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아들
장혜영
3장 붉은 단풍
1
윤정의 외할아버지의 회고록은 정도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지금까지 정도는 그분을 애국자이고 나라를 위해 피를 흘린 영웅이고 신념과 사명에 충직한 대한민국국민이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그분이 자신의 신조를 저버리고 조국을 배반하고 군인의 사명을 망각한 배신자라니?! 노동당가입은 무엇이고 의용군입대는 또 무엇인가.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생전에 그분한테서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었기에, 그분을 아내의 가족을 빛낸 영웅으로 우러렀기에 그 실망감과 실망감은 그만큼 체적이 큰 것이었다.
살아남기 위해서, 「뒈지지 않기 위해서」신념도 조국도 소신도 죄다 헌신짝처럼 버린다는 것이 정당한 명분으로 될 수 있는가? 그러면 정의란 무엇이고 신념이란 무엇인가. 생명영위가 그 모든 것을 지불하고서도 지킬만한 가치가 있는가.
정도는 3분의 1도 채 읽지 못하고 이름 할 수 없는 배신감을 느낀 나머지 회고록을 방구석에 내던지고 말았다.
부처님 뒤도 뒤져보면 삼검불 뿐이라더니!
허탈감이 폭풍우를 거느린 먹구름처럼 가슴 속으로 밀려들었다. 결국 믿음은 결여를 완벽함이라고 보는 어리석음과 무지에 불과한 것이었던가. 생활의 신조란 한낮 허울 좋은 장식품에 불과한 것이던가. 생명을 위한 어떠한 선택도 정당하다면 신념과 정의는 자신의 지고무상의 권좌에서 퇴진하여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세상은 무법천지가 될 것이고 온갖 술수와 음모와 기회주의와 배신이 난무랄 것이고.
이상하게도 배신감과 허탈감은 정도의 가슴에 커다란 불만의 황무지를 만들었고 본능은 그 황무지위에서 마구 날뛰는 흉악한 야수처럼 으르렁거린다. 공들여 축조했던 마음속의 견고한 구조물들이 홍수에 말끔히 밀려가고 폐허가 된 느낌이다. 마음의 계곡에는 쓰레기들만 고약한 악취를 풍기면서 퇴적물로 쌓여있다.
그래서 아내에 대한 점유욕도 그만큼 집요하고 강압적이기까지 했던 지도 모른다. 사랑이라는 명분을 구실로, 뭔가 정당한 삶의 지향을 통해 구멍 난 상처를 치유하고 싶었다. 물론 그런 욕망은 영적인 것이기 전에 육적인 것이었지만 명분도 서고 정당성도 기저에 안받침된 것이어서 중력을 잃고 일탈을 꾀하는 그의 마음이 매달릴 만한 지푸라기쯤으로는 충분했다.
그러나 윤정은 학봉리에서 상경한지 3일째가 되었으나 그의 요구를, 남편으로서의 정당한 요구를 완강하게 거부하고 있었다. 그날 이후로 그녀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침묵만 지켰고 모든 의욕을 상실한 식물인간 같았다. 지어는 자신의 몸을 단장하는 일까지도 죄다 포기한 채 외할아버지의 회고록을 보지 않으면 정원에 나가 맥을 버리고 벤치에 앉아 먼 산만 물끄러미 바라본다. 머리마저 빗지 않아 푸시시한데다 몸도 씻지 않았고 화장도 하지 않았다. 옷도 온종일 헐렁한 추리닝만 대충 걸치고 있었다.
“자기 왜 그래? 우리 얼마 만에 만났는데. 꼭……”
정도가 윤정의 이불 속으로 파고들면 그녀는 말없이 침대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가버린다. 유치함과 비굴함도 무릅쓰고 거실까지 따라 나가 뒤에서 허리를 껴안으면 얼굴을 찌푸리고 몸서리를 쳤다.
정도는 갑자기 그러는 아내가 두려워졌다. 윤정의 가냘픈 신변을 견고하게 에워싼 싸늘한 기운은 달아오른 그의 육신을 얼어들게 하는 얼음장 같은 한기가 포만했다. 가까이에 다가서기만 해도 금시 불방망이처럼 달아오르던 윤정이었다. 수줍어 얼굴을 붉히며 두 눈을 감고 고개를 살포시 숙이던 윤정이었다. 남편이 하는 대로 조용히 몸을 내맡긴 채 부끄러운 몸짓으로 가볍게 응해왔었다. 버들가지처럼 나근나근하고 봄날의 햇볕처럼 따스하고……
그런데 지금의 윤정의 태도는 남편의 존재를 거의 경멸하는 듯싶다.
왜 그러지? 아무 것도 변한 것은 없지 않은가. 단지 윤정의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것밖에 우리사이에는 변한 것이 없다. 모든 것이 종전과 조금도 다른 것이 없다. 그런데 무슨 이유로 윤정은 남편을 외면하고 거부하고 심지어는 역겨워하는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벌룩거리는 콘돔에 절망하는 석준범과 남편의 성적장애에 불만을 느끼는 미경의 뒤를 이어 나도 불행의 길을 걷게 되었는가.
벙어리 속은 낳은 엄마도 모른다고 한다. 도대체 말을 해야 영문을 알 터인데 달래고 화내고 설득을 해보아도 윤정은 끝끝내 입을 열지 않고 있다. 물론 아내의 기분을 모르는 건 아니다. 윤정에게 외할아버지는 아버지이기도 하고 어머니이기도 한 특별한 존재였다. 세상전부라고 할 수도 있었다. 그런 분이 타계했으니 그 충격이 얼마나 컸을 거라는 짐작이 쉽게 간다. 그렇다고 그 충격이 남편을 외면하고 경멸할 이유까지는 될 수 없을 것이다. 도리어 남편에게 더 기대고 의뢰함으로서 외로움과 슬픔을 위안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모든 가사를 정도가 직접 챙겨야 했다. 가정부아줌마는 이틀 전에 그 주정뱅이 신랑이 찾아와 집으로 끌고 가버렸던 것이다. 남자에게 가사를 돌보는 일이 성가시긴 했지만 가정부아줌마가 떠난 것이 하나도 아쉽지 않았다. 도리어 무슨 큰 짐을 벗어버린 듯이 홀가분한 기분이다. 이유 없이 받아야만 했던, 모성애 같은, 부담스럽고 풀기 있게 실려 있던 사랑의 시선……모든 것이 정도에게는 사랑이 아닌 고문이었고 구속이었을 뿐이다. 가정부는 남편 형태의 폭력에 끌려 나가면서도 미미며, 담가야할 초절이김치며 앞뜰의 화분이며 빨아야 할 이불에 대해 걱정했다. 특히나 아내의 식사에 대해 걱정이 태산 같았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해요. 식사를 하셔야죠. 사모님께서 전복 찜을 좋아하시기에……”
“개소리 그만 지껄이고 어서 따라 나와! 제 코밑도 닦지 못하는 년이 남의 걱정은 빌어먹을!”
형태는 가정부의 등짝을 사정없이 밖으로 떠밀었다. 가정부는 그대로 계단 아래로 뒹굴며 땅바닥에 넘어졌다.
“미미는 사탕을 적게 먹여야 돼요. 이가……”
“씨발 년아! 그만 씨부렁거리고 바라나가. 네년이 아니라도 이 사람들은 잘 먹고 잘 살아간단 말이야. 우린 굶어죽기 일보직전이고 젠장!”
윤정은 창문 앞에서 눈물만 흘릴 뿐 아무 말도 없었다. 아내는 말이라는 걸 아예 망각한 모양이다. 혹시 충격 때문에 실어증이 발작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이다. 아니면 윤정은 이 세상 모든 인간에 대한 관심의 등불이 꺼지고 의욕을 포기한 건지도 모르겠다. 인정, 사랑, 가정, 일상……
결국은 정도 쪽에서 포기하고 말았다. 죽음은 윤정에게 모든 생의 가치가 무의미한 것으로 보이게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남편의 사랑이라는 것도 늑대의 광기와 동물적 욕망의 그 이상, 이하도 아닌 것으로 보였을 테고. 어쩌면 정도자신도 사랑을 빙자하여 자신의 행동을, 윤정의 육신을 한낮 성욕의 도구로, 쾌락의 대상으로 여겼던 무례함을 정당성이라는 현란한 포장 속에 은폐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윤정은 이제 더 이상 남편의 성욕을 만족시켜주기 위한 성도구가 되기 싫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죽음은 윤정에게 어떤 영적이고 기적적이고 돌연적인 깨달음을 준 것은 아닐까. 윤정은 분명 한 순간에 세상의 모든 허위와 인생의 무상함을 달관해버린 것이다.
그것은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인생은 결코 진지한 것도 아니고 영원한 것도 아니며 사랑은 절대로 섹스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면 그 사람은 스스로 세상 속에서 자신을 소외시킬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학 > 소설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편연재 "바람의 아들" 25 (0) | 2010.01.11 |
---|---|
장편연재 "바람의 아들" 24 (0) | 2010.01.04 |
장편연재 "바람의 아들" 22 (0) | 2009.12.24 |
장편소설 "바람의 아들" 21 (0) | 2009.12.21 |
장편소설 "바람의 아들" 20 (0) | 2009.12.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