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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7.05 문학작품, 어떻게 읽을 것인가 by 아데라

문학작품, 어떻게 읽을 것인가



송용구(시인 ․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연구교수)



1. 문학은 ‘허구(虛構, 픽션, fiction)' 이다.


사전에서 말하는 ‘허구’의 의미와 문학적 ‘허구’는 어떻게 다른가? “픽션은 문학적 진실이다.”(케테 함부르거): 문학은 진실을 담고 있는 거짓말이다. 독자에게 교훈과 감동을 주는 거짓말이다. 참으로 아름다운 거짓말이다. 사람다운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는 거짓말이다.


2. 논픽션(nonfiction)과 문학은 어떻게 다른가?


논픽션의 의미와 종류를 말해보자. 논픽션과 문학은 전혀 상관성이 없는가? 문학작품을 건축자가 지은 집에 비유한다면 집의 재료는 무엇인가? 이때 집을 짓는 행위, 즉 벽을 세우고 지붕을 올리는 행위는 무엇을 뜻하는가? 특정한 사건, 사실, 작가의 개인적 경험을 상상을 통해 가공하고 변형시키는 것이 문학이다.


3. 역사와 문학의 차이


아리스토텔레스의 명저 『시학』(문예출판사, 천병희 역)을 참조하라. 제8장과 제9장에서는 문학의 본질을 가르쳐주고 있다. ‘개연성(probability)’이라는 중요한 개념이 등장한다. 문학에서 ‘개연성’이란 무엇을 뜻하는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것", "있을 법한 것"을 뜻한다. 역사가는 사회에서 일어난 사건을 사실대로 기록하지만, 작가(문학가)는 사회적 사건과 사실을 재료로 삼아, 인간 사회에서 또다시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개연성 있는) 사건을 지어낸다.


4. “문학이라는 예술은 다른 예술의 분야처럼 현실을 정신적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독일의 소설가 토마스 만(Thomas Mann)의 발언은 문학의 성격을 명쾌하게 규정하고 있다. 작가의 내면세계 속에서 일어나는 정신적 승화의 열매가 문학작품이다. 그렇다면 “정신적 승화”의 과정이란 어떤 것인가? 과거에 일어났었던 사건을, 앞으로도 계속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사건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작가의 개인적 체험을 모든 독자의 보편적 체험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작가의 상상력이 이러한 변화를 낳는다.


5. 도종환의 『접시꽃 당신』, 감동의 힘은 어디에서 생긴 것인가?


문학작품은 개인적 사건을 (다수의) 보편적 사건으로 승화시킨다. 일회적 사건을 시간의 한계를 초월한 지속적 사건으로 승화시킨다.

<접시꽃 당신>에서 아내를 향한 시인의 사랑은 독자의 사랑으로 승화된다. 가난 속에서 꽃처럼 피어난 눈물겨운 사랑이 어느새 이 시를 읽는 독자의 가정(집) 안으로 흘러들어와서 부부간의 사랑을 아름답게 축복해준다.

접시꽃 당신

도종환

옥수수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

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

낙엽이 지고 찬바람이 부는 때까지

우리에게 남아 있는 날들은

참으로 짧습니다

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 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

생명은 당신의 몸을 우수수 빠져나갑니다

씨앗들도 열매로 크기엔

아직 많은 날들을 기다려야 하고

당신과 내가 갈아엎어야 할

저 많은 묵정밭은 그대로 남았는데

논두렁을 덮는 망초대와 잡풀가에

넋을 놓고 한참을 앉았다 일어섭니다

마음놓고 큰 약 한 번 써보기를 주저하며

남루한 살림의 한구석을 같이 꾸려오는 동안

당신은 벌레 한 마리 함부로 죽일 줄 모르고

악한 얼굴 한 번 짓지 않으며 살려 했습니다

그러나 당신과 내가 함께 받아들여야 할

남은 하루하루의 하늘은

끝없이 밀려오는 가득한 먹장구름입니다

처음엔 접시꽃 같은 당신을 생각하며

무너지는 담벼락을 껴안은 듯

주체할 수 없는 신열로 떨려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에게 최선의 삶을

살아온 날처럼, 부끄럼 없이 살아가야 한다는

마지막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함을 압니다

우리가 버리지 못했던

보잘것없는 눈높음과 영욕까지도

이제는 스스럼없이 버리고

내 마음의 모두를 더욱 아리고 슬픈 사람에게

줄 수 있는 날들이 짧아진 것을 아파해야 합니다

남은 날은 참으로 짧지만

남겨진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인 듯 살 수 있는 길은

우리가 곪고 썩은 상처의 가운데에

있는 힘을 다해 맞서는 길입니다

보다 큰 아픔을 껴안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엔 언제나 많은데

나 하나 육신의 절망과 질병으로 쓰러져야 하는 것이

가슴 아픈 일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콩댐한 장판같이 바래어가는 노랑꽃 핀 얼굴 보며

이것이 차마 입에 떠올릴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마지막 성한 몸뚱아리 어느 곳 있다면

그것조차 끼워넣어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에게

뿌듯이 주고 갑시다

기꺼이 살의 어느 부분도 떼어주고 가는 삶을

나도 살다가 가고 싶습니다

옥수수잎을 때리는 빗소리가 굵어집니다

이제 또 한 번의 저무는 밤을 어둠 속에서 지우지만

이 어둠이 다하고 새로운 새벽이 오는 순간까지

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 당신 곁에 영원히 있습니다.

<접시꽃 당신, 실천문학사, 1986>



6. 문학작품은 작가의 전유물이 아니라 작가와 독자의 공유물이다.


20세기 문예학 방법론의 한 가지인 ‘수용미학’을 이해해보자. 작가의 입장에서만 문학작품을 보지 말자. 독자의 철학, 체험, 사고방식, 종교관 등을 통해 자유롭게 문학작품을 해석해보자. 작가가 자신의 문학작품 속에 한 가지 메시지만 담아냈다면, 독자는 사고와 상상을 통해 다양한 메시지와 다양한 의미를 재생산하여 문학작품 속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어야 한다. 하나의 오리지날 작품은 독자의 내면세계 속으로 들어가서 수많은 작품을 재창조하는 것이다. 이제 독자는 문학작품을 작가의 의도에 따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는 객체가 아니라 제2의 작가로서 문학작품을 능동적으로 만들어나가는 주체의 자리에 서야 한다.


(1) 저자의 의도를 존중하되 구속되지 말라(독자 중심의 책읽기)

(예) 타고르의 『기탄잘리』와 한용운의 「님의 침묵」


기탄잘리 -68-

님의 햇살은 두 팔을 벌리고 지상으로 오시어

내 눈물과 한숨과 노래로 이룬 구름

님의 발 아래로 되돌리려

평생동안 내 문전에 서 있습니다

님은 기쁨으로 별이 반짝이는 가슴에

안개 자욱한 구름 외투를 걸치십니다

여러 모습으로 바꾸며

주름을 잡고 끝없이 변하는 빛깔을 드립니다

그것은 가볍고 잘 날며

부드럽고 눈물에 젖고 더러워져 있으나

님은 그것을 사랑하십니다

님은 티없이 맑게 개어 있기에

님의 엄숙한 빛을

외투의 고뇌로운 그림자로 덮고 있습니다

R. 타고르1)

* 한용운은 타고르의 시를 흠모했지만, 타고르의 '님'은 한용운의 시 속으로 들어와서

'신'이 아니라 '조국'의 얼굴로 변한다. '힌용운'은 자신의 체험을 통해 타고르의 '님'을 '신'이 아니라 '조국'으로 받아들인다. 가장 참되고(진), 가장 선하고(선), 가장 아름다운(미) 조국이 힌용운의 '님'이 된다. 그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독립운동가일 뿐만 아니라, 진리와 선을 추구하는 승려로서 살았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시인으로서 살았다. 이러한 삶의 체험 때문에 타고르의 '님'은 한용운의 시 속에서 진선미의 얼굴을 지닌 조국으로 변하게 된다.

(2) 기독교와 무관한 작품일지라도 기독교적 세계관을 통해 신앙의 메시지를 창조하여 아이들에게 전해주자. 안도현의 「땅」을 읽어보자.

내게 땅이 있다면

거기에 나팔꽃을 심으리

때가 오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보랏빛 나팔소리가

내 귀를 즐겁게 하리

하늘 속으로 덩굴이 애쓰며 손을 내미는 것도

날마다 눈물 젖은 눈으로 바라보리

내게 땅이 있다면

내 아들에게는 한 평도 물려주지 않으리

다만 나팔꽃이 피었다 진 자리에

동그랗게 맺힌 꽃씨를 모아

아직 터지지 않은 세계를 주리


- 『어머니의 기도』(조만제 엮음. 송용구 해설)


* 살아가기 힘든 세상을 살아내게 만드는 힘은 어디에서 생겨나는가? '아직 터지지 않은 꽃씨'와 같은 희망으로부터 역경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땅을 향한 사랑, 아들과 나팔꽃을 향한 사랑, 땅 위에서 태어난 모든 피조물을 향한 사랑이 우리에게 희망을 안겨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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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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