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은 계간 "문학시대"82~83호에
분재되었던 소설입니다.
중편소설 "그림자들의 전쟁"
연재 16
......
노래를 듣다가 나는 잠이 들곤 했다. 그것이 굿 노래이고 씻김굿이었다는 걸 알게 된 건 대학에 가서였다. 잠에서 깨어나면 또 악기를 갖고 놀았고 굿 노래를 들었다. 집에 가기도 싫어서 며칠이고 할머니네 집에 눌러앉아 먹고 잘 때도 많았다. 아빠와 엄마가 싸우는 집이 싫었다. 혼자 있는 아빠가 동네 바람난 계집들을 끌어들여 벌거벗고 뒹구는 집이 싫었다.
흥이 날 때면 할아버지가 장구를 치거나 해금을 타고 할머니는 반주에 맞춰 굿 노래를 불렀고 나는 부채나 방울 또는 무복을 입고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나는 어렸을 때 총기가 좋았던 모양이다. 피리, 해금, 장구에 두루 능통했고 할머니의 굿 노래도 한번 들려주면 잊지 않아서 노인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몇 번이나 지하철을 갈아탔지만 역 이름이 무엇이든지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그냥 어느 역인가에서 출입구로 나와 보니 라스벨 역이라는 표시가 보인다.
몽파르나스국립묘지!
내가 왜 여길 왔지? 귀신에게 홀렸나봐.
파리에 온지 6개월이 되었지만 언젠가 누구랑 같이 얼핏 다녀가고는 다시 와보지 못한 곳이다. 그때도 이곳에 모파상, 보들레르, 사르트르의 묘지가 있다고 해서 왔었다. 그러나 정작 와보니 기대했던 만큼 신비하거나 숙연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냥 하나의 평범한 봉분일 뿐 위인들의 명성에 걸 맞는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묘지중앙에 우뚝 솟은 청동조각상 수호천사만이 죽은 사람들을 대신해 살아있는 흉내를 내고 있을 뿐이다. 그 역시도 죽음의 흔적이었다.
김윤미!
느닷없이 기억의 언덕에 떠오르는 모습이 있었다. 취중이었지만 택시가 이 묘지 옆을 지나가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오른쪽 저쯤 어디에 그녀가 사는 아파트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내 가슴을 공연히 설레게 한다.
그렇다면 윤미를 만나려고 여기까지 온 것인가?
아니다. 이것은 절대로 내 의지가 아니다. 설령 무의식이라고 변명해도, 그 무의식이 내 의식속의 일부일지라도 이건 내 의지가 아니다. 그 무의식이 본능의 일종이고 본능은 타자의 작용이라고 하면 또 몰라도. 그렇다면 나는 나 자신이 아닌 타자의 의지에 끌려 다니고 있단 말인가.
아무튼 윤미는 내 가슴에 봄바람 같은 흔적을 남겼다.
이곳을 떠나야 한다. 또다시 윤미를 만나서 뭘 하려는 건가. 안돼. 은정을 이은 두 번째 쇠고랑을 스스로의 발목에 잠그는 어리석은 짓은 삼가야 한다.
그리고 나는 아버지의 꼭두각시가 되고 싶지 않다. 내가 아닌 아버지가 나를 지배하도록 방치하고 싶지 않다. 나는 내 의지대로 살고 싶다. 내 의지대로, 내 의지대로, 내 의지대로…… 그림자들의, 흔적들의, 낙서들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정말 윤미를 그리워하는 건 내 마음인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저 전라도 시골 땅에서 연로한 몸을 간신히 운신하고 계신다. 나를 따라다닐 여력도 능력도 없다. 파리시내에 데려다놓으면 그분은 말 한마디 할줄 모르는 벙어리나 다름없을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내 걸음걸이는 아버지를 닮았고 내 욕망은 아버지와 흡사한가. 그리고 나는 엄마처럼 어려운 상황 앞에서 소심하고 우유부단하기만 하다. 내 속에 있는 엄마아빠, 할머니할아버지와 나 자신은 어떤 공통점과 구별이 있는가를 생각하는 나는 코기토를 성찰하는 다른 하나의 나 즉 진정한 나일 것이지만 그 역시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이다.
할머니가 처음으로 나를 데리고 초상집에 굿하러 갔을 때 무서웠던 기억이 지금도 머릿속에서 잊혀지지 않는다. 나더러 해금반주를 해달라고 했지만 할아버지는 급환으로 병석에 누워 계셨다. 나는 공포와 두려움에 전신을 바들바들 떨며 훌쩍훌쩍 울기만 했다. 시신을 안치한 장막 안은 상제들의 곡성에다 할머니의 슬픈 노래까지 가세해 을씨년스럽기 그지없었다. 유령처럼 소복단장을 한 할머니는 역시 눈처럼 하얀 지전을 두 손에 들고 시신을 모신 앞뜰 장막 안에서 훨훨 춤을 추며 넋풀이를 했다. 나는 병풍 뒤의 칠성판에 죽어서 누워있을 시신이 무서웠고 굿판에 감도는 으스스한 분위기가 두려웠다. 어둡고 음침하고 괴상한 할머니의 표정은 물귀신소리 같은 넋풀이와 어울려 공포감을 더했다.
청소년들아 홍안백발 웃지 마소
어제 청춘 오늘 백발 그 아니 가련하랴
… …
서산에 지는 해를 뉘라서 멈추랴
할머니는 사설과 노래를 엇갈아 부르며 망자의 저승길을 보내는 굿 풀이를 했다. 황천길을 상징하는 긴 무명필위에 망인의 혼을 대신하는 밥주발을 올려놓고 밀었다가 당겨다가하면서 풀어내는 굿은 상제들의 호곡과 얽혀들며 더구나 으스스하게 들렸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할머니가 귀신으로 보였다. 그리고 해금과 피리소리가 요귀의 음성처럼 들렸다. 그 뒤부터 나는 할머니의 노랫소리나 해금, 피리소리를 들으면 저도 모르게 소름이 돋는 알레르기반응을 일으켰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올라와 음대를 다녔지만 국악기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아주 우연한 기회에 내가 다니는 음대생들과 국악대생들 간에 연합공연이 있었는데 그때 느닷없이 국악대학의 정 교수의 청에 못 이겨 해금연주를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연주를 청취한 주위사람들보다 더 놀란 것은 나 자신이었다. 정규적으로 배운 적도 없고 또 오랫동안 손도 대지 않았던 악기였는데 손에 쥐자마자 신들린 것처럼, 전문가도 찬탄할 만큼 내가 뜻하는 대로 유창하고 미끈하게 완주되었던 것이다.
그때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정 교수는 한눈에 내 연주에 반해버렸다.
“성진학생은 국악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어요. 전공을 국악으로 옮기는 게 어때요?”
그러나 나는 그녀의 선의에 미소로 응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내 어린시절을 잠식했던, 구질구질 낡아버리고 야생적이고 천박하고 미신적이고 서민적인 할머니의 굿 음악에 진저리가 날대로 나있었다. 서양음악이야말로 가장 고귀하고 현대적이며 진정한 음악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러나 정 교수의 집념은 끝이 없었고 드디어는 딸을 미끼로 (지나친 표현일지도 모르지만) 내 마음을 움직여보려고 미인계까지 시도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나는 정 교수가 알심 들여 설치한 올가미에 걸려들어 여래의 손바닥 안에 든 손오공의 신세가 되었고 은정과는 갈라질 수 없는 인연까지 맺고 말았던 것이다.
그래도 나는 서양음악을 향한 동경과 믿음을 버릴 수는 없었다. 사랑은 서양음악에 대한 나의 동경과 믿음을 동요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사랑은 사랑대로 간직하면 될 것이 아닌가.
드디어 나는 정 교수의 권고와 신임과 강요와 회유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유학을 결정하고 야 말았다. 다행한 것은 그때 은정은 내 발목을 잡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찬성표를 던져주었다는 사실이다. 그녀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유학경비를 조달하기 힘든 내 처지를 감안하고 자진하여 경비까지 마련해주었다. 그러나 그것이 그녀에 대한 내 감정을 선택하는데 정사에 이어 또 하나의 책임감이 되고 구속이 될 줄은 미처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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