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연재 바람의 아들 22'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9.12.24 장편연재 "바람의 아들" 22 by 아데라


바람의 아들
장혜영


 안방에 성큼 들어서서 두 남녀가 이불 속에 나란히 껴안고 누운 모습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병태는 실망한 듯 말없이 돌아서 나갔다.
 “뭘 멍하니 보고들 있어? 어서 나가자.”
 동행한 민청원들을 휘동해가지고 우르르 마당으로 쓸어나갔다.
 박병술은 그들이 삽짝문밖으로 사라지는 것을 확인하기 바쁘게 후다닥 이불 속에서 뛰어 일어났다.
 “미안합니다. 복금씨. 미안합니다. 본의 아니게……”
 연신 고개를 조아려 사과하며 엉금엉금 사잇문 턱을 넘어 사랑방으로 내려왔다.
 “허허허. 군인이라는 사람이 여자 앞에서는 벌벌 기기는. 장가들긴 다 글렀네그려.”
 이호남은 곰방대에 담배를 붙여 물고는 껄껄 웃는다.
 “어르신. 불민한 제가 죄를 지었습니다. 절……”
 “죄는 무슨 죄. 내 딸을 구해주었으니 우리가 도리어 자네한테 신세를 진 거지. 안 그래, 여보.”  
 방 한구석에 옹크리고 선 이호남의 아내는 갑작스런 봉변에 놀란 나머지 당황하고 민망하여 할말마저 잊고 있었다.
 다음 날부터 복금이는 여맹에 불려나가 전선원호사업에 참가해야 했고 박병술이도 다리가 채 낫기도 전에 민청에 나가야만 했다. 각종 군중대회에 참가해야 했고 군수물자운반, 폭격에 파괴된 도로와 교량복구 작업, 토지개혁을 위한 농지조사, 혁명가요 배우기 등 해방구의 모든 일상생활에 참여해야 했다.
 
 장백산 줄기줄기 피어린 자국
 압록강 굽이굽이 피어린 자국
 오늘도 자유조선 꽃다발위에
 역력히 비춰주는 거룩한 자국

 이라는 노래도 배웠고

 동무들아 준비하자 손에다 든 무장
 제국주의 침략자를 때려 부수고
 용진勇進 용진 나아가세 용감스럽게
 억 천만번 죽더라도 원수를 갚자

 라는 항일유격대시절 가요도 배웠다. 마을의 젊은 청년들 속에서 노동당가입을 유도하는 선전선동사업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복금이는 여맹위원장의 설득으로 벌써 노동당원이 되었다. 이호남은 농민위원회에서 토지분배위원이 되었고 그 아내도 여맹에 나가 전선원호사업에 참가했다.
 “지주, 자본가들을 타도하고 인민이 다 같이 잘사는 공산주의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혁명의 후계자인 우리 민청원들이 앞장서야 하오. 박병술 동무도 빈농의 아들이잖소. 그러니 누구보다도 혁명사업에 솔선수범해야지. 노동당에 가입하시오. 이것은 혁명에 대한 박동무의 태도를 시험하는 기회요.”
 병태는 선전사업의 예봉을 유독 박병술에게 집중했다.
 “아마도 무슨 냄새를 맡은 모양일세. 산에 가면 산노래 부르고 들에 가면 들노래 부르라는 속담도 있지 않나. 살기 위해서라도 어쩌겠나. 눈 꺽 감고 노동당에 가입하게나. 일단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끄고 봐야할 게 아닌가. 더구나 자넨 인젠 혼자 몸이 아니네. 내 딸을 봐서라도.”
 이호남이 덩달아 부채질한다.
 조국을 배반하고 군인의 양심을 저버리는 비굴한 처사라는 생각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돌아가는 상황이 순종하지 않으면 안 되게 그를 핍박하고 있었다. 입당을 거부하면 혁명에 대한 그의 태도가 부정적으로 보일 것이고 그러면 의심과 추궁이 뒤따르고 국군이라는 신분도 드러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혼자만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호남과 복금이도 피치 못할 재난을 겪게 될 것이다.
 그밖에도 시세와 타협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또 있었다. 솔직히 대세는 이미 결정된 판국이나 다름없었다. 인민군은 벌써 남반부국토면적의 3분의 2를 『해방』시켰고 『토지개혁법령』공포와 실시에 의한 인민대중의 『공화국』에 대한 신뢰와 지지는 극치에 달하고 있었다. 어쩌면 『공화국』은 그들의 주장대로 인민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지상의 낙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이다. 해방정국이후 일찍이 농촌이 이처럼 활기를 띠었던 적은 없었다. 솔직히 자신의 신념이 변화하는 현실 앞에서 동요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그는 놀랐다.
 결국 그는 당세포조직의 선전과 이호남의 설득에 두 손을 들고 말았다. 낫과 망치를 그린 붉은 당기 아래서 주먹을 불끈 부르쥐고 혁명의 명의로 선서를 하는 순간 박병술은 그 장엄하고 비장한 분위기에 마음이 경건해지기까지 했었다. 동지들이 합창하는 『적기가赤旗歌』는 감동적이었다.

 높이 들어라 붉은 깃발을
 그 기 밑에서 굳게 맹서해
 비겁한 자야 갈라면 가라
 우리들은 이 깃발을 지키리라

 국군병사가 노동당원이 되었다.
 1950년 7월 25일.
 그 날은 박병술의 인생에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기억으로 남았다.
 믿기지도 않았고 믿을 수도 없었다. 그는 자신이 지금 무슨 행위를 하고 있고 그 행위의 결과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도 몰랐다. 모든 결단은 상황에 따랐고 최종결정의 이유는 생명의 연장이었다.
 그리고 며칠이 안 되어 그는 병태의 선동으로 의용군에 입대했다. 드디어 국군복장대신에 인민군복을 입고 동료의 가슴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게 된 것이다. 그래도 박병술은 별로 양심의 가책 같은 건 느끼지 못했다. 그는 단지 대세의 흐름을 따라 갈뿐이었다. 오래잖아 인민군은 남반부전체를 『해방』할 것이고 반도 땅에는 통일된 공화국정부가 수립될 것이다. 그것은 당시 대부분백성들의 생각이었다.
 의용군훈련소로 떠나가기 전날 복금이는 집 뒤의 밤나무 숲 속에서 박병술과 작별을 고했다. 그처럼 수줍음을 잘 타던 복금이가 스스로 옷을 벗고 순결을 바치기를 자원했을 때 박병술은 흥분할 대신 도리어 당황해졌다.
 “복금씨!”
 “아무 말씀도 하지 마세요. 전 이미 당신의 아내가 된 몸이에요.”
 그날. 햇빛이 폭포처럼 쏟아지는 그 밤나무 숲 속에서 박병술은 눈물을 흘리며 진정한 사나이가 되었다. 그리고 복금이를 여자로 태어나게 했다. 그것은 현실이면서도 꿈이었다. 
 “언제까지라도 기다릴게요. 꼭 살아서 돌아오세요.”
 마을의 동구밖까지 따라 나오며 복금이는 연신 두 볼로 흐르는 눈물을 옷고름으로 찍어냈다.
 “병태녀석 조심해.”
 그 말밖에 다른 할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손이라도 꼭 잡아주고 포옹이라도 해줄 수 있었는데도. 병태는 동지이면서도 그에게는 여전히 연적이었다.
 동지이면서 적!
 이게 다 무슨 말인가. 

'문학 > 소설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편연재 "바람의 아들" 24  (0) 2010.01.04
장편연재 "바람의 아들" 23  (0) 2009.12.29
장편소설 "바람의 아들" 21  (0) 2009.12.21
장편소설 "바람의 아들" 20  (0) 2009.12.14
장편연재 "바람의 아들" 19  (0) 2009.12.07
Posted by 아데라
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