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도 이 책을 소개한 적이 있으나 어딘가 미진한 것 같아서 책의 눈에 띄는 특징만을 골라 한 번더 언급하려고 한다.
이 책의 특징을 꼽으라면 뭐니뭐니해도 신석기시대 전반에 대한 기존의 통념 그리고 학문적 협애주의와 정면으로 맞선. 대담한 도전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신석기시대와 관련해 지금까지 학계에 만연된 통념에는 여성에게 사회적 지위 향상이라는 혜택을 선물한 농업의 시작이 단지 간빙기의 기온상승 때문이었다는, 이제는 상식이 돼버린, 케케묵은 논리가 포함된다. 물론 이 시대가 모계사회였다는 주장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논리는 황당하게도 비단 농업의 발원지인 서아시아만이 아니라 유럽 더 나아가 전 세계적인 범위를 아우르고 있다. 대륙 간에 기후환경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그 어떠한 차이도 없이, 천편일률적임에도 지금까지 그 누구도 의심 한 번 가져본적이 없다.
하지만 저자는 이 책에서 서아시아와 유럽은 물론 한중일을 비롯한 동북아와 인도-파키스탄 등 신석기시대가 존재했던 여러 지역들의 기후환경의 차이에 따라, 이 논리가 무리하게 덮어 씌운 보편적인 굴레를 해체힌 후 당지의 구체적인 실정에 부합되는 새로운 주장을 펴내고 있다. 물론 이러한 주장은 신석기시대에 당지에서 발굴되는 고고학적 유물들의 심도 있는 분석을 통해 제시된 견해들이다. 그리하여 메소포타미아와 유럽의 상황이 다르듯이 한중일의 상황이 다르며 인도-파키스탄 상황은 또 다르다. 농업발전에서의 이러한 차이는 그대로 당시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의 수위에도 반영되었을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이 책은 이른바 민족주의 또는 애국주의로 화려하게 위장된, 협애한 고대사 논리에 대해서도 가차없이 객관적인 증거로 해부의 칼날을 들이댄다. 그것은 학문에는 국경도 민족도 없으며 그것을 초월하는 지점에서 진실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면에서 한국은 물론 중국이나 일본도 마찬가지로 지독한 협애주의에 빠져 있음을, 담론을 통해 낱낱이 입증해내고 있다. 협애한 민족주의에 물젖은 일부 사람들이 이에 맞서는 객관론자들을 죄악시하고 이른바 심판자를 자처하면서 학문의 발전에 부정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독자들에게 알리고 있다. 그들은 지독한 국수주의에 매달리면서 그 누구도 자신들이 구축한 논리의 성역을 범하지 못하도록 결사적으로 사수하고 있다. 옷자락이라도 살짝 건드리기만 하면 즉시 대역죄인으로 몰아 영원히 생매장하고 그곳을 장기 독점하려고 한다. 그들은 자신들은 "애국자"기에 정의는 항상 자기들 편에 있다는 어리석은 망상에 빠져 있다.
이러한 위험을 무릎쓰면서까지 오로지 진실 하나만을 추구했다는 이 점에 아마도 이 책의 매력이 있다면 있을 것이다. 도처에 무시무시한 올가미를 설치하고 누군가 머리를 들이밀기만을 기다리는, 실로 위험천만한 도전임에도 이 책은 아랑곳 없이 자신의 탐구에만 충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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