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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2.24 중편소설 "그림자들의 전쟁" 연재 6 by 아데라

중편소설 "그림자들의 전쟁" 연재 6

 

이 작품은 계간 "문학시대"82~83호에
분재되었던 소설입니다.

 

연재 6

 

 
 
 “여기서 어물거리지 말고 어서 성당으로 올라갑시다. 햇빛이 좋을 때…”
 프랑스인 특유의 수다에 자기중심적인 드뇌브는 언제나 윤미의 기분은 어떻든 무시한 채 독선을 부려 그녀를 주물러대려고 시도한다. 아무리 앙리부인의 사주를 받은 특권자라고 해도 감시를 넘어 자존심까지 건드리는 때가 많았다. 그가 앙리부인의 절대 신뢰를 받든 말든 윤미에게 드뇌브의 존재는 대학 동기라거나 앙리부인이 독선적으로 지정해준 결혼상대자라기보다는 조카딸 아니, 입양자식을 감시하기 위해 앙리부인이 파리대학캠퍼스까지 박아 보낸 염탐군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드뇌브는 저 사크르쾨르성당청럼 늘 유약한 그녀의 머리위에서 군림하려는 거만하고 후안무치한 독재자에 불과했다. 윤미를 자신처럼 환골탈태시키려는 앙리부인의 음모를 (그것은 분명 음모였다.) 성사시키는데 없어서는 안 될 오른팔이었다. 그를 어찌 파란 물이 든 승려머리에 자애롭고 인자한 인당동자스님에게 비하랴. 편안한 승복에 목에 긴 염주를 걸고 맑고 그윽한 눈매로 그녀를 지켜보던 옥돌 같은 동안童顔, 그 청정한 모습에 비하면 드뇌브는 한 마리의 길들지 않은 야생마라고나 할까. 덩치만 훌쩍 클 뿐 정작 속은 바람이 슬쩍 지나간 듯 푸석푸석한 양인洋人이다.
 “싫어요. 혼자 올라가요. 난 저 아래 광장으로 내려갈 거예요.”
 “또 교수님께 꾸지람을 듣자고…”
 한번 입을 열면 기다란 코만큼이나 수다가 끝이 없는 드뇌브의 장광설이 끝나기를 기다리다간 자칫 해를 넘기고 말 것이다. 통상 예의 같은 걸 지키려다간 그 수다의 수렁 안에서 벗어날 수 없다. 알아서 튀어야 했다.
 윤미는 발길을 돌려 언덕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잠시일망정, 소극적인 침묵일망정 드뇌브가 둘러치는 견고한 가시철망 속에서 도피하고 싶었다. 그것은 앙리부인이 알심 들여 해자垓字를 파고 문을 굳게 봉쇄한 성채 안을 탈출하는 것과도 같아서 속이 다 후련해지는 쾌거였다.
 그런 의미 말고도 그녀는 정말이지 성당을 그리기가 싫었다. 성당을 볼 때마다 이상하게도 그녀의 눈앞에는 소박하면서도 깊숙한 분위기가 은은한 사찰이 떠오르곤 했다. 큰어머니가 공양주로 계시던 곳, 인당동자스님이 수행하시던 곳, 대공스님이 참선을 하시던 곳… 비록 절에 체류한 기간이 3년밖에 안되는 짧은 세월이긴 했지만 그녀의 26년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순간들이었다. 난산으로 태아와 함께 숨진 엄마의 뒤를 이어 절망과 한탄으로 괴로운 나날을 술로 연명하다가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로 아빠가 세상을 떠나자 그녀는 엄마의 사촌언니인 큰어머니한테로 옮겨졌던 것이다. 그 큰어머니가 바로 그 절의 행자인 공양주였다. 그때 나이 6살, 윤미는 프랑스에 있는 단 하나의 혈육인 이모네 집으로 입양되던 8살까지 그 절에서 지냈다. 프랑스인 신부에게 출가한 이모는 대공스님과 동자스님의 옷자락을 잡고 가지 않으려고 동동 매달리는 조카이자 입양인인 윤미에게 알아듣지도 못할 프랑스말로 욕설을 퍼부으며 거의 끌고 가듯이 택시 안에 마구 구겨 넣었다. 큰엄마가 세상을 하직하면서 윤미를 고아원에 보내지 않고 프랑스의 이모에게 입양시켰던 일이 행운인지 불행인지 지금도 알 수 없다. 대공스님은 참선도 미루고 일주문밖에까지 나와 목탁을 두드리며 윤미를 배웅했고 동자스님은 멀리 산마루의 높은 바위위에 올라가서 그녀가 탄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림처럼 꼼짝 않고 그 자리에 서있었다. 작별의 순간 동자스님이 슬그머니 손에 건네준 염주는 아직도 윤미가 가장 애지중지하는 보배이다.
 동자스님의 손목을 잡고 숲 속으로 들어가 나무 위며 벼랑 턱에 자란 산열매를 따달라고 졸라댔고 불살생계율不殺生戒律을 수행하는 사미승더러 뱀을 때려잡게 하고… 그러던 윤미가 떠나갔으니 이제 스님은 시끄러움을 덜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인당스님의 두 눈에는 맑은 이슬이 그들먹이 고여 있었다. 자신을 낳아준 부모도 모르는 스님에게 대공스님과 윤미는 혈육 같은 존재였을 것이 분명하다. 마치 윤미에게도 그들은 혈육이나 다를 바 없었던 것처럼.
 그래도 동자스님은 인연이란 만나면 갈라지기 마련이라는 이치를 깨닫고 사랑을 포함한 모든 세속의 인연을 끊어버리는, 수행을 하는 불자이니 그 아픔이 그런 걸 하나도 몰랐던 윤미보다는 덜했을지도 모른다. 그때의 아픔은 윤미의 가슴에 너무나 커다란 상처를 남겼었다.
 “그럼 거기서 기다리고 있어요. 내가 그림을 다 그리고 내려갈 테니까.”
 드뇌브의 당부는 무심히 청각터널을 통과시켰다. 서양인은 싫다는 분명한 의사를 밝혔는데도 앙리부인은 수양모라는, 이모라는, 단 하나뿐인 그녀의 혈육이고 연장자라는 유리한 명분을 조건으로 조카딸의 자결권을 묵살해버렸다는 독단부터가 윤미로하여금 대리자인 드뇌브의 존재에 거부감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녀의 가슴속에 남자가 있다면 오로지 한사람 인당스님뿐이었다. 아직도 생시처럼 꿈속에서 스님의 생생한 모습을 만나곤 한다. 스님은 꿈이나 추억 속에서는 물론이고 현실 속에서도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제약하는 보이지 않는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는 실존자나 다름없었다.
 테르트르광장에는 수많은 무명화가들과 관광객들로 붐볐다.
 윤미는 혹시나 싶어 광장을 한바퀴 돌며 그림그리기에 여념 없는 화가들을 기웃거렸으나 찾고 있는 왕 화백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머리카락도 구레나룻도 하얀 왕 할아버지는 중국에서 온 화가였다. 그녀는 교수님과 드뇌브 몰래 틈틈이 이곳으로 빠져나와서는 왕 화백에게서 동양화기법을 전수받았었다.
 벌써 며칠째 나타나지 않는 걸 보아선 아마 귀국하셨나보다.
 서운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인당스님은 인연이란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기 마련이라 하지 않았는가. 만나고 헤어지는 번뇌의 슬픔에서 해탈하기 위해, 고통의 원인이 인연을 끊는 불가수행을 한다던 스님은 지금쯤은 깨달음을 얻어 나와의 인연도 잊었을까? 냇가에서 함께 물장난을 하고 산열매를 따먹고 아무리 반복해도 서툴기만 하던 절하는 법을 가르쳐주던 일도 잊었을까? 그리고 여덟 살 나던 해 겨울 사찰 뒤편의 가파른 벼랑 턱에 있던 자그마한 암자에서 단둘이 염불을 드렸던 일도 죄다 잊었을까? 무엇 때문에 그런 인연들을 잊어야만 하는 거지? 누구는 잊을 수 있고 누구는 질긴 인연의 끈에 얽매어 옴짝달싹 못하고…
 윤미는 어느 밤나무그늘아래의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화판을 설치하고 왕 화백의 가르침을 되새기며 광장 데생에 착수했다.
 3차원공간과 원근법을 무시한 평면구도의 선호, 사실성보다는 관념성, 객관성보다는 주관성에 편중하는 특이한 화법, 감필법에 의한 여백 미의 상징적 추구, 그밖에도 삼묵법, 묘법, 필법, 준법, 동양화의 기본필법들을 기억 속에서 더듬어냈다. 벌써 구륵법, 몰골법 같은 화법으로 몽마르트포도원에서 그림을 그려보기도 했었다. 뿐만 아니라 자취방에 있는 수많은 그림들-인당동자스님과 공양주큰어머니와 대공스님과 사찰, 암자들은 모두 동양화법으로 그린 것들이었다. 동야화의 은은한 묘미에 푹 빠져들수록 서양화에 대한 흥취가 시들해졌다.  감필법, 여백 미…

 

 

Posted by 아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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