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모음'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9.08.16 한국시 모음 by 아데라 1

한국시 모음

문학/시문학 2009. 8. 16. 17:39


한국시 모음

그리움이 흐르는 밤 / 정기모


별 하나 
가슴 깊숙이 내린
그리움 덩그런 여름밤
나이테만 늘어가는
내 등줄기 따라
너의 심장 소리 흐르고
여물지 못한 채
오르르 말아올린
물봉선화 그리움이
달콤한 향기로
눈썹달에 목을 거는 밤이면
바람에 기대어선 나는
끝끝내 토해 내지 못한
사랑 한다는 말 삼키며
갈대숲 푸른 울음으로
저녁 강물을 따라 흐르는데

그대 없는 세상에서 / 정기모

푸른 하늘은 나직이 내려
젖어드는 눈가에 머물고
어디서 우는지
처량한 풀벌레 소리 날라와
멍울 진 가슴에 꽂히는데
현기증 일도록
푸르게 흔들리는 세상에서
헛헛한 가슴 기대어 울 그대는 없습니다

외길이 더 환한 것처럼
으슥한 밤중에도
꽃등의 상처는 더욱 환하여
내 고운 상처하나 숨겨두기 좋았는데
별인지 꽃인지 또 떨어집니다
나도 그 밑에 나비처럼 잠이 듭니다
꿈결인 듯 들리는 소리 있어
그대 발걸음 소리인가 하겠습니다.

나그네 / 이인자 
   
그대 떠나감이
돌아오는 길임을 아는가

그대 길에서 헤메임이
돌아오는 길을 찾기 위함임을 아는가.
믿기지 않을 만큼 예쁜 도시를
사막의 한 가운데서 문득 만났을 때,
넓고 넓은 해변에서
보일 듯 말 듯 멀고 먼 수평선 마주하고 섰을 때,
낯선 이국의 땅에 발을 딛는 순간,
울고 있는 모래산을 옆에두고
함께 밤을 지새던 그 때...

그 모두가 돌아오는 길의 일부였듯이

그대 돌아오는 길 역시
다시 떠나기 위한 길임을 아는가
 
눈보다 더 희게/홍수희

눈송이보다 더 희어지기 위해서
천 개의 나를 떼어내는 중,
태워지고 삭혀지고 태워지고 삭혀지고
다시 차갑게 식혀지는 중,
사랑이 아닌 것에 정情을 둔 죄
헛것에 연연하여 허덕거린 죄
속살이 벗겨져 나가는 아픔으로 고해하는 중,
겨울나무 한 그루
칼바람 속 파도치며 솟구치고 있었다
캐럴이 흐르는 쇼윈도 옆
밤새 겨울비는 흑백필름으로 흐를 것이었다

사랑, 그 꿈의 눈물 / 양애희

하늘 강변 생의 눈물로
너를 기억 하노라면
반쯤 갈라진 입술가 그리움은
늘, 하루에도 열두번씩 유배 당했지.

적요의 마음가 빈 집에
깊고 오래 넘나드는 것들이 납작 엎드려
하나 둘 찾아나선 마음 기슭마다
왜 그리도 푸른 이끼가 많이 끼었는지.

저문 추억의 무늬를 새긴채
훌렁 하늘가에 벗어 던지면
너는 알까, 모를까
무릎세운 침묵만 나도는 시간의 나침반.

오늘은 그냥 네게로 갈까
차라리 그리 할까
어둠속 불빛 하나가 길을 내는 밤
자꾸만 가슴에 치미는 네가 그립다

꽃과 나 / 정호승

꽃이 나를 바라봅니다
나도 꽃을 바라봅니다
꽃이 나를 보고 웃음을 띄웁니다
나도 꽃을 보고 웃음을 띄웁니다
아침부터 햇살이 눈부십니다
꽃은 아마
내가 꽃인 줄 아나봅니다

비 오는 날의 이야기 / 박현진

수많은 동공을 지나
먹먹한 가슴 지울 수 없었는지 비가 내린다.

낡은 이야기의 책장을 넘기며
질주하는 생각 넘어지는 마음
방향을 잃고 넘실거리며 거리에 흩어진다.

비 오는 날에 마시는 한잔의 차에
윤기 있는 웃음 있었고
분명히 너의 존재로만 충분했었다.

빗나간 일기예보처럼
예고 없었던 이별 후 마음은 젖어있다.

한 줄기 빛처럼 너를 향해
마음을 비추고 사노라면
노을을 끌고 굴절되는 그리움
흥건히 젖은 핏빛이다.

너를 생각할 때마다 언덕 너머
안개처럼 피어나는 그리움 넋 놓은 별 밭이다
비 오는 날은

낙화(落花) / 조지훈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하리 꽃이 지는데.
꽃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이 있을까 저허하노니
꽃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생각한 일 / 한정숙

쉰 고개를 넘으면서
마흔 적 일이 그립더니
예순에 이르니
그때 불렀던 노래들은
가는 철 아쉬운 매미 울음

가면 갈수록
지나온 한 점 한 점들이
싹이었고
꽃이었고
무성한 잎새였다

이제
마지막 남은 한 잎
단풍으로 흔들리니
절망을 넘어 소망 하나
바람에 나부낀다

흙으로 돌아가면
태어날 생명을 위하여
한줌 기름진 토양으로 되리라

무제/이상

내 마음의 크기는 한 개 권련 기러기만하다고 그렇게 보고,
처심은 숫제 성냥을 그어 궐련을 붙여서는
숫제 내게 자살을 권유하는도다.
내 마음은 과연 바지작 바지작 타들어가고 타는 대로 작아가고,
한 개 궐련 불이 손가락에 옮겨 붙으렬 적에
과연 나는 내 마음의 공동에 마지막 재가 떨어지는 부드러운 음향을 들었더니라.

처심은 재떨이를 버리듯이 대문 밖으로 나를 쫓고,
완전한 공허를 시험하듯이 한 마디 노크를 내 옷깃에 남기고
그리고 조인이 끝난 듯이 빗장을 미끄러뜨리는 소리
여러번 굽은 골목이 담장이 좌우 못보는 내 아픈 마음에 부딪혀
달은 밝은데
그때부터 가까운 길을 일부러 멀리 걷는 버릇을 배웠더니라

회한의 장(章)/이상

가장 무력한 사내가 되기 위해 나는 얼금뱅이었다.
세상에 한 여성조차 나를 돌아보지는 않는다.
나의 나태는 안심이다.

양팔을 자르고 나의 직무를 회피한다.
이제는 나에게 일을 하라는 자는 없다.
내가 무서워하는 지배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역사는 무거운 짐이다.
세상에 대한 사표 쓰기란 더욱 무거운 짐이다.
나는 나의 문자들을 가둬 버렸다.
도서관에서 온 소환장을 이제 난 읽지 못한다.

나는 이젠 세상에 맞지 않는 옷이다.
봉분보다도 나의 의무는 적다.
나에겐 그 무엇을 이해해야 하는 고통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나는 아무 때문도 보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아무것에게도 또한 보이지 않을 게다.
처음으로 나는 완전히 비겁해지기에 성공한 셈이다.

가을만이 안다/유안진
 
제 슬픔의 키만큼 다 자란 풀밭에
비가 내린다
나도 따라 울었다
이 완벽한 화음(和音)의 길로
가을이 오고 있다
열꽃 앓는 시인이 불러줘서 봄이 왔듯이
시인이 울어야 가을이 오는 줄을
가을만이 알 뿐이다
가을에는 귀뚜리가 제일가는 시인이다

강물/천상병

강물이 모두 바다로 흐르는 그 까닭은
언덕에 서서
내가
온종일 울었다는 그 까닭만은 아니다

밤새
언덕에 서서
해바라기처럼 그리움에 피던
그 까닭만은 아니다

언덕에 서서
내가
짐승처럼 울고있는 그 까닭은
강물이 모두 바다로만 흐르는 까닭만은 아니다

깊은 우물/노향림

그대 가슴에는
두레박 줄을 아무리 풀어내려도
닿을 수 없는 미세한 슬픔이
시커먼 이무기처럼 묵어서 사는
밑바닥이 있다.

그 슬픔의 바닥에 들어간 적이 있다.
안 보이는 하늘이 후두둑 빗방울로 떨어지며
덫에 걸린 듯 퍼덕였다.

출렁이는 물 위로
누군가 시간의 등짝으로 떠서 맴돌다
느닷없이 가라앉아 보이지 않는다.
소루쟁이 풀들이 대낮에도 괭이들을 들쳐메고
둘러선 내 마음엔
바닥 없는 푸른 우물이 오래 묵어서 숨어 있다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김재진

믿었던 사람의 등을 보거나
사랑하는 이의 무관심에 다친 마음 펴지지 않을때
섭섭함 버리고 이 말을 생각해보라.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두 번이나 세 번, 아니 그 이상으로 몇 번쯤 더 그렇게
마음속으로 중얼거려보라.
실제로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지금 사랑에 빠져 있거나 설령
심지 굳은 누군가 함께 있다 해도 다 허상일 뿐
완전한 반려(伴侶)란 없다.
겨울을 뚫고 핀 개나리의 샛노랑이 우리 눈을 끌듯
한때의 초록이 들판을 물들이듯
그렇듯 순간일 뿐
청춘이 영원하지 않은 것처럼
그 무엇도 완전히 함께 있을 수 있는 것이란 없다.
함께 한다는 건 이해한다는 말
그러나 누가 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가.
얼마쯤 쓸쓸하거나 아니면 서러운 마음이
짠 소금물처럼 내밀한 가슴 속살을 저며 놓는다 해도
수긍해야 할 일.
어차피 수긍할 수밖에 없는 일.
상투적으로 말해 삶이란 그런 것.
인생이란 다 그런 것.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러나 혼자가 주는 텅 빔,
텅 빈 것의 그 가득한 여운
그것을 사랑하리라.
숭숭 구멍 뚫린 천장을 통해 바라뵈는 밤하늘 같은
투명한 슬픔 같은
혼자만의 시간에 길들라.
별들은
멀고 먼 거리, 시간이라 할 수 없는 수많은 세월 넘어
저 홀로 반짝이고 있지 않은가.
반짝이는 것은 그렇듯 혼자다.
가을날 길을 묻는 나그네처럼, 텅빈 수숫대처럼
온몸에 바람소릴 챙겨 넣고
떠나라

님의 침묵/한용운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으로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내 마음 아실 이/김영림

내 마음 아실 이
내 혼자 마음 날같이 아실 이
그래도 어디나 계실 것이면

내 마음에 때때로 어리우는 티끌과
속임 없는 눈물의 간곡한 방울방울
푸른 밤 고이 맺는 이슬 같은 보람을
보밴 듯 감추었다 내어 드리지.

아! 그립다.
내 혼자 마음 날같이 아실 이
꿈에나 아득히 보이는가.

향 맑은 옥돌에 불이 달아
사랑은 타기도 하오련만
불빛에 연긴 듯 희미론 마음은
사랑도 모르리 내 혼자 마음은

길/윤동주

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삶과 죽음/윤동주

삶은 오들도 죽음의 서곡을 노래하였다.
이 노래가 언제나 끝나랴

세상 사람은
뼈를 녹여내는 듯한 삶의 노래에
춤을 춘다.
사람들은 해가 넘어가기 전
이 노래 끝의 공포를
생각할 사이가 없었다

하늘 복판에 알 새기듯이
이 노래를 부른 자가 누구뇨

그리고 소낙비 그친 뒤 같이도
이 노래를 그친 자가 누구뇨

죽고 뼈만 남은
죽음의 승리자 위인들!

님을 보내며/황진이

달 아래 오동잎 말없이 지고 서리 속에 들국화 외로이 피네
하늘에 닿을 듯 높은 누각에 취하여 바라보는 슬픈 눈길들
서러운 거문고 쓸쓸히 울어, 이별의 피리 소리 가슴아파라
내일 아침 우리 서로 헤어진 뒤면, 그리움은 강물처럼 끝없을 것을

'문학 > 시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지용 시 20선  (0) 2014.02.08
Posted by 아데라
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