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연재 "붉은아침" 3
제1부 백년빙곡冰谷
장혜영
2장 고요한 은파강
1
쭈르륵- 철떡 쿵!
쭈르륵- 철떡 쿵!
물레방아 돌아가는 소리가 유난히 구성지다. 달빛은 무르익어가는 황금벌에 은가루처럼 은은하게 부서져 내린다. 손가락으로 찍으면 흠씬 젖도록 묻어날 것만 같다.
덕구는 곱단의 옆에 엉거주춤 쭈그리고 앉아 베치마저고리를 입은 그녀가 확 밖으로 튕겨져 나오는 곡식을 몽당비로 쓸어 넣고 있는 모습을 취한 듯 바라보았다. 길게 땋아 늘인, 굵직하고 윤기 반드르르한 탐스러운 가랑머리는 씨암탉 엉덩이 같은 푸짐한 그녀의 둔부까지 치렁거리고 분홍댕기는 무심결에 날아든 호랑나비 같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저고리 밑으로 빠끔빠끔 드러나곤 하는 가슴은 통통하게 잘 익은 봉숭아 같았다. 방년 18세의 처녀인 곱단은 아침이슬을 머금고 금방 피어난 꽃송이를 방불케 했다.
“뭐락카노? 긍께 시방 요것이 증말 촌장 어르신이 주었당가. 맬겁시?”
덕구는 벌써 몇 번이나 반복해서 확인을 했다. 믿어지지 않아서였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러타이까네. 앓는 오마니한테 이팝이락뚜 해서 대접하라며 줍더구마.”
눈물이 헤푼 곱단의 말꼬리에 어느새 물기가 흥건해졌다. 웃을 때마다 깊숙이 파이군 했던 보조개를 본 지도 벌써 오래였다.
곱단의 어머니는 벌써 3년째나 폐결핵으로 몸져누워 앓고 있었다. 궁벽한 살림이라 쌀 한 톨 구하기 어려워 나물죽으로 여태껏 잔명을 부지해왔다. 그런데 느닷없이 오늘 저녁 한상권이 벼 한 말을 보내와 곱단은 오랜만에 병환으로 누워 계신 어머니께 쌀밥을 지어드릴 수 있게 되었으니 어찌 촌장이 베푼 은혜가 고맙지 않으랴.
한상권은 강촌마을 촌장이자 강촌은 물론이고 주변의 크고 작은 20여 개 마을을 먹여 살리는 넓은 은파벌에서도 두 번째 가라면 서러워할 만큼 만석꾼지주였다. 이 고장은 비옥한 은파벌을 적시는 젖줄기인 은파강을 끼고 있어 예로부터 소문난 곡창지대였다. 한상권의 토지는 비옥한 은파강기슭을 따라 아득하게 뻗어있었으며 덕구네와 곱단이네는 그 땅에 명줄을 걸고 사는 소작농들이었다.
“근디 머시냐, 그 순사넘언 머땜시로 요상허게 느검니 첩약까장 지어보냈어랑가?”
덕구는 읍내에서 순사노릇하는 한상권의 맏아들 한종수의 심상치 않은 거동에 은근히 신경이 쓰이는 모양 곱단의 옆에 한걸음 바싹 다가앉는다. 물방앗간은 논벌 한가운데 자리 잡은지라 개구리들과 풀벌레의 울음소리가 요란했다.
“머이느 머이게씀둥. 얼씨덩 비즈 가프락꾸 기러는겝지비. 이글레는 할랄 건너 찾아와서는 못살게구꽈니.”
“으메! 쩌런 처죽일넘 봤간디! 얙주고 빙주고 아조 사램으 죽일락꼬 작쩌으 혀삐린깅가?”
덕구가 버럭 언성을 높이는 바람에 개구리들이 놀라 울음을 딱 그쳤다.
“삼여이나 밀긴 비지잼꺄. 며칠 아누루 갚아내라구 야단하이까나 낸들 무숭 뱅법이 있슴둥. 오마니가 앓아두 약 한첩 지을 돈도 없는디요. 어저께는 이삼일 안으로 비즈 물지 못하문 나리댁 자근년으루 들일 테이까 그리 알라고 으름짜으 노쿠 가쓰꾸마.”
곱단의 입에서는 저도 모르게 가느다란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 탄식은 있는 자에 대한 저항의 힘조차 없는 자신의 무능함에 대한 원망이기도 했다. 덕구는 그녀의 원망이 자신에게로 향한 느낌이 들어 더구나 한종수가 미워졌다.
“머시락꼬? 지가 머신디 지빌 자근년으로다 들인닥카노. 쩌런 즘성맹키로 나쁜넘! 비즈 모가팠닥꼬 자근년으로다 들인닥카는 벱이 워디 있지라. 안 뎌, 그라진 못혀. 이 덕구가 살아 있는 한 지놈 뜻대로다 안 딜끼여. 그랴, 이넘아 니캉내캉 누 이기나 어이 심겨뤄보딘. 지넘이 순사먼 누 무서워헐 줄 알제.”
덕구는 벌떡 일어서며 두 주먹을 불끈 거머쥐었다. 그의 우묵하게 꺼진 두 눈에서 시퍼런 독기가 번뜩였다. 성이 나면 물불을 헤아리지 않는 불같은 성미인지라 금방이라도 무슨 일을 저지를 것만 같아 곱단은 손에 땀을 쥐었다.
“지발 참읍소. 우리 가튼 상꺼뜨리 무숭 멕이 있따구 칼잘기 틀어진 나리들하구 달게들겠다는검둥.”
그녀는 절망과 두려움으로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다.
덕구는 옷고름으로 눈물을 찍어내는 곱단의 들먹이는 어깨를 힘주어 껴안았다.
“걱정말랑께로. 내가야 지비를 오시레미 지키줄 팅께 울도 마소.”
덕구는 곱단을 달래느라 일단 큰소리는 뻥 쳐놓았으나 마음은 여전히 불안했다. 그와 곱단이가 좋아한다는 건 동네방네가 다 아는 사실이었다. 그런데도 종수란 놈이 곱단일 눈독들이고 있으니 덕구쯤은 안중에도 없음이 분명했다. 덕구네는 한상권의 소작농이고 곱단이네는 분가한 종수에게 딸려나간 소작농이었으니 깔볼 만도 했다. 곱단의 우려처럼 주인과 대적해 보았자 손해 보는 쪽은 덕구일 것이었다. 허나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서 당할 수 도 없잖은가. 곱단이를 구하자면 빚을 갚아야 했다. 그러나 3년 동안이나 밀린 빚을 무슨 수로 갚는단 말인가. 생각할수록 울화통이 치밀고 속에서 불길이 활활 타올랐다.
“나리님의 빚 재촉도 재촉이디만 기것 보담두 난 이글래 베이 더 기퍼진 오마니가 걱정되꾸마. 오늘 낼을 넨길꺼가티 모타꾸마.”
곱단은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느라 덕구의 가슴에 얼굴을 깊숙이 묻었다. 덕구는 가슴이 화끈 달아오르며 덩달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종수놈보다 기운이 모자란 것도 아니었다. 단둘이 승부를 가르라면 이길 자신이 만만했다. 그런데도 그와의 대적에서 질 수밖에 없는 자신의 운명이 불행해졌다.
“너머 실퍼혀쌓들 말랑께. 요로코롬 히칸 쌀밥 흐끈히 지어 대접혀먼 엄니 빙도 쬐깨 나을끼구만. 글티?”
그제야 곱단은 울고만 있을 때가 아님을 깨달은 듯 덕구의 품에서 떨어져 방아 앞에 쪼크리고 앉았다. 빨리 방아를 찧어 쌀밥을 지어 올려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두 사람은 밤이 깊어서야 물방앗간을 나섰다. 달빛에 희미하게 드러난 오솔길은 우거진 나락 속을 꿰뚫고 멀리 어둠 속에 묻힌 마을로 이어져 있었다.
둘은 말이 없었다. 바야흐로 닥쳐올 불행이 그들을 바닥없는 공포와 두려움의 심연으로 밀어 넣었다. 냉혹한 현실 앞에서 두 사람은 무능했고 속수무책이었다.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건 단 하나 막연한 기다림뿐이었다.
덕구는 쌀자루를 어깨에 걸머지고 앞에서 털썩털썩 걸었고 곱단은 쌀겨를 담은 키를 머리에 이고 그 뒤를 졸랑졸랑 따랐다. 그들의 발길이 닿을 때마다 풀벌레와 개구리들은 잠시 울음을 그쳤다가는 지나가면 다시 목청을 합쳐 울어댔다. 달빛은 울퉁불퉁한 들길에 깔리며 금시 구겨지고 더러워졌다.
먹물 같은 어둠에 묻힌 곱단이네 오막살이는 자그마한 무덤 같았다. 기름이 다 타버렸는지 등불까지 꺼진 방 안은 무시무시한 어둠이 웅크리고 있어 겁이 더럭 났다. 찢어진 창호지며 찌그러든 지게문이며 허물어지고 삐딱하게 기운 흙벽이며 무너지고 부서진 토담이며 낮게 드리운 처마는 그 안에 산사람이 숨을 쉬고 누워 있다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만큼 황량하고 을씨년스러웠다.
“오마니, 곱단이가 와쓰꾸마. 오마니……”
오늘따라 집안 분위기가 으스스하여 불길한 예감부터 스쳤다.
지게문을 열고 캄캄한 방 안에 들어서던 곱단은 방 안의 괴괴한 정적에 저도 모르게 머리카락이 곤두서며 뒷걸음을 쳤다.
“머땜시 그랴? 엄니가 앙그 지기는겨?”
덕구가 그녀를 제치고 방 안으로 성큼 들어갔다.
방 안엔 어둠과 정적만 자옥할 뿐 무덤 속처럼 괴괴했다. 덕구는 주머니에서 부시를 꺼내어 등불을 켰다. 꺼멓게 타버린 심지를 돋우자 삽시에 어둠이 밀려나가며 방 안이 밝아졌다.
곱단의 어머니는 전에 없이 방 한가운데 멍하니 앉아있었다. 요 며칠간은 한 번도 앉아 있어 본 적이 없는 분이었다. 그녀는 병마에 녹슨 흐릿한 두 눈을 커다랗게 부릅뜬 채 엉거주춤 방 안에 들어서는 딸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녀의 눈길은 딸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초점이 상실되었고 강렬한 갈구가 번뜩였지만 멍청해 보였다. 회령댁이 불현듯 딸을 향해 두 팔을 벌리는 바람에 곱단은 혼비백산하여 덕구의 등 뒤에 숨었다. 18년 동안이나 이 집에서 함께 살아온 엄마였다. 3년 전 아버지가 세상을 뜬 뒤 엄마는 병석에 앓아누웠고 그녀는 열다섯 어린나이 때부터 오늘까지 엄마 옆에서 병 수발을 들었다. 그랬지만 한 번도 엄마가 무섭거나 두려운 적은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 웬일인가? 엄마의 손끝이라도 몸에 닿을까봐 소름이 끼치니 말이다.
“곱단이 엄니, 머땜시 이라고 있심니껴? 징하게 아퍼라우? 기야 노겠지라우.”
덕구가 회령댁의 어깨를 눌러 환자를 자리에 눕히려고 했으나 막무가내였다.
“곱단아- 곱단아- 우욱- 우욱!”
딸의 이름을 연거푸 부르더니 갑자기 입으로 뭔가를 왈칵왈칵 토해내기 시작했다. 덕구의 등 뒤에 숨은 채 엄마를 훔쳐보던 곱단은 다시 한번 소스라치게 놀랐다. 엄마의 입과 코와 두 귀와 눈에서 시뻘건 피가 철철 쏟아져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회령댁의 얼굴은 삽시에 피투성이가 되어 모습을 알아볼 수가 없게 되었다. 그렇게 토혈하며 멍석을 깐 구들 위를 벌벌 기어 다니며 딸의 이름을 애타게 불러댔다.
“오마니, 어째 이럼둥? 오마니, 난 거비나꼬마. 이레지 맙소예.”
곱단은 전신을 화들화들 떨며 발을 동동 굴렀을 뿐 감히 엄마 곁으로 다가갈 엄두를 내지는 못했다.
“틸렸당께. 내가 읍내에 가 의원을 델꼬 올 팅께 지비는 엄닐 잘 살페유.”
덕구는 부랴부랴 밖으로 뛰쳐나갔다.
“나뚜 가치가겠스꼬마.”
곱단이도 덩달아 방 안에서 뛰쳐나왔다.
“안 뎌. 즈그 엄닐 혼자 집따 둘락카소. 싸게 댕게 올 팅께 엄니나 잘 보살핌시로 지달코 있어사 쓰것지라우.”
덕구는 바람같이 골목으로 사라졌다.
방 안에서는 그냥 딸의 이름을 부르는 회령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가 점점 급촉해지며 욱욱하고 토혈하는 차수도 더욱 잦아졌다.
곱단은 쑥 바자 밖에 웅크리고 선 채 후들후들 떨기만 했다. 오마니, 오마니 하고 입 속으로 중얼거리기만 했다. 회령댁이 그처럼 애절하게 딸을 부르고 있었으나 그녀는 방 안으로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강촌에서 읍내까지는 15리 길이었다. 마을을 나서면 은파강을 건너야 했다. 그러나 덕구가 강가에 이르러 보니 공교롭게도 나루터에는 사공이 없었다. 잠자러 들어간 모양이다 .나룻배에 자물통까지 덜컥 잠겨 있어 사용할 수도 없었다.
덕구는 옷을 벗어 머리 위에 쳐들고 물속에 텀벙 들어섰다. 수심이 깊은 곳에 이르자 강물을 헤엄쳐 건넜다.
15리 길을 내처 달렸다.
읍내 병원 역시 문이 닫혀있었다. 주먹이 터지도록 대문을 두드려서야 겨우 의원을 불러낼 수 있었다.
“예약금 가져 왔어?”
의원이 묻는 첫마디는 돈이었다. 비단 잠옷을 걸친 의원의 아랫배는 함지박만 했는데 금방이라도 터질까봐 겁이 날 정도였다.
“죽어가는 사램부터 살레논코 돈언 냉중에……”
“안 돼. 그리고 밤에는 왕진을 하지 않으니까 그만 돌아가.”
대문을 덜컥 닫고 안으로 들어가더니 다시는 그림자도 드러내지 않았다.
“개자슥! 사램목숨보담 돈이 질 중허냐! 니껀넘두 다 으원이냐 더럽다!”
침을 탁 뱉고 돌아섰다.
덕구가 다시 15리 길을 달려 곱단이네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회령댁은 사망한 뒤였다. 그 때까지도 곱단은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울타리 밑에 쪼크리고 앉아 불안과 공포에 휩싸여 오돌오돌 떨고 있었다. 덕구를 보자 어린애처럼 달려와 와락 품에 안겨들었다. 그녀의 전신은 살 맞은 참새처럼 파득파득 떨렸다.
“오마니가 시미 끄너진가 보꾸마. 아깨붙텅 아무 기척도 딜리지 않스꾸마. 어케함둥?”
흐느낌에 범벅이 된 말마디들이 달달 맞쪼는 잇소리에 토막 났다.
덕구가 방 안에 들어가 보니 회령댁은 부엌바닥에 곤두 박혀 두 눈을 부릅뜬 채 숨이 끊어져 있었다. 구들 위에 편 멍석은 환자가 토해낸 토혈로 피투성이가 되어있었다. 한종수가 보내 준 첩약을 달이던 약탕관은 바닥에 쏟아져 약재들이 지저분하게 흩어져있었다.
“오마니, 오마니, 딸년으 혼차 내비리구 가뭉 난 어케 살람둥?”
곱단은 멀찍이 물러서서 울기만 했다.
덕구는 주검을 옮겨다가 구들 위에 눕혔다. 그녀의 두 눈은 살았을 때와 꼭 같이 허공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덕구는 손으로 고인의 눈을 쓸어 감겨주었다.
“내가 즈그엄닐 지킬 팅꼐 머시냐, 지비는 얼렁 울 아베헌티 싸게 뛰어가 알리소.”
“혼차 무서바서 못 가게스꾸마. 가치 가겝소.”
“엄닐 혼차 두고야.”
무슨 수가 없었다. 덕구는 그녀와 함께 어두운 골목길을 달음박질쳤다.
자다가 일어난 덕구의 아버지 최복만은 부고를 듣고도 놀라는 기색이 아니었다.
“암래도 돌아개길긴디 산 사램만 무산시리 고상시킴시로 죽었당가.”
긴 병엔 효자가 없을 뿐만 아니라 동네사람들의 동정마저 받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최복만은 베 바지저고리를 걸치고는 깊은 잠에 곯아떨어진 맏아들 덕민을 흔들어 깨웠다. 덕민은 잠에서 깨어났으나 무슨 영문인지 몰라 턱으로 흘러내린 침을 후루룩 들이마시며 아버지와 동생을 번갈아 쳐다보기만 했다.
안방에서 자던 여동생 향란이도 어느새 잠을 깨고 사랑방으로 나왔다.
“오빠, 무슨 일이 생겼어요?”
하얀 저고리와 검정색 주름치마를 입은 향란은 은파시의 여자중학교재학중인, 동네에서도 드문 중학생이었다.
“곱단이 엄니가 돌아개깄어야.”
“네? 끝내 돌아가셨군요. 언니 어떡해요. 너무 안 됐어요.”
“곱단이 움니가 죽었디?”
그제야 정신을 차린 덕민이도 꿈지럭꿈지럭 이불속에서 빠져나왔다.
“굼빙이 맹키로 꾸물허들 말고 싸게 옷입으랑께.”
복만은 늘어빠진 맏아들을 독촉했다. 덕민은 태산이 무너져도 꿈쩍하지 않는 천하태평의 느린 성미의 소유자였다.
“압씨, 성 지달리다가 날쌔가 볽것지라우. 곱단엄니 혼자 집따 두고 왔거든라우. 긍께 울찌락도 몬첨 가이다.”
세 사람은 꾸물거리는 덕민을 뒤에 남겨둔 채 먼저 집을 나섰다.
벌써 어디선가 새벽닭이 운다. 가을이라 새벽기온은 제법 쌀쌀했다.
게다가 하늘은 시커멓게 흐려 별 하나 보이지 않았다. 음산한 바람까지 불어 마을의 느티나무가지들을 부산하게 흔들었다.
“나리께 알레사 쓰겄는디.”
최복만은 자꾸만 벗겨지는 헌 미투리를 집어 신느라 뒤떨어져서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 사램언 머땜세 알리것다요?”
“촌장이 앙그간디.”
“촌장이 머시간디, 흥.”
덕구는 무슨 일에서나 지주 한상권을 앞에 내세우는 아버지가 못마땅했다. 일곱 살 때부터 한상권을 도련님으로 모시고도 그놈의 종노릇이 지긋지긋하지도 않을까 싶었다. 4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하인배가 아닌 소작농이 된 지금까지도 상전 모시듯 했다.
“허긴 새복부텀 나릴 놀래켜선 앙그 될거구먼. 온아적에 보자.”
“그 양반이 앙그락도 울찌리락도 언마던디 되지라.”
덕구는 투덜거리며 앞장서서 골목길을 달려갔다.
날이 밝자 덕구는 아버지가 어디론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을 뒤늦게야 발견했다.
최복만은 얼마 뒤 한상권과 함께 초상집에 나타났다.
머리에 탕건을 쓰고 마고자를 입은 한상권은, 키가 훤칠하고 건장한 체구를 가진 당당한 기풍의 사내였다. 오른손에 든 기다란 장죽의 상아물부리와 구리 장식 그리고 옆구리에 매달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멋스럽게 흔들거리는, 반들반들 윤기 도는 안경집은 가난한 사람들의 눈에는 유난히 사치스럽게 보였다.
최복만은 종놈처럼 지게에 쌀섬이며 고기며 막걸리며 무겁게 지고서도 한상권을 안내하느라 앞에서 연신 굽실거렸다.
덕구는 아버지의 그 비굴한 모습이 눈꼴사나워 이맛살을 찌푸리며 외면했다. 그런데 형님 덕민이마저 한상권이 나타나자 엉기적엉기적 달려가 허리를 굽혀 절을 한다. 덕구는 공연히 화가 치밀어 애꿎은 마당의 돌멩이를 발길로 걷어찼다. 그러나 엄지발가락이 터지며 아플 뿐이었다.
한상권은 초상집에 도착하자마자 문상 온 동네사람들을 지휘하여 각자 맡을 일들을 지시했다.
“여인네들은 시신을 염하고 최 서방과 덕민은 구덩이를 파고 덕구 넌 읍내로 가서 의원을 모셔오너라. 소독을 해야겠다.”
“싫어라우. 난 구데이를 폴러 갈꺼구먼유. 내가 머땜시 그 즘생맹키로 디러운 으원넘을 디리러 간답디여.”
덕구는 동네사람들을 가신 부리듯 쥐락펴락하는 촌장의 방약무인도 눈꼴사나웠고 돈밖에 모르는 읍내 의사도 미웠다.
“이 문둥아, 나리의 말씀을 감히 거역허다니!”
최복만이 꾸중했지만 덕구는 못들은 척 하고 어느새 삽을 둘러메고 무덤을 파러 가는 사람들 속에 슬쩍 끼어들었다.
“암래두 덕민이 니가 읍내루 댕게와사 쓰겄다. 꾸물거리들 말고 싸게 댕게온나.”
덕민인 군소리 한마디 없이 허리를 굽실하고 마당에서 나갔다.
한상권은 우선 집둘레에 새끼줄을 늘이도록 했다. 그리고 동네 아줌마들을 가까운 이웃집에 보내어 떡쌀을 씻어 앉혀 조문객들의 음복 준비를 다그치도록 포치했다.
덕구는 왠지 한상권의 그런 선심과 자비가 부담스러웠다. 동네사람들은 모두 한상권의 그런 덕성에 감복했지만 그만은 그의 이런 자선이 남몰래 계산되고 음흉한 목적이라도 있을 것만 같이 느껴졌다. 그는 맏아들 한종수가 3년 동안 쌓인 빚을 구실로 곱단을 첩실로 맞아들이려고 하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알고 있다면 왜 묵인하는가?
점심때가 되어서야 시신을 거적에 말아 들것에 들어냈다. 들것 뒤를 따르는 상주는 곱단이 한 사람 뿐이었다. 게다가 잔뜩 흐렸던 하늘에서 오후부터는 빗줄기가 쭈룩쭈룩 쏟아지기 시작했다.
앞에는 덕구와 덕민이 뒤에는 복만이와 상권이 들것을 들었다. 벌써 빗물이 고이기 시작한 골목길은 질척거리고 미끄러웠다. 곱단의 곡성은 비바람과 동네 개들이 짖는 소리와 느티나무가지가 설레는 소리와 빗방울이 흩뿌리는 소리와 더불어 더구나 애처롭게 들렸다. 동네 여인들이 애절한 슬픔을 이기지 못해 비틀거리는 그녀를 부축해주었기에 망정이지 스스로의 힘으로는 한걸음도 옮기지 못했을 것이다.
덕구의 눈에서는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액체가 줄줄 흘러내렸다.
바로 그때 자전거를 탄 순사 한 사람이 초라한 장례행렬 앞을 가로막았다.
한상권의 아들 한종수였다. 중키에 암팡진 체구를 가진 그는 검정 순사제복을 입고 허리에 긴 칼과 모젤을 차고 있었다. 사람들은 누구라 할 것 없이 순사복을 입은 그를 두려워했다. 군도와 권총, 제복과 군화 그 모든 것은 위엄과 권세를 과시하는 것이어서 백성들은 그 앞에서는 숨도 크게 쉬지 못했다. 그러나 덕구만은 그런 종수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머달락꼬 넘의 장례행열을 막는당가?”
덕구는 아니꼬운 시선으로 자전거에서 내리는 한종수를 흘겨보았다. 회령댁이 죽었으니 이제 곱단이에 대한 그의 강박이 더 집요해질 것만은 불을 보듯 뻔했다. 그것만으로도 한종수는 덕구의 적의를 받을 만한 이유가 충분했다.
“폴세 시신얼 내가랍디여? 근디 요로코롬 거적에 말아가꼬 나갈낑가요? 너무 초라허지라우. 상여는 냅두고라도 관 한나락또 장만혀 주어사 눈이나 감꼬 떠날 건디유. 압씨, 동네 목수를 불러사야 관얼 짜가꼬 입관혀삐린담 장례를 지내이다. 관널언 즈그집또 쓸만헌 거시 있응께라우 사램얼 보내 개게오먼 되지라우.”
“글매, 고로코라도 혀는기 존드귀 헌디. 기럼 덕구 니가 술기럴 몰고 가서 관널얼 실어온나.”
덕구는 고개를 떨어트리고 대답을 회피했다. 곱단이를 위해서 그가 해줄 수 있는 일은 고작해서 시신이나 옮겨주고 지켜주고 들것을 들어주는 것뿐이라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했다. 남들은 쌀을 낸다, 술을 낸다, 관곽을 기부 한다 요란을 떠는데 곱단을 좋아한다는 자기는 이 모양 이 꼴이니 어찌 기가 꺾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럴수록 덕구는 한상권과 한종수가 미워졌다. 관을 짜주지는 못할망정 남이 짜주겠다는 성의를 막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 신세가 곱단이를 구속하는 또 하나의 덫이 될까봐 두렵기도 했다.
“암래도 또 덕민이 니가 댕게 와서것다.”
느려터진 덕민이 읍내로 가 관곽을 실어오느라 그래, 목수를 청해 관을 짜느라 그래, 이래저래 시간을 지체하다 보니 장례는 저녁으로 미뤄졌다. 덕민은 관을 짤 재료 실으러 읍내에 다녀오는 길에 논배미 물꼬에 갇힌 붕어를 한 다래끼나 잡아왔다. 게다가 논두렁에 자란 꼴까지 대여섯 단이나 베어왔다. 그 때문에 장례가 늦어졌다고 나무라자 그는 그저 씨물씨물 웃기만 할 뿐 개의치 않았다.
시신을 입관한 다음 수레에 싣고 무덤으로 떠났다. 그 사이 비가 많이 내려 길이 몹시 질척거렸다.
수레는 덕구가 몰았다.
종수는 길이 질어 자전거를 버리고는 저만큼 앞서서 걸어갔다.
얼룩암소는 황천길을 가기 싫은 듯 떼를 썼고 덕구는 발길로 소배때기를 걷어차거나 회초리로 소잔등을 후려치며 종수에 대한 화풀이를 했다.
곱단이는 인젠 눈물도 마르고 목도 쉬어 버린 모양 그저 맥없이 터벅터벅 수레 뒤를 따를 뿐이었다. 그녀는 이따금 날아드는 종수의 눈길에 노골적인 추파가 실려 있음을 발견하고는 감히 그를 쳐다보지도 못했다. 이젠 엄마까지 죽었으니 종수의 빚 독촉은 더구나 불같을 것이다. 그가 엄마한테 저승에서 살 집을 마련해 준 건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그것이 다시 그녀를 옥죄는 새로운 부채가 될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사람들이 관을 수레 위에서 내려 깊숙한 무덤 속에 하관하는 순간 한동안 탈진하여 잠자코 있던 곱단이 그제야 이것으로 엄마와는 영영 이별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모양 갑자기 오열을 터트리며 어린애처럼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산사람은 아니더라도 비록 시신이고 관일망정 옆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엄마와 함께 하고 있다는 위안을 받고 있다가 갑자기 그마저 곁에서 떠나가자 상실감과 당혹감을 느낀 것이다.
“오마니, 가지 맙소! 날 혼차 내비리고 어디멜 감둥. 오마니가 가뭉 내 혼차 어드러케 살람둥. 정 가게스뭉 내두 델꼬 갑소. 지발!”
관 위에 동동 매달려 한사코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여러 사람들이 달려들어서야 겨우 떼어냈다.
잠시 뒤, 공동묘지엔 새로운 봉분 하나가 만들어졌고 하나의 생명이 그 속에 고요히 잠들어 버렸다. 금방 떠 얹은 붉은 산모래 위에 차가운 가을비만 속절없이 내렸다. 사람들은 무덤 앞에서 제주 한 잔씩을 마시고는 어깨를 푹 떨어트린 채 수레를 타고 마을로 돌아갔다.
곱단이 혼자만 무덤 앞에 남았다. 맥을 버린 채 퍼더버리고 앉아 눈 깜짝할 사이에 하나의 흙무덤으로 변해 버린 엄마의 봉분을 넋 없이 바라보았다. 이 험악한 세상에 딸 혼자만을 남겨두고 엄마가 돌아올 수 없는 저 세상으로 영영 떠나갔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비록 병석에 누워서 앓는 몸이었지만 엄마가 옆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녀는 외롭지 않았고 두려운 것이 없었다. 그런데 인젠 엄마가 날 버리고 이 세상을 영원히 떠났으니 어떻게 살아간단 말인가. 생각만 해도 막연했다. 엄마가 딸을 부를 때 들어가 봤어야 했다. 세상을 떠나며 뭔가 딸에게 유언을 남기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늦은 후회였다.
“오마니, 날 베리고 가지 맙소. 갈래거등 날 데꼬갑소.”
곱단은 또다시 흑흑 흐느끼기 시작했다.
“죽어삐린 사램이 살코 있는 사램 말얼 알어딛기락도 현당가?”
느닷없이 누군가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흠칫 놀라 고개를 돌려보니 검은색 순사제복을 입고 금테안경을 쓰고 콧수염까지 기른 한종수였다. 멀리 방죽 위로 수레를 몰고 가는 덕구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울긴, 머땜시 울여야. 나헌티로 오랑께. 묵얼 걱정, 입얼 걱정 없두룩 평생 호강시켜 줄팅께. 빚도 갚을 것 없지라. 오죽 존나.”
곱단은 고개를 떨어트린 채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이미 예측하고 있던 강요였다. 그러나 예측뿐이었지 무슨 유효 대책 같은 건 없었다.
“쇠뿌렁지도 드건짐따 빼비레렸닥꼬 오래 끌 것 없지라. 낼 당장 짐을 꿍져가꼬 울 집으로다 들어오랑께. 내가 끌어가기 아래 지 발따구로다 질어오랑께. 알갔제.”
곱단은 침묵만 지켰다. 빚을 지고 갚지 못했으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이젠 그녀를 지켜주던 엄마마저 세상을 하직했으니 누가 그녀를 도와주랴. 덕구가 지켜준다고 하지만 그 집도 빚더미에 눌려 사는 가난한 소작농이니 무슨 용빼는 수가 있으랴.
자전거페달을 밟는, 절커덕거리는 소리가 등 뒤에서 멀어져갔다. 몸뚱이를 칭칭 휘감고 숨 가쁘게 옭아매던 구렁이가 똬리를 풀고 물러가는 듯 두려움과 긴장이 일시에 스르르 풀렸다.
“오마니, 난 이저 어케하뭉 조씀둥?”
그녀는 무덤 위에 엎드려 구슬프게 울었다.
날이 어두워지는 줄도 몰랐다. 비가 오는 줄도 몰랐다. 집으로 가기도 싫었다. 아니 무서웠다. 엄마가 없는 집이 싫었다. 엄마가 죽어서 무덤 속에 묻히긴 했지만 그래도 빈 집보다 엄마 곁이 좋았다. 엄마가 더는 무섭지 않았다. 귀신들의 마을인 공동묘지도, 옛날에는 대낮에도 혼자서는 근처에 얼씬하지 못하던 공동묘지도 밤이 되었건만 엄마와 함께 있다는 생각 때문에 무섭지가 않았다. 배가 고픈 줄도 몰랐다. 그저 자신의 신세가 외롭고 쓸쓸하고 막연할 뿐이었다. 이대로 엄마의 무덤 옆에서 죽고 싶었다. 덕구에게 시집가지 못하고 한종수의 첩살이로 들어가느니 차라리 엄마의 무덤 옆에서 죽어 버리고 싶다……
“저 곱단 씨……”
느닷없이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곱단은 놀라지도 않았다. 설령 그 목소리의 임자가 귀신이었다고 해도 그녀는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세상을 미워하고 포기한 사람에겐 무서운 것이 없었다.
태연하게, 그러면서도 무심하게,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낯익으면서도 낯설어 보이는 남자가 어둠과 촘촘한 빗발 속에 우두커니 서있었다.
“절 모르시겠습니까? 한상권의 둘째아들 한종철입니다.”
아, 그제야 기억의 골짜기에 서렸던 안개가 걷혔다. 서울 무슨 대학에 공부하러 간다면서 2년 전에 강촌마을을 떠났던, 촌장 어르신 댁 둘째 도련님이었다. 그런데 그 도련님이 무엇 때문에 강촌마을에 다시 나타났으며 또 이 밤에 공동묘지에까지 그녀를 찾아 나왔을까?
그녀는 푸시시 땅바닥에서 일어서긴 했으나 어리둥절한 눈길로 둘째 도련님을 멀거니 쳐다보았다. 누덕누덕 기운 그녀의 베치마엔 진흙탕물이 얼룩덜룩 묻어있었다.
“죄다 들었습니다. 제 형님이 곱단 씨를 첩실로…… 이렇게 체념하고 절망하지 말고 어서 이곳을 떠나세요. 여기 노자로 쓸 돈이 얼마간 있으니 이걸 가지고 오늘밤이라도 어서 강촌을 떠나십시오.”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떠나라니? 도련님께서 나더러 어디로 떠나라는 말인가. 태어나서 18년 동안 그녀가 강촌을 벗어나 본 곳이 있다면 15 리 밖의 읍내뿐이었다. 40리 밖에 은파시라는 큰 도회지가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한 번도 가 본적은 없었다. 사실 가보고 싶지도 않았다. 도회지가 아무리 큰들 나하고 무슨 상관일까 싶었다. 강촌마을만 해도 그녀에겐 너무나 벅찬 곳이었다. 그녀가 바라는 건 무엇이나 다 있었다. 다만 가정이 궁핍하여 그런 것들을 소유할 수 없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곱단은 도련님이 건네준 돈 자루를 손에 든 채 장승처럼 멍하니 선 자리에 굳어있었다. 얼굴로는 굵은 빗물이 줄줄 흘러내렸고 젖은 머리카락이 헝클어져 시야를 가렸다.
“은파시도 좋고 간도도 좋고 어딜 간들 여기보다 못하겠습니까. 어머님께서도 타계하셨다니 미련 같은 것도 없으실 테고……”
“곱단이, 거그 있제라?”
비가 구질거리는 어둠 속에 검은 그림자 하나가 나타나 그들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곱단은 걸걸하고 빠른 말씨의 목소리만 듣고서도 그가 덕구임을 알았다.
“여그서 머혀고 있는겨? 난 집에 개긴 줄만 알았지라.”
덕구는 그제야 곱단이 말고 또 한 사람이 있음을 발견하고는 말을 멈추고 상대방을 확인하느라 어둠 속에서 종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덕구 형님이 아닙니까? 저 종철입니다.”
“으매! 도련님께서 머달라꼬 역까장……”
덕구는 흠칫 놀라며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서울에서 공비허신담시로?”
“그럴만한 사정이 좀 있어서요.”
“근디 요것은 머신디?”
덕구는 아직도 곱단의 손에 들려 있는 돈주머니를 쳐들어본다. 절그렁거리는 금속마찰음이 밤의 정적 속에서 유난히 싱싱했다.
“곱단 씨더러 이곳을 떠나라고……”
“여그럴 떠나락꼬? 곱단이더러 어일 떠나락꼬?”
덕구의 말투가 탁해지자 종철은 갑자기 대답이 궁해진 듯 머뭇거린다.
“즈그들이 사는기 암리 에레워두 이란 돈언 받고 잡지 않어라우. 그라고 도련님두 넘 걱쩡혀쌓들 말고 지비 걱쩡이나 허이다.”
덕구는 돈주머니를 도로 종철의 손에 훌쩍 던져주었다. 그리고는 곱단의 손목을 덥석 잡아 쥐더니 무작정 끌고 그 자리를 떠났다.
“어쩌다가 그넘얼 만났제?”
“내뚜 모르게쓰꼬마. 뭉뜩 나타났째임둥. 나타나서는 날 보구 이 마을에서 도망치라뭉서 돈까장 줍더구마.”
“쩌집 구석넘들언 나쁜 넘들이랑께!”
덕구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방죽 위를 달음박질쳤다.
“아깨 조끄만 나리두 날 보구 낼 댁에 들어오라구 해쓰꾸마. 내 발로 걸어들어 오재이뭉 쪼끄만 나리께서 직접 와가지구시리 데레가걨다구……”
“쩌런 디러운 넘! 지넘이 순사먼 다라더냐. 기찮타는 사램을 머땜시로 마구 끌고갈란당가. 이넘으 시상엔 벱도 없당가?!”
“비즈 제쓰이까나 벨 수 없쨈둥.”
“빚이사 갚으먼 되제.”
“무스걸루 갚게씀둥.”
“걱정말랑께. 내가 넬 당장 빚얼 갚어낼 팅께.”
“증말임둥?”
“증말이구 말구. 내가 은제 곱단이캉 거지깔얼 혀본 적이락도 있간디.”
“지발 비즈만 갚을 수 있다뭉 얼매나 조케슴둥.”
곱단은 덕구의 품에 살며시 얼굴을 묻었다. 두 사람은 비 내리는 골목에서 오래도록 서로를 부둥켜안은 채 꼼짝하지 않았다. 덕구는 세월과 시간이 여기서 정지되었으면 하고 속으로 빌었다. 그녀를 품 안에서 놓고 싶지 않았다. 여기서 팔을 풀면 영영 어디론가 날아가 버릴 것 같았다.
사실 덕구는 일전에 은파강에 나가 목욕을 하다가 우연하게 강바닥 모래 속에 묻혀 있던 청동불상 하나를 주웠다. 값이 나갈 것 같아 여태껏 보관해두었는데 내일 그걸 갖고 은파로 나가 골동품 점에 팔던지 전당포에 저당 잡히던지 해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한 것이지 정말 비싼 값에 팔릴지는 미지수였으므로 덕구의 마음은 여전히 초조하고 불안했다. 만일 청동불상이 헐값에 팔린다면 모든 기대는 수포로 돌아가고 말 것이며 곱단은 종수 놈의 첩실로 끌려가고 말 것이다. 그가 아무리 곱단을 지켜준다고 호언장담을 했지만 정작 총부리를 들이대면 무슨 수가 있으랴. 칼날을 쥔 쪽이 칼자루를 잡은 놈에게 당하게 마련이다.
빗물에 옷이 푹 젖은 곱단은 가냘픈 육신을 파들파들 떨었다.
“집에 들어가기가 무섭슴다.”
“내가 함께 있을 팅께 걱정허들 말고 집에 들어가장께.”
덕구는 먼저 집 안으로 들어가더니 방 안의 멍석을 걷어내고 새것으로 갈아 폈다.
곱단은 할 수 없이 덕구를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엄마가 없는 방 안은 무덤 속 같이 황량하고 적막했다. 다행히도 덕구가 옆에 있어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은 진정되었으나 그것도 잠시 이번엔 또 그가 무서워졌다. 그녀는 될수록 덕구와 거리를 멀리 두고 방구석에 몸을 옹송그리고 앉아 숨을 죽였다. 무엇 때문에 덕구가 무서운지는 몰랐다. 그와 단둘이 방 안에 있으려니 공연히 가슴이 두근거리고 숨결마저 거칠어졌다.
덕구도 애써 곱단에게서 눈길을 외면했다. 그녀만 바라보면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고 가슴속에 뜨거운 잉걸불이 이글거렸다. 저도 모르게 육신에 바위 같은 힘이 불끈불끈 솟아나며 사지가 뻐근해졌다. 괴괴한 정적은 침묵 속에서 팽창될 대로 되어 이제는 조금만 건드려도 폭발할 것만 같아 숨소리마저 죽여야만 했다. 방 안 가득한 귀뚜라미 우는 소리만 귀청을 간지럽게 했다. 방 안은 시루 속처럼 무더웠으나 옷을 벗을 수 없어 두 사람은 땀을 뻘뻘 흘렸다. 희미한 달빛 아래 개구리 우는 소리만 요란했다.
덕구와 곱단은 그렇게 서로 벽 구석에 웅크린 채 하룻밤을 하얗게 회칠하고 말았다.
곱단은 날이 희붐히 밝자 부엌으로 나가더니 어느새 조반을 지어 올려왔다. 하얀 쌀밥이었다. 엄마를 대접하려고 했건만 고인은 한술 맛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는 생각에 덕구와 곱단은 목이 메어 쌀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곱단이가 눈물을 흘리며 수저를 내려놓자 덕구도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몰아쉬며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오늘언 집게서 흐뻑 쉬랑께. 머시냐, 난 은파에 쬐깨 댕게올 일이 있응께 나가 봐야겠구먼. 빚갚얼 돈얼 쬐깨 취헐디 있능가 알아볼락꼬.”
“일찌가이 돌아와사 하꾸마. 쪼꼬만 나리가 오기 전에……”
곱단은 삽짝문 밖에까지 따라 나오며 덕구를 바래주었다. 그녀의 눈가에 저도 모르게 눈물이 글썽거렸다. 어쩌면 이것이 덕구와의 마지막 이별일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 때문이었다. 3년 동안이나 쌓인 그 많은 빚돈을 덕구가 무슨 재간이 있어 구해올까 싶었다. 차라리 그가 보는 앞에서 죽어 버리고 말까.
덕구가 집에 들어서니 아버지 최복만이 마침 아들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오밤중에 어일 싸돌다가 아적에사 오는 거냐? 싸게 싸게 아적 묵거라. 오널은 나리 댁에 개겨 일손얼 쬐개 도와 디레사것다. 어이께 안방온돌을 곤치고 벡바람 도배럴 불러달락꼬 부탁허시더라. 오늘낼루 끝낼락카먼 덕민이캉 니캉 다 함께 가사 쓰것다.”
여동생 향란이가 서둘러 조반상을 차려 올려왔다. 엄마가 일찍이 세상을 떴기에 가사부담은 어려서부터 식구들 중 유일한 여자인 그녀의 어깨에 떨어졌다.
“나리 댁 집곤치는디 머땜시 즈그들이 가사 되지라우. 즈그들이 머시랍디여? 소작농이지라.”
“야가 머신 말얼 그라게 암짝케나 허는겨. 사램이 신세르 모른닥카몬 즘생보담두 못헌겨.”
“즈그들이 쩌집에 먼 신세럴 졌답디여? 토심시럽게.”
“니가 증말 몰라서 묻는 거더냐. 느그아베가 섯바닥이 달아뿌리두룩 말혀주었간디. 암말 말고 싸게 아적이나 묵고 아베캉 항께 개기자.”
“안 되지라. 지는 오늘 어이 가바사 헐디가 있구만유.”
“야가 증말.”
다른 사람에게 성이라고 낼 줄 모르는 최복만은 아들 앞에서도 아버지의 권위를 행사하지 못하고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였다.
덕구는 아버지의 눈길을 피해 안방으로 훌쩍 들어가더니 뭔가 보자기에 싼 물건을 들고 밖으로 바람처럼 사라져버렸다. 그 아버지의 그 아들이라지만 복만이와 덕구의 성미는 물과 불처럼 달랐다. 죽은 제 어미도 닮지 않았다. 어디서 저런 늑대 같은 문둥이가 생겨났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에라, 이 문둥이 놈아!”
그게 복만의 제일 엄한 꾸지람이었다. 아들의 펑퍼짐한 등판을 멀거니 바라보기만 할 뿐 막지는 못했다! 설령 억지로 끌고 갔다 해도 녀석은 어느 틈으로든 도망칠 것이 뻔하다. 황소고집을 닮았는지 녀석의 주장은 누구도 꺾을 수가 없었다.
복만이와 한상권은 오랜 옛날부터 특별한 관계가 있었다. 복만이네는 조상대대로 양반가이던 한상권이네 사노비였고 그 자신도 열 살 때부터 그 집으로 들어가 머슴살이를 하며 한상권을 도련님으로 섬겼다. 그런데 3. 1운동 당시 한상권이 만세운동에 참가했다는 죄로 일경의 추적을 받게 되자 한상권의 아버지 한지주는 아들을 만주로 피난시키면서 머슴인 최복만을 딸려 보냈다. 두 사람은 함께 만주 땅에 들어와 갖은 풍상고초와 산전수전을 다 겪으며 생활터전을 마련했다. 처음에 한상권은 중국인 지주의 마름노릇을 하며 발을 붙였고 복만은 그 집에서 머슴살이를 했다. 자식이 없던 중국인 지주는 임종 전에 일부 땅뙈기와 몸종 꽃분이를 한상권의 유산으로 남겨주었다. 거기다가 고향에서 부친이 사망하며 땅과 집을 처리하여 장만해 보낸 자금까지 합쳐 한상권은 토지를 구입하고 집을 짓게 되었고 강촌마을의 신흥지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한상권은 지주가 되자 생사고락을 같이 했던 최복만을 고맙게 여겨 머슴살이를 면하도록 혜택을 베풀었으며 중국인 지주가 넘겨준 꽃분이와 부부인연까지 맺어주었다. 비록 꽃분은 단명하여 31세의 젊은 나이로 한 많은 세상을 떠났지만 덕분에 복만은 덕민, 덕구 두 아들과 딸 향란을 슬하에 거느린 아버지가 될 수 있었다.
한상권은 또 요즘은 자진하여 향란이의 학비를 대주어 은파여중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했었다. 같은 소작농이라 해도 흉년이나 재해 때는 복만이네 집만은 소작료를 면제해주었고 양식이 빠듯한 보릿고개엔 양곡을 대여해주기도 했다. 그런데도 아들 덕구 녀석은 늘 나리 댁 신세가 없다며 콧방귀만 뀐다. 받은 것의 두 배도 더 되게 공짜로 그 집 일을 해주었다는 게 그 녀석의 이유였다. 땔나무를 해준다, 집수리를 해준다, 술을 빚어준다, 김장을 담가준다, 소꼴을 베어준다…… 그 모든 일들을 삯전 한 푼 받지 않고 노비처럼 해주었으니 그만하면 신세를 갚고도 남았다는 것이다. 제 아비를 한상권에게 속아서 엿 한가락 얻어먹고 쌀 한 섬 물어주는 바보 등신 취급을 한다. 사람이 인정이 더 중하지 꼭 주고받는 양을 따져야 맛인가. 때로는 손해 볼 때도 있고 때로는 이득 볼 때도 있는 법이지! 에끼 이 밴댕이 소갈머리보다 더 속통이 좁아터진 녀석!
최복만은 맏아들 덕민이가 밥술을 놓기 바쁘게 서둘러 등을 떠밀고 집을 나섰다. 최복만은 애비를 닮아 어리숭한 덕민의 성미가 때로는 미웠지만 아버지에게 대꾸 한마디 없이 순종하는 효도만은 대견하게 보였다.
“싸게 싸게 걸어라. 둘서 구들 곤치꼬 도배 볼륵락카문 시가이 솔차이 질릴 팅께. 헤름참 아래 끝내비레사 되것는디.”
덕민은 만만해서 맘대로 주무르는 멋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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