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연재 붉은아침'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2.03.04 장편연재 "붉은아침"21 by 아데라

제2부 불타는 반도  
장혜영


제2장 영웅과 죄인

1

 

 8월 말인데도 기온은 아침부터 수온계를 수직으로 상승시켰다. 식었던 밤공기가 낮 더위에 본격적으로 달아오르면서 아스팔트에서는 지열이 이글이글 방출되기 시작했다.
 준호가 조깅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뜻밖에도 시골 사시는 지은의 할아버지가 집에 와계셨다. 활짝 열린 미닫이문 옆에, 겨드랑이에 닳아서 때가 반들반들한 목발이 세워져 있고 나지막한 마루에는 도시에서는 보기 드문 구식 디자인의, 흙먼지를 뒤집어 쓴 헝겊신 한 켤레가 놓여 있었다. 어둠침침한 방 안에는 먹다만 조반상이 한쪽 구석에 밀려 있고 그 가운데에 정좌한 노인이 보였다. 오른다리 정강이 아래는 빈 바짓가랑이만 훌쭉하게 꺼져 있었다. 노인이 거느린 분위기는 무겁고도 지엄한데 웃음기가 증발된 얼굴은 무표정하면서도 사람의 마음을 선득하게 하는 독기가 발려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준호가 허리를 굽혀 인사했지만 노인은 거들떠 보지조차 않았다. 마치도 세월의 비바람 속에 부식된, 오래된 쇠붙이 조각상 같았다. 그런데 지은과 명철은 웬일인지 방에 들어가지 않고 문밖에 버티고 서있었다. 지은의 표정에는 불만이 짙게 걸려 있었다.
 “지은아, 어서 들어오지 않고 뭐하냐? 너하고 한마디 할 말이 있어 왔는데.”
 노인의 목소리는 저 멀리 아득한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우렁우렁하고 거친 괴성 같아 저도 모르게 공포감을 불러일으켰다.
 “전 할 말이 없어요!”
 지은은 그 이름에 손색이 없는, 분명 시대의 반항아였다. 노인의 시퍼런 위엄 앞에서도 조금도 꿇리거나 두려워하는 기색이라곤 없이 말대꾸까지 주저하지 않았다. 준호는 그러는 지은의 등을 떠밀어 미닫이 안으로 들여보냈다. 명철은 감히 따라 들어가지 못하고 로비에 선 채 우들우들 떨기만 했다. 운명이 결정되는 순간이어서 너무 긴장된 것이다.
 “전 잠시 자리를 피하는 게 어떨까요?”
 자신의 존재가 노인에게는 불만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느낀 명철은 방 안으로 들어가는 준호의 귓가에 대고 가만히 묻는다.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언제고 한 번은 부딪쳐야 하는 일입니다. 그러니 너무 불안해하고 의기소침해할 것 없습니다. 지은이가 하는 대로만 따르면 됩니다.”
 지은은 노인에게 측면을 돌려댄 채 면벽하고 앉았다. 이제 거침없이 전개되던, 사회와 인간에 대한 그녀의 소극적 저항은 외종조부의 등장과 함께 그 분이 쳐놓은 견고한 마지노방선을 앞에 두고 승패를 결정하는 순간을 맞이한 것이었다. 어쩌면 방탕과 독선과 한계를 초월한 지은이의 자유분방함은 외종조부와 이 사회가 그에게 강요한 규제와 영향권 속에서 해탈하기 위한 나름대로의 유일한 수단이었을 수도 있었다. 그녀는 자신을 위해 이번 접전에서 반드시 외종조부를 패배시켜야 한다. 그래야만 외종조부의 지배와 신분의 예속에 억압되었던 자유를 획득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번 외종조부와의 겨룸은 사랑을 위한 전쟁이기도 하고 인권을 탈환하기 위한 전쟁이기도 했다. 그런 만큼 그녀는 처음부터 호락호락 보이거나 기가 꺾여서는 안 된다고 자신을 다잡고 있었다.
 “이 늙은이를 보기 싫어하는 줄 안다. 그러나 오늘은 너한테 꼭 할 말이 있어서 들렀다.  넌 이 할아비가 너희들 혼사문제 때문에 온 줄로 알고 불만이겠지만 실은 그 일 때문이 아니다. 네 어미가 내 조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 주려고 온 거다. 어제 KBS 아침마당 프로그램에서 내 조카를 찾았다.”
 “네?!”
 지은은 물론, 옆에 앉아 있던 준호와 로비에 서 있던 명철이도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놀랐다.
 “할아버지, 울 엄마가 할아버지의 조카가 아니라니요. 그게 도대체 무슨 말씀이세요.”
 지은은 충격이 컸던지 몸을 돌이켜 앉으며 다그쳐 물었다. 그녀의 엄마가 노인의 조카가 아니라면 노인과 지은의 사이엔 아무런 혈연관계도 없는 남남이란 뜻이다. 그야말로 두 귀로 분명 듣고서도 믿기 어려운,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노인은 굳은 표정으로 대답은 잠시 밀어놓은 채 호주머니에서 궐련 한가치를 뽑아 입에 물었다. 준호가 얼른 라이터를 켜 담뱃불을 붙여주었다. 빨리 사연을 듣고 싶어서였다. 다른 건 다 그만두고라도 노인의 절단된 그 오른다리 하나만으로도 그분에게는 기막힌 사연이 있을 것만 같아 파란만장한 경험담이 기대되었다.
 노인은 담배 몇 모금을 뻑뻑 빨아 연기를 한입 가득히 물었다가 후, 하고 밖으로 내뿜었다. 삼단 같은 연기가 노인의 입에서 뭉게뭉게 쏟아져 나와서는 천장으로 그물그물 피어올라 갔다. 노인은 물끄러미 실타래처럼 구불구불 올라가는 연기를 쳐다보았다. 그의 이마에 커다란 칼자국 같은 것도 보였다.
 “언젠가 할아비가 죽기 전에 너와 네 어미한테 지나간 모든 일을 털어놓으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이 뜻하지 않게 내 조카를 찾게 된 오늘이 될 줄은 몰랐다. 아무튼 이젠 너희들한테 더 속일 것이 없게 되었으니 모든 걸 털어놓으마.”
 노인은 말머리에 잠간 동안을 두어 분위기를 잡은 다음 드디어 천천히 입을 열었다.
 
 1949년 초여름이었다.
 치악산자락에 자리 잡은 전칠성의 고향마을인 큰말은 산과 계곡에 피어난 산수유, 개나리, 진달래꽃들에 묻혀 평화로운 꿈속에 빠져있었다. 칠성이네 집 뒤란의 살구나무에도 어느새 한두 송이의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이제 보름만 더 지나면 나뭇가지가 부러지도록 살구꽃이 만개할 것이고 초가삼간은 꿈속에 묻혀버릴 것이다.
 그날 칠성은 군에 입대하여 집을 떠났다. 식구들은 멀리 산릉선에까지 그를 바래주었다. 그 속에는 아버지와 어머니도 계셨고 12살에 민며느리로 들어왔으나 아직 혼례는 올리지 않은 아내도 있었고 누님 막순이와 매부 억쇠 그리고 면 경찰서에 근무하는 큰형님 칠석이도 있었다. 모두들 눈물을 흘리며 이별을 아쉬워했다. 아내는 남편의 손 한 번 잡아보지 못한 채 멀리 나무 뒤에 서서 옷고름으로 눈물만 훔쳤다.
 “돌아올 때까지 몸 건강히 기다려주오.”
 칠성이도 목이 메어 겨우 당부 한마디를 남기고 식구들과 헤어져 비탈을 달려 내려왔다. 그러나 그날 부모님과 아내와의 작별이 마지막 영리별이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마을을 떠난 칠성은 6사단 7연대 2대대에 편입되었다.

                     무궁화 삼천리에 먼동이 틀 제
                     붉은 피 끓는도다 우리의 가슴
                     대한의 용사들아 정의의 칼로
                     다 같이 지켜가자 이 나라 이 땅
                     다 같이 지켜가자 이 나라 이 땅

                     날리는 태극기발 우러러볼 때
                     원한의 36년 잊히지 않네.
                     대한의 건아들아 목숨을 바쳐
                     다 같이 지켜가자 새나라 건설
                     다 같이 지켜가자 새나라 건설

 칠성은 아직도 그때 부르던 7연대 군가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부른다.
 개전 당시 7연대는 춘천에 연대지휘소를 설치하고 춘천방어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칠성은 6.25전쟁을 맞이했다. 그리고 그 전쟁은 가족과, 혼례도 치르지 못한 아내와의 영리별로 이어졌다.
 국군 6사단에는 49년 20일에 38선 방어에 투입된 7연대를 제외하고는 5월초 6월 중순에야 이곳에 도착한 19연대와 2연대는 모두 38선방어에 투입된 지 오래지 않아 행장도 제대로 풀지 못한 상태였다. 사단장 김종오 대령 역시 6월 10일에야 부임하여 상황파악조차 제대로 마치지 못한 상태에서 6.25를 맞았다. 게다가 전쟁 발발 당일은 일요일이어서 부대에서는 군량조달이 어려워 휴가, 외박, 외출을 적극 권장하며 경계도 느슨해지고 병력도 감소되었었다.
 칠성은 그날 전연진지 방어에 임하고 있었다. 새벽에는 비가 억수로 퍼부었다. 추위를 덜어보려고 칠성은 언덕 위의 소나무 밑으로 피해 비를 그으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우리 고향 큰말에도 지금 비가 내리고 있을까? 아내 순이는 지금 뭘 하고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며 비 내리는 밤하늘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바로 그때 38선 이북 쪽에서 맹폭격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칠성은 다급히 참호 속으로 들어가 몸뚱이를 구석에 처박았다. 고지는 순식간에 불바다로 변해버렸다.
 비가 내리는데도 도처에서 화광이 충천했고 파편들과 돌멩이, 나무뿌리, 흙 부스러기들이 휭휭, 날아다녔다. 벌겋게 달아오른 돌덩이들에 빗방울이 떨어지며 피식피식 증기를 뿜어 올렸다. 물이 그들먹이 차오르는 참호 바닥에 엎드린 몸뚱이 위에 뒤덮이는 흙덩이들도 손이 떨릴 만큼 뜨거웠다.
 여기저기서 사상자들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팔이 잘린 사람, 무슨 호박덩이처럼 목이 잘려 머리가 데굴데굴 떨어져 나간 사람…… 신음소리와 비명소리가 도처에서 들려왔다. 칠성은 저도 모르게 사지가 후들후들 떨려나기 시작했다. 전신이 자꾸만 안으로 오그라들어 손가락을 까닥하기조차 어려웠다.
 드디어 폭격이 끝나고 보병대대의 공격이 개시되었다. 날은 이미 희붐히 밝아오고 있었다. 소양강 북방에 배치된 칠성이네 대대는 참호에서도 전방 개활지인 우두평야의 보리밭을 새까맣게 뒤덮고 개미떼처럼 공격해오는 인민군을 육안으로 볼 수 있었다.
 칠성은 사격명령이 떨어지자 MI소총을 들고 개활지를 향해 연거푸 사격을 가했다. 눈앞에서 아물거리는 물체를 겨누고는 방아쇠를 당겼다. 죽었는지도 확인해 보지 않았다. 자꾸만 속이 메슥거렸고 가슴이 떨렸고 팔이 후들거려 겨냥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적을 쏘아 맞힌다는 사실보다는 총을 쏜다는 사실에 집념하고 같은 동작을 기계적으로 반복했을 따름이다. 이미 청각은 폭격 당시에 마비되어 총소리도, 아우성소리도, 비명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귀 안에서 그저 윙윙 하는 귀울음만 요란했다. 이따금 청력이 회복되어 또다시 주위의 소리가 들리기도 했지만 그것도 잠시였을 뿐 자신이 발사하는 총성에 다시 귀청이 멍해지곤 했다. 부모님과 아내 순이와 누님 막순이 그리고 맏형 칠석이가 떠올랐다.
 수세에 빠진 아군을 엄호하기 위해 발산리와 수리봉에 배치되었던 7연대 소속 16포병대대의 105mm곡사포가 일제히 포문을 열었다. 포탄들이 우박처럼 보리밭에 쏟아지며 요란한 폭음과 함께 검붉은 불기둥이 솟구쳤다. 공격해오던 인민군의 시체가 마치도 흙덩이나 나무뿌리처럼 폭풍에 휘말려 하늘공중으로 튕겨 올라 핑글핑글 회전하다간 땅바닥에 곤두박질하는 모습을 칠성은 입을 헤 벌린 채 넋을 잃고 바라보기만 했다. 인민군은 강력하고 치명적인 포 화력에 보리밭 속에 시체만 무더기로 남겨놓고 황망히 철퇴했다.
 오후에는 1대대 특공대원들이 화염병과 수류탄으로 공격하는 SU-76 자주포를 까부셨다는 첩보가 날아들었다. SU-76 자주포는 소련군이 2차 대전 때 사용하던 T-24.탱크차체를 개량하여 76.2mm포를 탑재한 것인데 국군이 보유한 57mm 대전차포로도 파괴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인민군은 우두평야에서 치른 패배를 두려워하지 않고 재차 춘천 공격을 시도했다. 소양강은 폭이 200여m이고 수심이 깊어 국군에게는 천혜의 방어물이었다. 한편 탱크나 공격부대의 소양강 도하가 어려웠던 만큼 소양교는 인민군의 춘천 공격에 유일한 통로였다. 그리하여 소양교를 가운데 놓고 적아쌍방의 치열한 격전이 벌어졌다.
 인민군은 거듭되는 맹공격을 가해 소양교 돌파를 시도했지만 국군의 강력한 밀집화력망에 저지되어 매번 시체만 수두룩이 다리 위에 버리고 퇴각하곤 했다. 그러나 인민군은 소양교를 기어이 포기하려 하지 않았다.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탱크를 몰고 전우의 시체 위를 넘어 소양교를 돌격해 왔다. SU-76 자주포도 아닌 T-34탱크 앞에서는 57mm대전차포도 쓸모가 없었음으로 국군은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6사단은 춘천을 3일씩이나 방어함으로써 불리하던 전세를 국군에게 유리하게 돌려  놓고 숨 돌릴 틈을 주었으며 승승장구하던 인민군에게는 전반적 공격의 전략균형을 깨트리는 심대한 타격을 주었다.
 이상하게도 칠성은 총탄이 빗발치고 포탄이 우박처럼 쏟아지는 전쟁터에서도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무사하게 시련을 이겨낼 수 있었다.
 아무렴. 살아야지 죽어서는 안 돼!
 칠성은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아내더러 기다리라 해 놓고선 자신이 시체가 되어 돌아갈 수는 없었다. 집으로 돌아가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부모님에게 효도도 해야 할 것이 아닌가. 죽어서는 안 될 사람에게는, 아직은 살아서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은 사람에게는 총탄도 피해가는 법인지도 모른다.
 전칠성의 부대는 춘천방어전투 이후 홍천에서 철퇴하여 7월 3일 충주에 집결했다. 원주지역을 통과하면서 집에 들러보려고 시도했지만 전시여서 부대를 이탈할 수도 없고 해서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설령 들렀다고 해도 식구들이 남쪽으로 후퇴를 했으면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부대가 철수하면서 지나온 많은 동네들이 피난가고 비어 있었다.
 제발 무사해야 할 텐데! 그래도 고향마을은 38선하고 멀어서 피난 갈 충분한 여유도 있을 것이어서 한편으로 위안은 되었다.
 6사단은 이천, 여주 방면 엄호작전을 거쳐 동작리전투에서 인민군 15사단 48연대를 맞아 치명적인 타격을 입히고 132명을 생포하고 54문의 각종 포들과 75대의 군용트럭을 노획하는 전과를 올렸다. 이 전과로 6사단은 대통령의 부대표창까지 받았고 연대 전체 장병들이 1계급 특진을 받는 명예를 수여받기도 했다.
 부대가 낙동강 이남으로 퇴각한 후 전칠성은 여러 가지 경로와 사람들을 통해 혹시나 부모님과 아내 그리고 누님이나 매부가 피난을 왔나 알아보았지만 도저히 종무소식이었다. 고향 사람도 한두 명 만나긴 했지만 그들도 칠성이네 가족의 소식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논에 모내기를 나왔다가 인민군이 불시에 들이닥치니 그대로 후퇴하여 남쪽으로 내려왔다는 것이었다.
 다행히도 큰형은 만날 수 있었다. 그도 집 소식을 모르고 있기는 칠성이나 마찬가지였다. 큰형은 경찰들로 임시 편성된 어느 전투부대에 복무중이라고 했다.
 낙동강방어작전에 돌입한 후 전칠성은 북서쪽 지역의 방어에 투입되었다가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의 결정타로 무너지는 북한군의 공격을 돌파하고 총반격에 가담했다.
 6사단은 9월 25일에 함창을, 27일에 문경을, 28일에 충주를, 30일에 원주를, 10월 2일에 춘천을 점령했다.
 원주를 지나면서 칠성의 부대는 운 좋게도 고향마을인 큰말 아랫동네에 하룻밤 주둔하게 되었다. 칠성은 소대장에게 말미를 얻고 산을 넘어 큰말의 고향집을 찾아갔다.
 칠성이네 집은 마을에서 조금 외진 곳인 산기슭에 자리 잡고 있었다. 삼간초옥의 앞뜰로는 맑은 시냇물이 흘렀고 뒤에는 두 개의 산을 거느린 자그마한 계곡과 우거진 살구나무숲이 있었다. 여름이면 살구꽃이 만발하고 가을에는 빨갛게 익은 열매가 가지가 부러지도록 탐스럽게 주렁주렁 열렸다. 지금도 실컷 무르익은 살구열매 향기가 계곡을 진동했다.
 한시라도 빨리 부모님과 아내를 만나고 싶은 생각에 칠성은 집을 향해 달음박질쳤다. 집들이 듬성듬성 들어앉은, 20여 호가 되는 동네인데 길가엔 개 한 마리 어슬렁거리지 않고 괴괴했다. 개울가에 이르러 보니 울바자는 넘어져 있고 지게문도 떨어져 있었다. 마당에는 농기구와 부엌에서 내던진 듯한 주방집기들이 깨어진 채 지저분하게 나뒹굴고 있었다.
 아니, 어찌된 영문이지? 무슨 불상사라도 생긴 건가? 남쪽으로 피난을 갔나?
 굴뚝같이 일어서는 의혹에 떠밀려 다급히 개울을 건너 집 마당에 뛰어들었다. 마루에 올라서 보니 방 안은 텅텅 비어 있었다. 농이며 밥상이며 부서진 채 뒤번져져 있고 옷가지들이며 이불이며 등잔대며…… 구들 위에 너저분하게 널려 있을 뿐이었다.
 칠성은 굴뚝목을 에돌아 뒤란으로 들어가 보았다. 멀리 낮은 계곡에 수십 마리나 되는 개떼가 모여들어 서로 으르렁거리며 뭔가를 물어뜯으며 싸우고 있었다. 불길한 예감이 불쑥 떠올라 다급히 그쪽으로 허둥지둥 달려가 보았다. 피를 흘린 채 옷가지와 살을 물어뜯긴 십여 구의 주검이 골짜기에 되는 대로 널브러져 있었다. 개들은 눈이 뒤집힌 듯 사람이 곁에 다가왔는데도 쉽게 물러서려 하지 않았다. 공중에 대고 공포탄을 한 방 발사해서야 개떼는 어슬렁어슬렁 그 자리를 떠나갔다. 그러나 멀리는 가지 않고 저만큼 물러서서 시퍼런 눈길로 칠성이를 노려보고 있었다. 인육 맛을 본 개들의 눈에서 살기가 번뜩였다.
 칠성은 시체를 하나하나 뒤집어 보았다. 아직 썩지 않은 걸 보아 죽은 지 2~3일 정도밖에 되지 않은 듯싶었다. 다만 엉덩이와 팔다리 같이 살집이 많은 부위들은 개들에게 물어 뜯겨 허연 뼈가 드러났고 눈, 코, 귀, 입과 총상자국만은 먼저 썩어서 파리 떼와 구더기가 버글거리고 있었다. 그래도 아직 얼굴은 알아볼 만해서 다행이었다.
 이런, 이건 총에 맞아 죽은 거잖아! 어떤 놈들이? 빨갱이 놈들이 후퇴하면서 저지른 만행이 분명해!
 칠성은 이렇게 중얼거리며 시체들의 신원을 하나하나 확인하며 가족의 얼굴을 찾았다. 제발 시체더미 속에 가족이 없었으면 하고 빌었지만 결국은 부모님도 아내도 그 속에서 찾아내고야 말았다. 모두 앞가슴에 총탄을 몇 방씩 맞고 숨져 있었다. 아내는 얼굴까지 개 이빨에 뜯겨 차마 눈뜨고 볼 수조차 없었다.
 “개 같은 놈들! 짐승 같은 놈들! 어느 놈이 우리 아버지, 어머니를 죽였어? 내 아내를 살해했어?”
  울부짖기도 하고 통곡하기도 하고 분노로 이를 갈기도 하면서 부모님과 아내의 시체를 거두에 땅에 묻었다.
 어느새 날이 어두웠다. 이대로 귀대할 수는 없었다. 가더라도 부모님과 아내가 어떻게 죽었는지, 누구 손에 살해 되었는지 사연이나 알고 싶었다.
 무작정 길가의 아무 집이나 문을 벌컥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서고 보니 이 서방 댁이었다. 이 서방은 한 동네에서 살던 칠성을 몰라볼 리 없을 텐데도 그가 집 안에 불쑥 뛰어들자 혼비백산하여 구석에 웅크리고 앉은 채 전신을 후들후들 떨었다. 총 쥔 사람만 보면 인젠 겁부터 나는 모양이다. 백성들은 인민군도 국군도 다 무서워했다.
 “두려워 마시오. 한 가지만 묻고 떠날 테니까. 우리 부모님과 내 아내를 누가 죽였습니까?”
 “그게…… 저…… 제발 죽이지만 말아유.”
 말까지 더듬는 이 서방의 얼굴은 금시 사색이 되었다.
 “내가 왜 아저씰 죽입니까. 본 대로 말만 해주면 난 나갈 겁니다.”
 “그게 저 그러니까…… 댁의 매부인 억쇠가!”
 첫 순간 그 말이 믿어지지 않았다.
 “억쇠가 의용군에 입대했다네. 그런데 얼마 전에 부상을 당해 자네 누나네 집에서 며칠 묵었는데 후퇴하면서 바닥빨갱이들과 함께 그저께 마을의 반동분자들을 색출해 내어 골짜기로 끌고 가 총살해버렸다네. 자네 아버지와 어머닌 국군과 경찰아들을 두었다는 죄명으로 잡혔구. 자네 아내는 남편이 국군이고 시형은 경찰이라는 죄 때문에…… 우린 그저 총칼로 위협하니까 사형장에 끌려 나가서 구경한 죄밖에 없네. 제발 살려주게나.”
 “그래 그 억쇠란 놈은 언제 큰말을 떠나갔습니까?”
 “오늘 아침까지도 있었는데. 아마 가도 멀리는 못 갔을 걸세. 다리를 부상당해 절뚝거렸으니까.”
 “고맙습니다.”
 칠성은 그 한마디만을 남기고는 부랴부랴 그 집을 뛰쳐나왔다.
 “네놈이 달아나면 어딜 달아나!”
 칠성은 북쪽을 바라고 산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그의 가슴속에는 오로지 하나 백 리, 천 리라도 쫓아가서 억쇠 놈을 죽여 버리겠다는 일념뿐이었다.
 “어디 보자 이놈! 내 손에 잡히기만 해봐라, 가죽을 벗겨내고 염통을 끄집어내어 씹어 먹을 테다!”
 칠성은 이를 부득부득 갈며 숲 속을 헤치고 어둠 속을 더듬어 달리고 또 달렸다.
 횡성에 거의 다다랐을 때 갑자기 숲 속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인기척에 그는 발걸음을 멈추고 귀를 바싹 기울였다.
 “안 돼요. 총을 쏘면 안 돼요. 누군지도 모르고……”
 여자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산 속의 밤 정적을 깨트리며 요란한 총성이 울렸다. 칠성이 엎드린 바로 앞에 총탄이 날아와 푹푹 박혀들었다. 그는 깜짝 놀라며 몸을 뒹굴어 옆의 바위 뒤에 몸을 숨겼다. 연발사격이 울렸고 탄환이 그를 따라오며 흙 속에 박히고 나뭇가지를 부러뜨리며 흙먼지를 날렸고 바위에 부딪쳐 불꽃을 튕겼다.
 갑자기 절컥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사격이 문뜩 정지되었다. 탄알이 바닥난 모양이었다. 칠성은 바위 뒤에서 몸을 천천히 일으켜 세우며 그 쪽에 총구를 겨누고 소리를 질렀다.
 “죽여 버리기 전에 총을 버리고 당장 숲 속에서 나와!”
 잠잠했다. 요란한 총성이 울린 뒤의 고요는 더욱더 숨 막힐 듯 괴괴했다.
 “어서! 네놈이 억쇠라는 걸 난 다 알고 있다. 누나도 나와. 칠성이가 왔어.”
 확증은 없었으나 웬일인지 그들이 누나와 매부일거라고만 추측되었다.
 “여보, 일어나요. 내 동생 칠성이예요.”
 드디어 누렇게 말라들기 시작한 개암나무숲이 흔들리더니 막순이가 상반신을 엉거주춤 드러냈다.
 “아니, 칠성아. 네가 어떻게 여길?”
 막순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총탄이 다한 억쇠도 어쩔 수 없었던지 저항을 포기하고 부스럭부스럭 모습을 드러냈다. 인민군 복장을 한 그는 옛날의 어리숭하고 착하던 매부가 아닌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보였다.
 “처남……”
 불러만 놓고는 할 말을 잃고 고개를 풀썩 꺾어버렸다.
 “그 입 닥쳐! 누가 네놈의 처남이야. 어서 총을 버리고 숲에서 나와!”
 막순의 부축을 받으며 숲 속에서 걸어 나오는 억쇠는 붕대를 감은 왼다리를 심하게 절뚝거리고 있었다.
 “처남, 피치 못할 사정이라……”
 억쇠의 목소리가 떨렸다. 지은 죄에 대한 보복이 두려운 모양이었다.
 “개자식! 아무리 피치 못할 사정이라도 그렇지. 내 아내는 남편이 국군이고 시형이 경찰이라서 학살했다 치고 어떻게 사위란 놈이 연로한 장인, 장모까지 학살할 수 있단 말이냐. 이 짐승보다 못한 놈아! 우리 집 안에서 네놈한테 못해 준 게 뭔데? 곱게 기른 딸을 주고 못산다고 쌀을 퍼주고 옷을 섬기고…… 개보다 못한 놈!”
 “내 본의는 아니었어. 장인, 장모와 처남댁이기 전에 인민정권을 반대하는 반동세력이었기에 인민의 심판을 면할 수 없었던 거야.”
 “닥쳐! 그 따위가 다 이유가 돼. 네놈에겐 인민정권의 이익이 혈육의 정보다 더 중하냐?”
 “그건 아마 처남도 마찬가지가 아니겠어. 지금도 그 총을 들고 매부와 누님을 겨누고 있잖아. 누굴 위해서 혈육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눈 거지?”
 “우리 아버지, 어머니를 죽이고 내 아내를 죽이고도 네가 무사할 줄 알았냐? 네놈도 어디 오늘 내 손에 죽어봐라. 그래 네 말이 맞다. 우리 국군도 대한민국을 위해 이 땅에서 빨갱이 놈들을 죄다 죽여 버리고 말거야.”
 칠성은 분노가 이글거리는 눈길로 처남 억쇠를 쏘아보며 그의 가슴에 총구를 겨냥했다.
 그러나 누나 막순이가 황급히 남편의 앞을 가슴으로 막아 나섰다.
 “칠성아, 제발 한 번만 매부를 용서해주라. 누나 얼굴을 봐서라도 응.”
 “비켜! 누나도 다 같이 죽여 버리기 전에.”
 칠성은 이미 이성을 잃었다. 오로지 부모님과 아내를 살해한 원수에 대한 불타는 증오심 하나뿐이었다.
 “매부를 죽이려면 누나부터 먼저 죽여라. 누나 뱃속의 태아까지 죽이라고. 흐흐흥, 흑.”
 막순은 왈칵 울음을 터트리며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뭐라고? 복중태아라니!
 칠성은 그제야 헐렁한 베치마를 두른 누나의 아랫배가 물동이만큼 둥둥 불어난 것을 발견했다.
 “누나, 어서 일어나. 누나를 봐서 저놈을 용서해주고 싶다만 억울하게 돌아간 부모님과 올케가 용서하지 않아.”
 “안 돼. 날 죽이기 전에는 매부를 못 죽여. 매부는 그냥 동네 사람들이 아버지와 어머니를 죽이는데 참가만 했을 뿐 총은 쏘지 않았어. 그러니 제발 용서해줘.”
 막순이는 동생의 다리를 부여안고 몸부림치며 애걸했다.
 “저 귀축 같은 놈을 용서할 수 없어. 저리 비켜!”
 칠성은 땅바닥에 엎드려 애걸하는 막순의 어깨를 사정없이 구둣발로 걷어찼다. 막순은 막달이 된 배를 부여안은 채 맥없이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칠성은 다시 총을 쳐들었다. 가슴을 겨눈 시커먼 총구를 보자 억쇠의 얼굴은 금시 사색이 되었다. 눈에 띌 만큼 얼굴 근육과 입술이 푸들푸들 떨리고 있었다. 그러나 살려달라고 무릎을 꿇고 잘못을 빌거나 비굴하게 목숨을 애걸하지도 않았다.
 “그래. 죽여라! 네놈한테 살려달라고 비굴하게 목숨을 구걸하고 싶지는 않다. 난 인민을 위해서, 공화국을 위해서 반동분자들을 처벌했을 뿐이니 죽어도 떳떳하다.”
 “이 자식이 아직도 살았다고 입술을 나불거려. 개보다도 못한 놈!”
 칠성은 이를 부드득 갈며 방아쇠에 건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제발 쏘지 마! 죽이지 마! 처남, 매부지간에 그렇게 의좋더니 이게 무슨 짓이냐! 서로 죽이다니. 누굴 위해서? 무엇 때문에?……”
 땅, 땅!
 요란한 총소리가 어둠에 휩싸인 검은 숲 속의 정적을 깨트리며 계곡에 울렸다. 총성과 함께 앞에 버티고 섰던 억쇠가 갑자기 가슴을 움켜쥐더니 놀란 표정으로 두 눈을 부릅뜨고 칠성을 노려보았다.
 “개 목숨이 질기기도 하다!”
 칠성은 공포가 어린 그 눈길에 소름이 끼쳐 다시 한 번 방아쇠를 당겼다. 억쇠는 재차 전신을 꿈틀하더니 밑동 잘린 나무처럼 맥없이 풀 넝쿨 위에 너부러졌다. 몇 번 사지를 꿈틀거리는 듯싶더니 금방 숨을 거두었다. 가슴과 복부에서 콸콸 솟구쳐 나온 선혈로 군복저고리가 붉게 물들었다.
 “여보, 눈을 떠봐요. 당신이 죽다니? 이게 무슨 마른하늘의 벼락이에요! 저 혼자 버려두고 어딜 가요.”
 막순은 피 흐르는 억쇠의 상체를 부여안고 통곡했다.
 “그 따위 놈도 남편이라고 부둥켜안고 울어. 아버지, 어머니를 죽인 원순데. 복수는 못할망정. 그만 울고 일어나.”
 막순은 갑작스런 충격으로 산통이 발작한 듯 그 자리에서 뒹굴며 신음을 토해냈다.
 “누나, 갑자기 왜 이래? 해산이라도?!…… 제기랄, 하필이면 이런 때에……”
 칠성은 당황했다. 우선 누나를 업고 무작정 산비탈을 내리기 시작했다. 사람이 사는 인가를 찾아야 했다. 양수가 터져 나오는지 피비린내가 확 풍기며 칠성의 등이 뜨거운 액체에 젖어들며 축축해졌다.
 “조금만 더 참어. 조금만.”
 마침 골짜기 아래에 오두막집 두 채가 있었다. 깊은 밤중 개가 요란스레 짖는 소리에 그 중 한 오두막집 등불이 켜졌다. 40대의 중년부부가 그들을 맞아주었다.
 “제발 우리 누나를 부탁드립니다. 전 귀대해야겠기에 이만 떠나야겠습니다.”
 칠성은 막무가내로 누나를 그 집에 맡겨두고 그 밤으로 부대가 주둔한 곳으로 돌아갔다.
 막순은 그날 밤 맘씨 착한 주인 내외의 도움으로 딸애를 순산했다. 막순은 그 집에 하룻밤 더 묵으면서 갓난애의 아빠와 친척관계 그리고 불행한 참사에 대해 주인 내외에게 소상하게 알려주었다.
 “세상에, 어떻게 그렇게 끔찍한 일이 생길 수 있지? 사위가 장인, 장모를 죽이고 처남이 매부를 죽이다니!”
 주인 내외는 억이 막힌 듯 입을 딱 벌리고 말을 잇지 못했다.
 다음날 그녀는 주인 내외가 잠든 틈에 갓난아기를 남겨둔 채 몰래 그 집에서 빠져나왔다.
 “아가야, 엄마가 널 버리고 아빨 따라간다고 원망하지 말고 부디 행복하게 살 거라. 엄마, 아빠가 다 살지 못한 몫까지 살아야 한다. 알았지.”
 아무것도 모른 채 마지막으로 물린 젖꼭지만 호물호물 빠는 딸애의 얼굴에 그녀는 수십 번이고 입을 맞췄다. 구슬 같은 눈물방울이 아기의 뽀얀 얼굴에, 아직 핏물도 채 마르지 않은 얼굴에 연신 굴러 떨어졌다. 막순은 떠나면서 어른들의 나이와 이름, 본적, 부모와 친척관계 그리고 간단한 사연을 적은 쪽지를 적어 딸애의 이불귀에 끼워두었다.
 막순은 이제 모든 무거운 짐을 부려놓은 듯 마음이 홀가분했다. 이제는 남편의 곁을 지켜주는 일만 남은 것이었다. 아버님과 어머님을 죽였어도 남편은 남편이었다. 남편과 더불어 그 죄를 분담하고 싶었다. 그것이 아내가 남편을 위해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이 아니겠는가. 남편이 자진하여 의용군에 입대했을 때나 부상당하여 집으로 돌아왔을 때나 마을의 반동분자, 국군, 경찰가족을 색출하여 처단할 때나, 그녀는 한 번도 남편이 하는 일에 간섭한 적이 없었다. 부모님과 올케를 국군, 경찰가족이라는 죄명으로 색출하여 처단할 때에도 남편을 원망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두 오라버니가 국군과 경찰에 입대하여 빨갱이들을 죽이는 것과 조금도 다름없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오라버니가 대한민국을 위해 빨갱이들을 소멸한다면 남편은 공화국을 위해 반동들을 처단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부모님들과 올케는 설령 남편이 살려주었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손에라도 죽고 말 운명이었다. 부모님과 올케를 죽인 건 남편이기도 하지만 경찰과 국군이라는 두 오라버니의 신분이 그분들에게 죽음의 빌미를 제공해 준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여자는 출가외인이라지 않는가. 부모님과 올케는 이제 그녀에게는 친정식구일 뿐 가족은 억쇠였다. 아내는 친정이 아니라 남편을 따라야 한다.
 좀 더 일찍이 마을을 떠났어야 했다. 남편의 다리상처가 조금이라도 더 나은 다음 길을 떠나려고 지체하다가 이 꼴을 당한 것이다. 모두가 그녀의 탓이었다. 걷지 못하면 남편의 주장대로 그녀가 업고서라도 진작 이 고장을 떠나 북으로 갔어야 했다. 남편을 죽인 건 나야. 하루라도 빨리 피난 가려던 그이의 고집을 따랐더라면 이런 참변은 없었을 터인데. 막순은 흑흑 흐느끼며 산을 톺아 올랐다. 눈물이 앞을 가려 앞길이 보이지 않았다.
 남편은 그날 밤 쓰러진 그 자리에 그대로 누워 있었다. 산짐승들이 살을 물어뜯어 뼈가 엉성하게 드러난 남편을 보자 그녀는 그만 그 자리에 실신하여 쓰러지고 말았다.
 정신을 차린 막순은 남편의 잔해를 거두어 땅을 파고 묻었다. 가랑잎이 쌓여 형성된 부식토여서 구덩이를 파기도 쉬웠다.
  막순은 남편의 무덤 옆에 조용히 누웠다. 두껍게 깔린 나뭇잎이 포근했다. 하늘을 닦다가 지친 듯 우거진 숲 위에 몇 조각구름이 찢어진 채 맥없이 걸려 있었다. 그 찢어진 구름이 열심히 닦은 덕분에 하늘은 티끌 하나 없이 푸르고 말쑥했다.
 그녀는 하늘을 쳐다보며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이제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올케도 다 만나게 되겠지. 남편은 벌써 그들을 만났을지도 모른다. 만나서 무슨 말들을 했을까? 어서 가봐야지. 남편이 귀신들에게 보복이라도 당하면 내가 가서 구해줘야지. 그분의 잘못이 아니라고. 그분은 공화국을 위해서, 인민정권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고. 당신 아들은 왜 내 남편을 죽였는가! 그 역시 대한민국을 위해서 당국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 아닌가. 그분이 죽었으니 이미 그 죄 값은 한 것임으로 두 번 죽일 수는 없다고 설득을 해야지.
 저도 모르게 두 볼로 눈물이 흘러 내렸다. 그렇듯 마음이 착하던 남편이었다. 아내를 장중보옥처럼 애지중지하던 남편이었다. 그리고 동네 사람들이 부러워하던 화목한 집안이었다. 그런데 어쩌다가 부모형제끼리 총부리를 겨누고 피비린 살육을 하게 되었는가. 어쩌다가 남편은 한창 살 나이에 주검이 되었고 나 역시 죽음을 선택해야 하는가.
 숲 속의 나뭇가지 위에서 뭇 새들이 요란하게 우짖었다. 개미떼가 그녀의 옷 속을 파고들며 몸 위를 근질근질 기어 다니기 시작했다.
 막순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잠을 청하려고 모든 잡념을 머릿속에서 털어버렸다.
 전신이 구름 위에 둥둥 뜨는가 싶더니 금방 스르르 잠이 들었다.
 그녀의 앞에는 일망무제한 하늘이 가없이 펼쳐졌다.

 

'문학 > 소설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편연재 "붉은아침"23  (0) 2012.03.31
장편연재 "붉은아침"22  (0) 2012.03.20
장편연재 "붉은아침"20  (0) 2012.02.15
장편연재 "붉은아침"19  (0) 2012.02.01
장편연재 "붉은아침"18  (0) 2012.01.14
Posted by 아데라
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