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아들
장혜영


“실종되다니요?! 그게 무슨 말씀이예요. 지방법원에 변호출장차 나가신 게 아닙니까?”
 정도는 아버지가 춘천지방법원에 살인사건 변호로 출장 나간 줄로 알고 있었다.
 “그 살인사건은 판결이 난지 벌써 며칠 된단다.”
 “그럼 사무실로 나가셨겠죠.”
 “전화를 걸어봤는데 사무실에도 없으셔.”
 “그럼 어디 가셨죠? 지방출장을 가신 거 아닙니까?”
 “가시면 가신다고 꼭 말씀하시는 분이시잖냐.”
 “아무 말씀도 없으셨나요?”
 “간다온다 말씀도 없이 훌쩍 떠나셨단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도의 눈에는 양진옥이 마치 아버지가 어딜 가신 걸 알고 있는 듯이 보였다.
 “언제요?”
 “오늘이 벌써 사흘째다.”
 “어머닌 아버지가 어디 가신 줄 아실 거잖아요.”
 예상이 적중한 듯싶다.
 양진옥은 아들의 질문에 잠시 머뭇거리며 당혹스러운 기색을 짓는다. 아들한테 토설하기에는 좀 민망한 사연이 있는 듯 은밀함이 묻어 있다. 양진옥에게라고 사생활이 없으라는 법은 없다.
 정도는 의문을 접고 그냥 돌아섰다.
 “정도야.”
 구두를 신고 문을 나서려는데 양진옥이 다시 아들을 불러 세운다. 아까보다도 더 주저주저하면서도 아무래도 말을 해야겠는지 나직하게 중얼거린다.
 “네가 강원도 싸리골에 한번 다녀오겠니.”
 “싸리골이라고요! 거기가 어딘데 저더러 다녀오라는 겁니까?”
 생전 처음 들어보는 고장 이름이다. 싸리골! 우리나라에 그런 고장도 있었나?
 “아무래도 네 아버지께서 싸리골로 내려가신 것 같구나.”
 “거긴 뭘 하러 가신 거죠?”
 “……”
 양진옥은 아들의 의문이 실린 시선을 정시하지 못하고 얼른 외면한다. 무슨 나쁜 짓을 하다가 발각된 어린애처럼 안절부절한다. 어머니를 난감하게 구는 것도 자식 된 자의 불효라 생각하고 정도는 금시 화제를 돌렸다.
 “네. 다녀올게요.”
 부모에게 자식이 할 바는 오로지 하나 순종뿐이다. 부모님의 말씀에는 거역이란 있을 수 없고 의문조차도 허용될 수 없다. 그것이 지금까지 정도가 부모에게 지켜온 인생의 자세였다.
 5만분의 1지도에조차 표시되어 있지 않은 싸리골, 혹여 70년대에는 자그마한 집성촌이 있었을지 모르나 지금은 죄다 벌방이나 도회지로 떠나가고 겨우 한 가구만 남아있다는, 오지로 가는 교통편을 양진옥은 손금 보듯 훤히 장악하고 있었다. 통일호열차에서 내려 마을버스를 갈아타고 다시 도보로 상행을 해야 나타난다는 그 미지의 싸리골로 내려가신 아버지의 의도는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양진옥은 알고 있을 지도 모른다. 변호사사무실직원들도 아버지의 행방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춘천지방법원에 전화를 해보았지만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낙향도 아니고 은닉도 아니고. 혹시 정신 상태라도……
 60이 넘도록 사법계에서 활동하시면서 양심에 어긋나거나 공직을 남용하거나 불법비리가 없이 정직하게 살아온 아버지였다. 판사, 부장판사, 변호사 등 사법계의 요직을 두루 역임하면서도 장물臟物 한 번 받은 적이 없고 법률 한 조목 어긴 적이 없는 공명정대한 분이었다. 사법계에서 아버지는 그 정직성, 공정성, 청렴함 때문에 청백리 또는 윤포공으로 불리기까지 했었다. 그만큼 아버지에게는 남에게 숨겨야 할 부끄러운 역사나 치부가 없었다. 언제나 떳떳하고 모든 것을 당당하게 공개했다.
 그런데 아들은 물론이고 아내마저 모르게 자취를 감춰버리다니? 도둑놈처럼, 죄진 놈처럼, 양심에 거리끼는 것이 있는 사람처럼 슬그머니 쥐도 새도 모르게 은신하다니!
 무슨 영문인지 도저히 납득이 안 간다.
 어머니가 알려준 대로 복잡한 교통편을 여러 번 갈아타고 또 도보로 산행까지 하여 싸리골로 들어갔다.
 울창한 삼림이 냉랭한 겨울태양마저 가리는 깊은 산속은 인적은 드물고 적설만 두텁게 쌓여있다. 얼어붙은 눈덩이가 소나무잎사귀에서 이따금 떨어졌고 마른 갈참나무 잎들이 알알한 산바람에 부산을 떨고 있다. 녹으며 얼며 어느새 굳어버린 적설위로 언제 지나갔는지 모를 다람쥐, 산토끼 등 산짐승들의 발자국이 화석처럼 선명하게 찍혀있다. 차량은 고사하고 달구지바퀴자국마저 없는, 마른 풀 가지와 잡초만 무성한 좁고 구불구불한 산길이 아버지가 계신다는 산간초옥으로 이어져있다고는 전혀 상상도 되지 않는다.
 아버지는 어떻게 이런 깊은 산골에 사람 사는 집이 있다는 걸 알았고 또 어머니는 어떻게 아버지가 이런 곳에 왔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을까?
 신기하기만 하다. 그 속엔 반드시 그 신비감 만큼이나 거창한 사연이 숨겨져 있을 거라는 예측이 궁금증을 더했다.
 차를 끌고 오지 않기를 잘했다 싶었다. 통일호열차에서 내려 마을버스를 갈아탔을 때 비포장도로는 얼음이 얼어 몹시 미끄러웠고 산길은 가파르고도 험난했다.
 까마귀들이 어찌나 많은지 깍깍 귀청이 터지도록 요란하게 울어댄다. 모두다 피둥피둥 살진 놈들인데 사람이 곁에 다가와도 무서워하지 않는다. 섬뜩 하는 불길함에 두려움을 느낀 건 도리어 정도 쪽이었다. 까마귀와 추위와 그리고 능선과 계곡과 나무들을 뒤덮은 무진장한 적설의 세계에 사람이라고는 아버지 혼자일 텐데 두렵지 않을까.
 반나절이나 되게 가파른 비탈을 톺아 올라서야 저만큼 앞쪽의 산중턱 후미진 곳에 적설을 뒤집어쓴 허름한 농가 한 채가 보였다. 그즈음 정도의 온몸은 땀에 흠씬 젖어있었다. 입으로는 굵은 입김이 증기기관차처럼 풀풀 뿜겨 나왔다.
 농가는 무덤같이 괴괴한 분위기를 거느린 채 침묵하고 있었다.
 떵-떵-
 느닷없이 산중 계곡에 언 나무를 찍느라 도끼질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 산중에서 누가 도끼질을 할까? 농부가? 아니면 혹시 아버지가?!
 좀 더 가까이 다가가 보니 농가 앞의 넓은 뜰은 눈이 깨끗이 쓸려 있고 마당에는 붉은 산모래가 정결하게 깔려있었다. 털이 하얀 진돗개 한마리가 소리 내어 짓지도 않고 날카로운 이발을 살벌하게 드러낸 채 낯선 불청객의 무단침입을 경계한다.
 뜰에는 긴 나무통들이 이리저리 넘어져 있다.
 집 안에는 사람이 없는지 인기척이 잠잠하다.
 그제야 정도는 도끼질소리가 농가 왼 편 골짜기 너머의 능선에서 울리고 있음을 알았다. 머리에 개털모자를 푹 눌러쓴 한 남자가 물매가 급한 경사면에 위태롭게 붙어선 채 서툰 동작으로 도끼를 휘두르고 있었다. 도끼날은 번마다 제 자리가 아닌 전혀 엉뚱한 곳에 박히며 하얀 나무 조각들을 주위에 튕긴다. 언 나무줄기가 도끼날에 맞아 진동할 때마다 가지위에 올라앉아 있던 무거운 눈덩이들이 풀떡풀떡 놀라며 이리저리 뿌려나간다. 사나이는 도끼질에 익숙하지 못한 듯 겨우 두세 번을 휘두르고는 찍기를 멈추고는 한참씩 가쁜 숨을 헐떡헐떡 고른다. 연기처럼 하얗게 뿜겨 나오는 입김이 삼단처럼 굵직하다.
 아버지!
 정도는 저도 모르게 입 속으로 중얼거렸다. 비록 몸에는 농부의 솜저고리를 걸치고 머리에는 개털모자를 눌러썼지만 정도는 한눈에 그 사람이 아버지임을 알아보았다. 몸매는 호리호리하나 키만 훌쩍 커 조금은 깡말라 보이는 정도와는 달리 아버지 윤도율은 거창한 체구에 떡 버러진 어깨를 가진, 『삼국지』에 나오는 초나라 장수 관운장을 연상케 하는 호남아 기상이다. 그분이 거느린 분위기는 자애와 관용보다는 사법계에 오래 근무한 직업적 특성 때문인지는 몰라도 서슬 푸른 위엄과 상대방을 압도하는, 범접할 수 없는 도고함이 도도하다. 원래는 죽은 문자에 불과하던 법조항들은 일단 윤도율을 통해 여과되는 순간 권위와 위엄을 과시하는 것이다. 아버지는 곧 법이었다.
 아버지한테로 가려면 농가 앞을 지나야 했다. 진돗개는 비실비실 뒷걸음을 치더니 문이 열려 있는 곡간 안으로 들어갔다. 정도는 뜰 가운데를 지나갈 때에야 마당의 붉은 산모래위에 여기저기 넘어져 있는 나무통들의 실체가 뭔가를 확인했다. 일부는 자귀날에 깎이고 파여 흉한 얼굴 모습이 드러난 장승이었고 일부는 금방 잘라온 채로인 나무통들이었다. 흉물스러운 얼굴을 가진 한 장승의 몸뚱이에는 『지하여장군』이라는 검은 먹 글씨까지 씌어있었다.
 아버지가 장승을 깎는다?! 제 정신이 아니고서야……
 일순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럴 수가 없어. 아버지는 평생 이런 걸 만들어 본적조차 없는 분이시다. 그리고 여기 심심산중의 텅 빈 농가에 (아직까지도 아버지 외에는 다른 인기척이 없다.) 와서 장승을 깎을 이유도 없다. 그런데 아버지는 왜 이 장승을 깎는 재료인 소나무를 자르고 있을까.
 뜰을 지나 집 모퉁이에 이르자 자그마한 공지가 나타났고 변두리 아래로는 깊은 계곡이 가파르게 파여 있다. 그 맞은편 능선에서 아버지는 도끼질을 한다. 집 모퉁이의 평탄한 공지에도 정갈하게 쓸린 빗자루자국이 일매지게 찍혀 있었다. 여기저기에 장승들이 서 있고 굴뚝에서 멀지 않은 위쪽에는 크고 작은 돌탑들이 정성을 들인 손길을 말해주 듯 신비한 모습을 드러낸 채 눈을 뒤지어 쓰고 있다.
 가장 크고 웅장한 돌탑 앞의 제단에는 지금은 보기 힘든, 70년대 유행하던 투박한 구식 금테안경 하나와 누렇게 색깔이 변한 마스크 하나가 놓여 있었다. 돌탑들은 그 수가 얼마나 많은지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돌탑들과 장승 그리고 아버지. 거기다가 플러스 안경과 마스크.
 이들 사이에는 무슨 인연이 있을까?
 자기가 지키는 성역을 침범해서인지 갑자기 진돗개가 기를 쓰고 달려들며 요란스레 짖어댔다.
 윤도율은 개가 짖는 소리에 도끼질을 멈추고 계곡 너머 농가 쪽에 눈길을 준다.
 “거기 오신 분 누구십니까?”
 “아버지.”
 웬일인지 목이 꽉 멘다. 이런데서, 궁벽한 산간벽지에서 아버지를 만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었다.
 윤도율은 불청객이 아들임을 확인하자 아무 말도 없이 다시 손바닥에 침을 뱉더니 도끼를 휘두른다.
 떠-엉 떵! 떠-엉 떵!
 도끼질소리가 심산계곡에 깊고도 먼 메아리를 만든다.
 정도는 비탈을 내려갔다. 적설은 깊고도 미끄러웠다. 몇 번이나 넘어졌고 비탈에서 나뭇단처럼 뒹굴었다. 언 나뭇가지에 종아리가 긁혔고 바위에 부딪친 무릎과 팔꿈치가  얼얼해졌다.
 “아버지. 여기서 뭘 하십니까?”
 간신히 계곡을 건너 아버지가 도끼질하는 산 능선에 톺아 올랐다. 숨이 차서 말마디들이 토막 났다.
 마침 난도질을 당한 소나무는 밑줄기가 잘리며 뿌지직-뿌지직- 소리를 내며 옆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비켜!”
 윤도율이 아들의 등을 떠밀어 옆으로 비켜 세운다.
 “나무는 잘라 뭘 하시려고요?”
 “엄마가 알려주던?”
 묻는 말에는 대답을 비워두고 반문을 던져온다. 아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능숙한 농부처럼 끌어내리기 쉽도록 나무줄기를 능선 쪽으로 떠밀어 번진다. 그러나 나무는 아래로 기울며 윤도율의 뜻대로 넘어가주지는 않는다.        
정도도 달려들어 나무를 위로 넘어트리는데 동조했다.
 “비키라니까!”
 아들이 상하기라도 할까봐 걱정되는 모양이다. 그러나 그 어투는 퉁명하고 짤막하다. 윤도율은 의사표현을 설득과 소통보다는 규제와 단속에 더 의존한다.
 나무가 눈 위에 쓰러지자 윤도율은 넘어진 나무위에 걸터앉아 담배를 붙여 문다. 답배 피우는 모습도 처음이어서 낯설어 보이기만 한다. 농부처럼 개털모자를 벗어 이마의 땀과 눈가루를 뻑뻑 문지른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에서 수증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윤도율을 보는 누구인들 그가 청백리로 소문난 부장판사요 변호사라고 볼 것인가. 아버지는 틀림없는 농부였다.
 “어머니께서 모시고 오라고 당부하시기에……”
 “네가 참견할 일이 아니다. 그냥 서울로 올라가거라.”
 아버지는 언제나 조항에 따라 한계를 긋는다.
 “어머니한테는 뭐라고……”
 “글쎄 올라가라니까.”
 “아버지……”
 “어허!”
 정도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머릿속에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설득이던 이유 추궁이던 자식 된 입장에서는 모두 불초한 행위일 뿐이다. 그렇다고 연로한 아버지를 이 산 중에 홀로 남겨두고 서울로 돌아 갈 수도 없었다.
 장승이 되리 만큼 소나무를 잘라 둘이서 어깨에 메고 골짜기를 건너왔다.
 “이 장승들이 다 아버지께서 만드신 겁니까?”
 “이미 세워진 것들은 아니야.”
 “돌탑은요?”
 “내가 쌓은 건 저기 자그마한 탑 두개뿐이야.”
 왜 장승을 깎고 돌탑을 쌓느냐고 묻고 싶었으나 아버지를 난감한 처지로 내몰고 싶지 않아 싹을 내미는 궁금증을 도로 묻어버렸다.
 윤도율은 집 안으로 들어가더니 화롯불에 구은 감자 몇 덩이를 소쿠리에 담아들고 나왔다.
 “여긴 먹을 거라고는 이런 것뿐이란다.”
 아버지의 손은 뽀얀 잿가루가 묻어 있었다.
 주인이 환대하자 진돗개도 금시 경계를 풀었다. 구수한 감자 냄새에 코를 벌름거리며 한 덩이 얻어먹으려고 꼬리를 휭휭 저으며 응석까지 부린다.
 윤도율이 소쿠리 안에서 감자 하나를 집어 허리를 툭 끊자 가루가 노랗게 나는 속살이 드러나며 구수한 김을 피워 올렸다.
 “먹어봐라. 별맛이다.”
 정도는 아버지가 건네는 감자를 받아들긴 했으나 손바닥이 뜨거워 어쩔 바를 몰라 했다.
 “이 손 저 손 옮겨가면서 훌훌 불며 먹는 거야.”
 아버지는 시골농부들이나 알 수 있는 이 모든 비법들을 언제 누구한테서 배웠을까? 실종되었던 3일이라는 시간 내에 배웠을 리는 만무하다. 그것도 가르치는 사람도 없이 혼자서.
 “이 집 주인들은 다 어딜 가고 아버지만 혼자……”
 정도는 감자 한 조각을 베어 입 안에 넣었다가 너무 뜨거워 기겁을 하며 손바닥에 도로 뱉어냈다.
 “입김을 훌훌 불어 더운 김을 증발시킨 다음 먹으라고 했잖니.”
 “원래 빈집인가요?”
 윤도율은 감자먹는 방법을 가르쳐주느라 열심인데 정도는 정도대로 농가의 정체와 아버지의 농가체류에 대한 호기심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아니야.”
 “그럼 주인들은?”
 야금야금 캐물었다. 윤도율은 한 입 깨문 감자를 씹느라 두 볼만 씰룩거릴 뿐 대답을 비운다.  
  “다들 도시로 나갔나보죠?”
 “지금은 내가 주인이야.”
 “아버지께서요!”
 정도는 감자를 먹다말고 의아한 눈길로 입술에 시커먼 잿가루를 묻힌 채 감자 속살을 후물후물 파먹는 아버지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아버지가 이 집 주인이라시면 장차 서울로 돌아가시지 않으시겠다는 암시가 담겨 있는 것은 아닐까.
 “서울엔 언제 올라가시려고요?”
 “안 가.”
 “어머님께서 기다리시는데……”
 “엄만 내가 서울로 돌아가지 않을 거라는 걸 진작 알고 있어.”
 “네?!”
 갈수록 의문만 눈 덩이 굴리듯 커진다.
 “어머니께서 보내서 왔거든요.”
 “글쎄 안 가. 인젠 됐다. 그만 일어나 길을 떠나거라. 어둡기 전에 산을 내려가야지.”
 윤도율은 금방 잘라온 소나무통위에서 일어서며 나머지 감자 한 알을 통째로 입 안에 집어  넣었다. 그러고는 접견이 끝났다는 듯이 장갑을 끼고 손에 자귀를 집어 든다. 장승 깎는 작업을 시작하려나보다.
 “굳이 장승을 쌓고 돌탑을 쌓아야 할, 피치 못할 이유라도 있으십니까?”
 무례하고 불경함을 무릅쓰고서라도 의문을 던질 만큼 호기심의 체적은 컸다.
“그게 그렇게 알고 싶으냐?”
 “네.”
 “아버지에 대한 지금까지의 믿음이 붕괴되는 것도 두렵지 않단 말이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아버지는 영원히 이 아들이 살아가는데 귀감이 되실 겁니다.”
 “재신임이 아니라 허탈이고 실망일 텐데도.”
 “아버지. 전 도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아버지한테 무슨 감춰두셨던, 남에게 보이지 못할 비밀이라도 있으셨다는 말씀이십니까. 아버진 언제나 공명정대하시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떳떳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부처님도 뒤집어보면 속이 비어 있단다. 하물며 사람인 아버지야 더 말해서 알겠니.”
 정도는 들을수록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아버진 인생의 어떤 실수도 오점도 없는 완벽한 분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었다. 그런 부친에게 무슨 실수라도, 남들에게 드러내기 부끄러운 치부라도 있단 말인가.
 “하긴 너도 인젠 어른이지. 아버질 이해할 만한 나이가 되었어.”
 윤도율은 장갑을 벗고는 다시 나무통위에 걸터앉는다.
 배가 부른 진돗개는 어슬렁어슬렁 토방 밑으로 낮잠 자러 가버린다.
 계곡에는 갑자기 깊은 적막이 찾아들었다. 삼라만상도 윤도율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느라 숨을 죽인 듯 고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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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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