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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2.08 정지용 시 20선 by 아데라

정지용 시 20선

 

기 차

 

할머니
무엇이 그리 슬어 우십나?
울며 울며
녹아도 鹿兒島고 간다.

해여진 왜포 수건에
눈물이 함촉,
영! 눈에 어른거려
기대도 기대도
내 잠못들겠소.

내도 이가 아퍼서
고향 찾어 가오.

배추꽃 노란 사월 바람을
기차는 간다고
악 물며 악물며 달린다.

 


임 종

 

나의 임종하는 밤은
귀또리 하나도 울지 말라.

나종 죄를 들으신 신부신부는
거룩한 산파처럼 나의 영혼을 갈르시라.

성모취결례聖母就潔禮 미사때 쓰고 남은 황촉불!

담머리에 숙인 해바라기꽃과 함께
다른 세상의 태양을 사모하여 돌으라.

영원한 나그네ㅅ길 노자로 오시는
성주 예수의 쓰신 원광!
나의 영혼에 칠색七色의 무지개를 심으시라.

나의 평생이오 나종인 괴롬!
사랑의 백금 도가니에 불이 되라.

달고 달으신 성모의 이름 부르기에
나의 입술을 타게 하라.

 

석 류

 

장미꽃처럼 곱게 피여 가는 화로에 숯불,
입춘 때 밤은 마른풀 사르는 냄새가 난다.

한 겨울 지난 석류열매를 쪼기여
홍보석 같은 알을 한알 두알 맛 보노니,

투명한 옛 생각, 새론 시름의 무지개여,
금붕어처럼 어린 녀릿녀릿한 느낌이여.

이 열매는 지난 해 시월 상 ㅅ 달, 우리 둘의
조그마한 이야기가 비롯될 때 익은 것이어니.

작은 아씨야, 가녀린 동무야, 남몰래 깃들인
네 가슴에 졸음 조는 옥토끼가 한 쌍.

옛 못 속에 헤엄치는 흰고기의 손가락, 손가락,
의롭게 가볍게 스스로 떠는 은銀실, 은실,

아아 석류알을 알알이 비추어 보며
신라 천년의 푸른 하늘을 꿈꾸노니.

 

 

부엉이 울든 밤
누나의 이야기 -

파랑병을 깨치면
금시 파랑바다.

빨강병을 깨치면
금시 빨강 바다.

뻐꾸기 울든 날
누나 시집 갔네 -

파랑병을 깨트려
하늘 혼자 보고.

빨강병을 깨트려
하늘 혼자 보고.

 

무서운 시계

 

오빠가 가시고 난 방안에
숯불이 박꽃처럼 새워간다.

산모루 돌아가는 차, 목이 쉬여
이밤사 말고 비가 오시랴나?

망토 자락을 녀미며 녀미며
검은 유리만 내여다 보시겠지!

오빠가 가시고 나신 방안에
시계소리 서마 서마 무서워

 

홍 춘

 

춘椿나무 꽃 피뱉은 듯 붉게타고
더딘 봄날 반은 기울어
물방아 시름없이 돌아간다.

어린아이들 제춤에 뜻없는 노래를 부르고
솜병아리 양지쪽에 모이를 가리고 있다.

아지랑이 졸음조는 마을길에 고달퍼
아름아름 알어질 일도 몰라서
여윈 볼만 만지고 돌아 오노니

 

유리창 2

 

내어다 보니

아주 캄캄한 밤,
어엄스런 뜰앞 잣나무가 자꼬 켜올라간다.
돌아서서 자리로 갔다.
나는 목이 마르다.
또, 가까이 가
유리를 입으로 쫏다.
아아, 항 안에 든 금붕어처럼 갑갑하다.
별도 없다, 물도 없다, 쉬파람 부는 밤.
소증기선小蒸氣船처럼 흔들리는 창.
투명한 보라 ㅅ빛 누뤼알 아,
이 알몸을 끄집어내라, 때려라, 부릇내라.
나는 열이 오른다.
뺌은 차라리 연정스레히
유리에 부빈다. 차디찬 입맞춤을 마신다.
쓰라리, 알연히, 그싯는 음향-
머언 꽃!
도회에는 고운 화재가 오른다.


붉은 손

 

어깨가 둥글고
머리ㅅ단이 칠칠히,
산에서 자라거니
이마가 알빛같이 희다.

검은 버선에 흰 볼을 받아 신고
산과일처럼 얼어 붉은 손,
길 눈을 헤쳐
돌 틈에 트인 물을 따내다.

한줄기 푸른 연기 올라
지붕도 해ㅅ살에 붉어 다사롭고,
처녀는 눈속에서 다시
벽오동 중허리 파릇한 냄새가 난다.

수집어 돌아 앉고, 철 아닌 나그네 되어.
서려오르는 김에 낯을 비추우며
돌 틈에 이상하기 하늘 같은 샘물을 기웃거리다.

 

바 람

 

바람속에 장미가 숨고
바람속에 불이 깃들다.

바람에 별과 바다가 씻기우고
푸은 뫼ㅅ부리와 나래가 솟다.

바람은 음악의 호수
바람은 좋은 알리움!

오롯한 사랑과 진리가 바람에 옥좌를 고이고
커다란 하나와 영원이 펴고 날다.

 

따알리아

 

가을 볕 째앵 하게
내려 쪼이는 잔디밭.

함빡 피어난 따알리아.
한낮에 함빡 핀 따알리아.

시약시야, 네 살빛도
익을 대로 익었구나.

젖가슴과 부끄럼성이
익을 대로 익었구나.

시약시야, 순하디순하여다오.
암사심 처럼 뒤여 다녀 보아라.

물오리 떠 돌아 다니는
흰 뭇몰 같은 하늘 밑에,

함빡 피어 나온 따알리아.
피다 못해 터져 나오는 따알리아.

 

바다1

 

오.오.오.오.오. 소리치며 달려가니
오.오.오.오.오. 연달어서 몰아 온다.

간 밤에 잠살포시
머언 뇌성이 울더니,

오늘 아침 바다는
포도빛으로 부풀어졌다.

철석, 처얼석, 철석, 처얼석, 철석,
제비 날어들 듯 물결 새이새이로 춤을 추어.

 

별1

 

누워서 보는 별 하나는
진정 멀-고나.

아스름 다치랴는 눈초리와
금실로 잇은 듯 가깜기도 하고,

잠살포시 깨인 함밤엔
창유리에 붙어서 엿보노나.

불현 듯, 솟아나 듯,
불리울 듯, 맞어들일 듯,

문득, 영혼 안에 외로운 불이
바람 처럼 이는 회한에 피여오른다.

흰 자리옷 채로 일어나
가슴 우에 손을 념이다.

 

새빨간 기관차

 

느으릿 느으릿 한눈파는 겨를에
사랑이 수이 알어질가도 싶구나.
어린아이야, 달려가자,
두빰에 피여오른 어여쁜 불이
일즉 꺼져 버리면 어찌 하자니?
줄 달음질 쳐 가자.
바람은 휘잉. 휘잉.
만틀 자락에 몸이 떠오를 듯.
눈보라는 풀. 풀.
붕어새끼 꾀여내는 모이 같다.
어린아이야, 아무것도 모르는
새빨간 기관차처럼 달려가자!

 

유리창1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린거린다.
열없이 붙어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양 언날개를 파다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치고,
물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백힌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 이어니,
고운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아아, 늬는 산ㅅ새처럼 날러갔구나!

 

고 향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꽁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메끝에 홀로 오르니
흰점 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 나고
메마른 입술에 쓰디 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선뜻! 뜨인 눈에 하나 차는 영창
달이 이제 밀물처럼 밀려오다.

미욱한 잠과 베개를 벗어나
부르는이 없이 불려 나가다.

한밤에 홀로 보는 나의 마당은
호수같이 둥그시 차고 넘치노나.

쪼그리고 앉은 한옆에 흰돌도
이마가 유달리 함초롬 고와라

연연턴 녹음, 수묵색으로 찢은데 찢 지
한창때 곤한 잠인양 숨소리 설키도다.

비둘기는 무엇이 궁거워 구구 우느뇨,
오동나무 꽃이야 못견디게 향그럽다.

 


산너머 저쪽에는

 

산너머 저쪽에는
누가 사나?

뻐꾸기 영우에서
한나절 울음 운다.

산너머 저쪽에는
누가 사나?

철나무 치는 소리만
서로 맞어 찌 르 렁!

산너머 저쪽에는
누가 사나?

늘 오던 바늘장수도
이봄 들며 아니 뵈네.

 


산엣 객시 들녘 사내

 

산엣 새는 산으로,
들녘 새는 들로.
산엣 색시 잡으러
산에 가세.

작은 재를 넘어 서서,
큰 봉엘 올라 서서,

〔호--이〕
〔호--이〕

산엣 색시 날래기가
표범 같다.

치달려 달어나는
산엣 색시,
활을 쏘아 잡었읍나?

아아니다,
들녘 사내 잡은 손은
차마 못 놓더라.

산엣 색시
들녘 쌀을 먹였더니
산엣 말을 잊었읍데.

들녘 마당에
밤이 들어,

활 활 타오르는 화투불 너머로
너머다 보며--

들녘 사내 선웃음 소리
산엣 색시
얼골 와락 붉었더라.

 

춘 설

 

문 열자 선뚝! 뚝 듯 듯
먼 산이 이마에 차라.

우수절(雨水節) 들어
바로 초하로 아침,

새삼스레 눈이 덮인 뫼뿌리와
서늘옵고 빛난 이마받이 하다.

얼음 금가고 바람 새로 따르거니
흰 옷고름 절로 향기롭워라.

옹승거리고 살어난 양이
아아 꿈 같기에 설어라.

미나리 파릇한 새순 돋고
옴짓 아니기던 고기입이 오물거리는,

꽃 피기전 철 아니 눈에
핫옷 벗고 도로 칩고 싶어라.

 

향 수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배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립어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든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잔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어여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안해가
따가운 해ㅅ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줏던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 거리는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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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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