게 깊숙이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 역 안으로 들어갔다.
 역사 안에도 경찰들과 사복차림의 단속반원들이 깔려 있었다.
 도율은 택시기사가 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안경을 건 다음 매표소로 다가가 승차권을 끊었다. 마침 발차를 10여분 앞둔 강릉행통일열차편이 있었다.
 열차에 승차해서야 윤도율은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마스크와 안경은 벗지 않았다.
 열차가 ㄷ역에 거의 도착할 무렵, 느닷없이 앞쪽 출입문이 열리더니 통로에 경찰 두 명이 나타났다. 첫 머리에서부터 손님들의 신분증을 검사하기 시작했다.
 가슴이 철렁했다. 인젠 꼼짝없이 잡히고 말았구나. 데모주동자를 추적하는 경찰은 아닐지라도 피투성이 되고 팅팅 부은 얼굴을 보면 가만 두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 서울을 빠져 여기까지 도피했다가 이렇게 싱겁게 잡히면 안 되지.
 어디 숨을 곳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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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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