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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9.08 장편연재 "바람의 아들" 6 by 아데라
바람의 아들
장혜영

 왜 그녀는 자연풍경만을 사진에 담았을까? 사진기술에는 전혀 문외한이면서 말이다. 기자나 촬영애호가가 아닌 일반사람들은 대개 자동카메라를 사용하며 인물사진들을 주로 찍는 편이다. 그런데도 은파랑은 초보자들이 사용하기에 무난한 자동카메라가 아닌 프로들이나 애용하는 수동카메라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요즘 유행하는 디지털카메라도 아니고 인젠 고물이 되기 시작한 기계카메라를......게다가 시간만 허비하고 금전만 날리면서 굳이 풍경사진만을 촬영한 데는 어떤 까닭이 숨어 있을까?
 웬일인지 그녀의 모든 것이 신비하게만 느껴진다.

 36컷짜리 네거티브를 가위로 6프레임씩 여섯 줄로 잘라냈다. 그런 다음 준비된 확대기, 유리, 인화지, 스펀지, 받침대를 이용하여 교정인화작업에 막 들어가려고 시도하는데 위층에서 미경의 목소리가 지하실로 새어 들어왔다.
 
“오빠, 미미 전화야. 미미가 막 울고 있어. 빨리 나와 봐.”
 
“뭐, 미미가 운다고?”
 
정도는 네거티브를 유리위에 배열하다말고 서둘러 암실에서 올라왔다. 가정부의 관심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아내가 있을 때보다는 어쩐지 딸애 미미를 맡긴 기분이 늘 불안했다. 가정부아줌마의 술주정뱅이남편 형태가 며칠 건너 찾아와 난동을 부렸기 때문이었다.
 
“미미니. 왜 울어?”
 
“아빠. 빨리 집에 와. 미미 무서워!”
 
“무슨 일인데? 아빠 지금 일하지 않아.”
 
“아줌마가 그 곰 아저씨랑 싸워. 막 때리고……엉엉.”
 
“너 지금 집이니?”
 
“아니, 밖이야. 공중전화……”
 
“알았어. 아빠 곧 갈 테니 거기서 꼼짝 말고 기다려.”
 
금방 보게 될 파랑의 신비한 사진을 버려두고 떠나는 발걸음이 아쉬웠지만 별수가 없었다. 그래도 호기심보다는 현실이 더 중했다.
 
자택은 사진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81번 버스종점차고를 돌아 한남동쪽으로 가다가 골목 하나만 유턴하면 집이다. 그 골목 입구 고깃집 벽면에 공중전화 한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미미는 눈물범벅이 된 채 공중전화부스 옆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왜 집에 있지 않고 여기 나와 있는 거니?”
 
“아저씨가 무서워.”
 
“아빠랑 같이 들어가자.”
 
정도는 미미를 번쩍 들어올려 품에 안았다. 막 집 앞에 도착했는데 마침 쇠대문이 덜그렁 열리더니 가정부아줌마가 밖으로 허둥지둥 달려 나온다.
 
“미미야. 우리 미미 어디 갔니?”
 
그녀의 치마꼬리를 잡고 뒤이어 남편인 형태가 쫓아 나온다.
 
“이년아! 어딜 가. 돈 달라는데. 돈 내놓고 가. 10만원만 말이야. 씨벌 년! 종아리를 확 분질러 트리기 전에……”
 
구두 한 짝이 총알처럼 날아 나오는 바람에 정도는 흠칫 놀라 몸을 피했다. 구두 짝은 쉬-익 하고 귀뿌리를 스쳐 지나가더니 등 뒤의 벽돌 담장에 맞고는 곤두박질했다. 구두는 해어지고 퇴색하고 코까지 터진 흉한 꼴이다. 그 허름한 구두 짝 만큼이나 초라하고 험상궂기까지 한 형태는 알코올기운이 올라 벌건 얼굴을 하고 황소처럼 씩씩거렸다.
 
“어머, 사장님. 이거 죄송합니다. 미미야. 어디 갔었어? 어서 아줌마한테로 와.”
 
아줌마가 연신 허리를 굽실거리며 애를 받아 안으려고 했지만 놀란 미미는 더욱 더 아빠의 품을 오비작오비작 파고들었다.
 
“하~ 글쎄 이년이 소비 돈을 좀 달라니까 안주는구려. 어서 내.”
 
주인 앞에서 체면이 구겨지기가 싫었던지 아줌마는 그제야 마지못해 지갑에서 십만 원 액면가의 수표 한 장을 꺼내어 형태에게 건넨다.
 
“꼴도 보기 싫으니. 어서 내 눈앞에서 꺼져요.”
 
“진작 줄 것이지. 미안합니다. 동네 분주하게 떠들어서.”
 
형태는 허리를 굽실하고 인사하더니 길바닥에 뒹구는 구두 짝을 집어 신고는 비틀비틀 골목길을 빠져나갔다.
 
아내가 벼룩시장에 낸 구인광고를 보고 자진하여 가정부로 입주한 아줌마였다. 맘씨가 착하여 낙점했는데 그들의 부부관계가 이토록 험악할 줄은 몰랐다. 그녀의 남편은 주사가 심한데다 난봉에 도박까지 일삼는 시정잡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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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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