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불타는 반도
장혜영
제2장 영웅과 죄인
2
칠성은 51년 봄 사창리, 가평지역전투에서 부상당했다.
중공군 제9병단 일부 병력은 4월 공세를 발동하여 북한강을 건너 기동력과 화력이 강한 미1해병사단을 피해, 산악지대에 배치되어 있던 국군 6사단을 집중공격하기 시작했다. 국군 6사단은 그러지 않아도 50년 10월 말 온정리 전투에서 중공군에게 포위되어 치명적인 참패를 당해 거의 괴멸직전에 이른바 있는지라 아직도 전력이나 사기 모두 저락되어 있었기에 중공군 20군과 13병단 소속 40군의 협공을 당해낼 만한 전투력이 미비하였다. 그리하여 수적으로 우세한 중공군의 밀집공격에 방어선이 쉽게 무너졌다. 장병들이 뿔뿔이 흩어져 무질서하게 후방으로 도망치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졌다. 사단은 수많은 차량, 군사장비, 군수품들을 죄다 중공군의 수중에 버려둔 채 포위망을 뚫고 제각각 살길을 찾아 도망가기에 바빴다. 그 번 전투에서 6사단은 완전히 붕괴되다 시피 참패를 당했다.
칠성은 포탄 파편에 다리뼈가 부서진 채 산속으로 걸었다. 처음에는 서너 명이 동행했으나 한 명은 죽고 한 명은 실종되고 나중에는 그 혼자만 남게 되었다. 가슴에 관통상을 입고 과다출혈로 죽어가는 전우를 골짜기에 버려두고 그는 울면서 그 자리를 떠났다.
“난 어차피 죽을 놈입니더. 나 때문에 중사님까지 죽지 말구 어서 날 등에서 내려놓으소.”
전우의 가슴에서 흐른 피가 칠성의 군복을 벌겋게 물들였다.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자고.”
그러나 칠성이 보기에도 전우는 이미 임종을 앞두고 유언을 남기고 있었다.
“걱정 말게. 꼭 자네 집에 소식을 전해줄 테니까.”
등 뒤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와 칠성의 발걸음은 더구나 무거웠다. 눈물이 시야를 뽀얗게 가렸다.
그래도 산 사람은 살아야 했다. 눈물을 흘리며 전우를 등에서 내려 숲 속에 숨겨놓고 홀로 남행을 계속했다. 등 뒤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와 칠성의 발걸음은 더구나 무거웠다. 눈물이 시야를 뽀얗게 가렸다. 걷기 힘들면 기었고 기어 갈수도 없으면 뒹굴었다. 총을 쳐들 기운조차 없었다. 총을 분해하여 숲 속에 던져버렸다. 다리에서 자꾸만 피가 흘러내려 정신이 아찔했다. 게다가 굶주림까지 덮쳐 현기증 발작이 잦아졌다. 입술은 솔 껍질처럼 말라터지고 목구멍에서는 겻불내가 났고 상처의 모진 진통 때문에 저도 모르게 이가 으드득으드득 갈렸다. 옷은 갈기갈기 찢겼고 신은 닳아 없어진지 오래고 나무그루터기에 찔리고 돌부리에 걸채인 발바닥과 발가락에는 진흙과 피가 달라붙어 있었다. 텁수룩한 머리와 옷 혼솔에는 이와 서캐가 득실거려 밤이 되어도 온몸이 근질거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옷을 벗어서 손톱으로 혼솔을 쭈르륵 훑어 내리면 줄을 지어 붙어 있던, 보리알만한 이들이 하얀 밥알 같은 서캐들과 어울려 우박처럼 모닥불 위에 떨어지며 후드득 후드득, 튀군 했다.
그렇게 홀로 산 속을 걸어 포위망을 뚫고 국군지역에 도착했을 때 그는 완전히 초주검이 되어 버렸다. 그대로 야전병원으로 옮겨졌다. 천신만고 끝에 구사일생으로 포위망을 벗어나 귀대했건만 야박한 야전병원에서는 부상당한 그의 오른 다리를 절단해버리고 말았다.
“개놈들, 내 다리 내놔! 내 다리 어떡했어?”
약병들과 의료기구들을 들부수며 몸부림치고 울부짖었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그에게 차례진 것은 군인불구자 증명서 한 장과 목발 한 쌍뿐이었다. 물론 그는 훈장도 수여받고 영웅대접도 받았다. 그러나 참군할 때만 해도 사지가 멀쩡하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불구자가 되어 목발을 짚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 보니 누나는 없었다. 그러나 찾고 싶지도 않았다.
종전 후 세 살 연상 과부를 아내로 맞아들이고 아기도 낳은 칠성은 그제야 누나가 해산했을 때 맡겨두었던 집을 찾아가 보았다. 그러나 그곳엔 폭격에 무너지고 불타버린 폐허만 남아 있을 뿐 주인 내외도 누나와 조카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폭격에 죽었을지도 모른다 싶어 폐허와 그 주변을 샅샅이 뒤져 보았으나 사람의 뼈 한 조각, 머리카락 한 오리 발견하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누나 막순이가 폭격에 죽었거나 월북했을 거라는 생각에 수소문을 포기하고 살아가던 1953년 어느 날이었다. 전날 겨우 삶은 감자 하나로 저녁식사를 대신한 칠성은 한밤중에 배가 고프고 속이 파내려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뒤란에 나가 살구열매라도 따먹으려고 마루로 나왔다. 벌써 몇 번이고 따먹어 열매가 없었지만 그래도 잘 살펴보면 몇 알쯤은 얻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마루 위에 난데없이 담요에 쌓인 어린애가 놓여 있었다.
“아니, 누가 여기다 애를 두고 갔지?”
목발을 짚고 절뚝절뚝 집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사람 그림자조차 찾을 수 없었다. 칠성은 아기를 품에 안고 방 안으로 들어와 네 활개를 뻗고 코를 고는 아내를 깨웠다.
“여보, 좀 일어나 보구려. 누가 우리 집 마루에 애길 두고 갔어.”
“우짤라꼬 이른 새복부텀 일나서 성가시게 굼니껴?”
청도 댁은 화를 버럭 내며 벽 쪽으로 돌아누웠다. 벌쭉 드러난 엉덩이가 치악산만큼 거창하고 둥실했다. 몸뚱이가 어찌나 피둥피둥한지 가을철의 살진 곰 같았다. 정말이지 다리만 부러지지 않았다면 칠성은 이렇게 못생기고 영악하고 게다가 세 살이나 연상인 과부를 아내로 맞아들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칠성에게는 청도 댁이 보배덩이나 다름없었다.
“글쎄 퍼뜩 눈떠보라니까 그런다. 이 아길 좀 봐. 우리 용일이보다 더 커.”
“머라카심니껴? 시방 아락캐심껴 예?”
청도 댁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두 눈에 잔뜩 달라붙어 시야를 가리는 누런 눈곱을 손등으로 부스럭부스럭 문질러 떨어뜨리며 놀란 눈길로 아기를 들여다보았다. 그녀의 볼따구니로 흘러내린 침 자국이 희부옇게 말라붙어 있었다.
“이 가이난 워디서 났심껴?”
“마루위에 있더라니까 그래. 사람도 없고.”
“우얄락꼬 아르 안고 들어왔심껴. 당장 내비리이소.”
“펀들펀들 살아있는 애를 어떻게 내버리라는 거요.”
“오야. 그락카문 우리캉 한집에서 길키락도 할락카심니껴. 갱기나 폴 뿌리, 고구마나 산열매로 근근득생을 하는 살림에 세 식구가 살락캐도 굶어죽을 판이 아님껴.”
청도 댁은 귀찮은 듯 다시 용일을 품에 껴안고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아내의 축객에 칠성은 일단 아기를 안고 마루로 나오긴 했으나 차마 버릴 수가 없었다. 어쩐지 그 애의 모습이 누나의 얼굴을 닮아보였다. 동그스름한 윤곽이며 서글서글한 눈매, 오뚝한 콧날이며 토실토실한 두 볼 그리고 두툼하나 작은 입술까지 누나 막순의 얼굴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과 같았다. 게다가 나이까지 비슷하다. 누나의 산달이 50년 9월 말 경이었다. 그러니까 그 애가 지금 살았다면 4살쯤 되었을 것이다.
틀림없어! 분명 누나의 피붙이야. 내 집 문 앞에 아이를 두고 갈 사람은 누나밖에 없어. 남편을 죽인, 태어나자마자 조카를 과부자식으로 만든 이 동생의 얼굴조차도 대면하고 싶지 않았을 거야. 아니, 남편이 저지른 죄를 생각해서도 누난 동생을 대할 면목이 없었을 거야. 그러나 다음 순간 칠성의 머릿속을 번개같이 스쳐가는 생각이 있었다.
빨갱이의 새끼!
그는 전신을 흠칫 떨며 아기를 도로 마룻바닥에 털썩 내려놓았다. 그 애가 무슨 독사나 징그러운 벌레 같아 보였다. 내 다리가 왜 잘렸는데. 빨갱이 때문이 아닌가.
놀란 아기가 놀라 잠에서 바스러질 듯 울기 시작했다. 칠성은 두 귀를 틀어막았다. 그러나 계집애는 아예 포대기 속에서 기어 나오더니 마룻바닥 위를 이리저리 걸어 다니며 《엄마》를 불러댔다.
칠성은 문득 누나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매부 억쇠만 생각한다면 저 어린 것을 이 자리에서 당장 엎질러 죽여 버리고도 싶었지만 자기 때문에 청상과부가 된 누나의 비참한 인생이 불행했다. 칠성은 다시 그 애를 부둥켜안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계집애는 그의 품에서 빠져나가려고 한사코 발버둥을 쳤다.
“여보. 아무래도 이 애가 누나의 자식 같으니까 우리 그만 받아들일까? 누나가 데리러 오겠지 그때까지만……”
“머예? 이 양반이 지끔 머슨 말할락카심니껴. 도대체 전쟁고아들이 도처에 득실거리는데 이 가시나가 누우 딸이락카는 걸 우짜 아일 긴데 예. 그락꼬 우리캉 용일이캉도 묵을꺼이 없어 그락카이께니 머실 묵일락 캄니껴?”
청도 댁은 발딱 일어나 앉더니 계집애를 남편의 품에서 와락 빼앗아갔다.
“당장 내다 버리락카이!”
“그러지 마. 우리한텐 적지만 아버지한테서 물려받은 땅도 있으니 식구 하나쯤 불어난다구 안될 건 없잖어.”
“그까짓 궁더이카마 쪼맨한 땅뙈길 갖고 예……”
사실 50년대는 살아가기가 어려운 시기였다. 하루 두 끼를 챙겨서 먹고 사는 집도 드물었다. 풀뿌리나 나물, 산열매에 감자와 고구마를 하루 한 끼 먹기도 어려웠다. 옥수수를 섞은 죽이나 귀리가루, 메밀가루, 콩, 팥을 섞어 지은 밥을 먹는 집은 온 동네 치고도 두세 집에 불과했다.
아내는 그날 밤 남편 몰래 그 애를 안아 집 뒤의 골짜기에 내다버렸다. 그러나 자지 않고 아내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던 칠성은 아내의 뒤를 몰래 미행해 그 애를 도로 안아왔다.
“나도 빨갱이 새끼가 미워. 그러나 누나를 보면 불쌍하잖아. 이것도 생명인데.”
청도 댁은 남편의 간청에 하는 수 없이 한 걸음 양보했다. 그러나 누나가 데리러 올 동안만 그 애를 기르기로 다짐받고서야 유한 부 양육을 허용했다.
칠성은 그 애의 이름을 분녀라고 지어주었다.
그러나 누나 막순이는 분녀를 데리러 오지 않았다. 그러자 분녀에 대한 청도 댁의 학대는 날이 갈수록 지독해졌다.
칠성이도 덩달아 분녀가 미워졌다. 그 애를 볼 때마다 억쇠가 생각났다. 부모님과 아내를 학살한 원수 놈의 자식을 애당초 받아들이지 말았어야 했다. 누나에 대한 미안함도 그녀의 실종과 함께 점차 희미해지고 대신 억쇠에 대한 저주와 증오가 분녀의 몸에 집중되었다. 할금할금 눈치만 보는 것도, 쩍하면 삐지고 눈물을 쥐어짜는 것도, 한번 다물면 바늘로 이마를 찔러도 입을 열지 않는 고약함도, 아직은 장난에 심취할 어린 나이에 곧잘 어른스런 명상에 잠기곤 하는 것도, 영양실조로 누르스름하고 야윈 얼굴에 수심과 불만이 어린, 주접 낀 표정도, 흙탕물에 튼 손등과 서캐가 득실거리는, 헝클어진 머리카락도…… 분녀의 일 거수 일 투족이 눈꼴사나워 보였다. 그것은 그 애의 행동이 아니라 매부 억쇠의 행동 같아서 보기가 역겨웠다. 이제 그 애의 얼굴이며 걸음걸이며 낮고 조용한 음성이며 날이 갈수록 누나가 아닌 빨갱이 제 아비를 판에 박은 듯이 닮아가고 있어 몸서리까지 쳐졌다. 그래서 칠성의 입에서는 하루도 빠짐없이 《빨갱이 새끼!》라는 욕설이 저도 모르게 터져 나가곤 했다.
양딸에 대한 청도 댁의 학대는 어찌나 지독한지 칠성이도 눈 뜨고 보기가 민망할 정도였다.
“이년아, 굶어죽은 귀신이락도 붙어쌌노? 머신 뱁얼 도야지 맹키로 밥상에만 마주 앉을락카문 게걸시럽게 묵어쌋노!”
밥술을 들기 바쁘게 욕설과 빗자루가 날아들었다.
분녀는 자기보다 더 큰 용일을 업고 달래다가 울리기라도 하면 금방 싸리회초리에 정강이를 맞아야 했다. 여섯 살부터는 빨래며 땔나무며 물 긷기며 집 안 청소를 시켰고 지어는 들일까지 끌고나갔다.
“이 가시나야! 마 이것도 닦았닥카노? 물만 발라 놓고는. 공밥 묵고 놀기만 할락카노?”
어떤 날에는 마룻바닥을 열 번도 넘게 다시 닦아야 했다.
한 번은 일곱 살 난 분녀가 냇가에서 물을 길어가지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빙판길에 미끄러져 넘어지는 통에 물동이를 박살낸 적이 있었다. 청도 댁은 붉으락푸르락하여 회초리로 그 애의 다리며 등허리며 얼굴이며 가리지 않고 사정없이 난타했다.
“이 개쌍년아! 네년을 폰닥캐도 그 동이를 못사는 건데. 퍼뜩 이 집구석에서 나가락카이. 다시는 내 눈앞에 얼씬하지 말거래이. 꼬락서니 하부랑 보기 싫으니께니. 너 같은 빨갱이 새끼는 진작 죽어버려야 했던거여.”
그날 밤 분녀는 양모에게 쫓겨나 뒤뜰 살구나무 밑에서 잤다.
칠성은 밤새 뒤란에서 들려오는 그 애의 흐느낌소리를 들으며 기분이 착잡해졌다. 아무리 원수 놈의 자식이고 빨갱이의 자식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그 애의 몸에는 누나의 피가 흐르고 있다. 누나가 살아서 동생이 조카를 이처럼 학대하는 걸 알게 된다면 얼마나 가슴아파할까?
“네 애빈 북괴군 빨갱이 놈이었어! 네 할아버지, 할머니를 학살한 원수 놈이란 말이야!”
칠성은 술만 마시면 분녀를 앞에 불러다 무릎을 꿇게 하고는 가슴 속에 쌓인 원한을 그 애에게 쏟아 부었다. 분녀는 분노가 이글거리는, 큰아버지의 노기충천하고 험상궂은 모습을 보고 공포에 질려 울음을 터트리곤 했다. 그러면 칠성은 울면 운다고, 잠잠하면 말이 없다고 트집을 걸어 구타하곤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분녀의 아버지를 죽인 사람은 자신이라는 죄책감에 마음 한 구석이 늘 어두웠다. 분녀에게는 자신의 존재가 큰아버지이기 전에 부친을 살해한 원수였다. 자신의 존재가 누나에게 동생이기 전에 남편을 죽인 원수인 것처럼 말이다. 때로는 그 애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고 싶은 양심의 충동을 느낀 적도 없지 않았다. 정말이지 그때 그 산중에서 억쇠를 죽일 때는, 그가 부모를 죽이고 아내를 죽인 매부를 증오했듯이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두 번째 억쇠가 되어 증오의 대상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그때는 오로지 복수 하나만을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 복수가 오늘 조카애에게 업보가 될 줄이야 누가 알았으랴. 만일 조카애가 여자가 아니고 남자이며 아이가 아니고 어른이라면 그리고 다시 전쟁이 벌어지고 그 애의 손에 총이 쥐어졌다면 큰아버지의 가슴에 총부리를 들이대고 아버지의 복수를 하려한다 해도 칠성은 할 말이 없었을 것이다. 사실 그 애에게는 아무런 죄도 없지 않는가!
언제부턴가 분녀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밖에서는 눈보라소리만 윙윙, 울부짖었다. 밤의 추위는 더구나 혹독해 영하 25도의 혹한이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홑옷 바람인 그 애가 굶주리기까지 하여 얼어 죽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떠밀려 칠성은 목발을 짚고 밖으로 나갔다. 살을 에는 추위가 뼛속까지 엄습했다.
분녀는 나무 밑에, 전신을 골뱅이처럼 잔뜩 꼬부린 채 누워 있었다. 눈물이 얼어붙어 속눈썹에 고드름이 하얗게 열렸다.
“이 못된 년! 꼭 큰애비가 데리러 나와야 들어갈 테냐. 애빌 닮아서 성질머리하고는……”
그 애를 등에 업었다. 등에 닿는 느낌이 온기라곤 하나도 없어 한 덩이의 얼음조각 같았다.
“실은 말이다. 이 큰애비가 네 아빌 죽였다.……”
분녀는 이미 실신해 있었다. 정말이지 빨갱이든 무엇이든 제 아비만 살아 있었다면 분녀도 이런 천대와 곤욕은 당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야, 이 빨갱이 새끼야!”
용일이 녀석은 한 번도 제 누나의 이름을 부른 적이 없었다. 입만 뻥긋하면 빨갱이 종자니, 빨갱이 새끼니, 진작 죽었어야 할 년이니 하고 누나에게 악담을 퍼부었다. 누구도 용일의 망발을 제지하는 사람은 없었다. 분녀도 습관이 된 듯 그런 악담들을 불쾌해하거나 개의치 않고 자기 이름처럼 받아들였다. 녀석은 집안의 돈이나 물건을 훔치고는 들통이 나면 밥 먹 듯이 그 죄를 누나에게 덮어씌우곤 했다. 그랬지만 분녀는 변명 한마디, 불만 한마디 없이 동생의 죄를 뒤집어쓰고 대신 매를 맞아주었고 욕을 들어주었다. 종아리가 터져 피가 흘러내려도 동생의 이름을 불지 않았다. 지독한 욕설과 아픈 매질이 끝나면 홀로 냇가나 산에 올라가 실컷 울고 돌아오곤 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올 때는 눈물을 말끔히 닦고 태연스런 표정을 지었다.
“네 아비도 술고래였네라. 이 큰 아비와 대작을 하면 사발로 마시곤 했지.……”
언젠가 칠성이가 혼자서 술을 퍼마시다가 문득 전에 매부와 같이 술 마시던 생각이 떠올라 한마디 했다. 그러자 분녀는 뜻밖에도 진저리를 쳤다.
“전 아버지가 싫어요. 아버지란 말조차 듣기 싫어요!”
귀까지 틀어막고 두 눈을 꼭 감아버렸다.
그래도 아빈데 아비란 말조차 듣기 싫다니! 천만 사람이 죄다 타매하고 저주해도 자식만은 제 아비를 미워해서는 안 되느니. 이년이 감히 천륜을 어길 작정인가!
칠성은 화를 버럭 내려다가 그만 단념하고 말았다. 자식이 아비를 저주하도록 만든 것이 다름 아닌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말해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분녀가 나이가 들수록 칠성의 심리갈등도 그만큼 커갔다. 자꾸만 그 애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나한테는 빨갱이고 원수지만 그 애한텐 아버지가 아닌가. 그러나 이 사실을 털어 놓으면 그 애에게 당해야 할 저주와 원망이 두려웠다.
아내는 분녀를 학교 보내는 것마저 결사반대했다.
“묵고 살락캐도 힘든 시월인데예 공부가 다 머심니껴. 더구나 빨갱이 종자를 공부시킴시로 머할락꼬.”
분녀는 무릎을 꿇고 낙루만 할 뿐 아무 말이 없었다. 이 집안에서 자기 말은 강아지가 짖는 것보다도 못하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애는 그저 부모의 처분만을 다소곳이 기다릴 뿐이었다.
“가시나라지만 제 앞의 글이나 볼 만큼 공부시켜야지 않겠소. 고등학교는 보내지 못해도 국민 학교는……”
칠성은 누나에게 진 빚과 그 애에게 진 빚을 그것으로나마 청산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래서 연 며칠 동안 아내에게 애걸하다시피 하여 허락을 받아냈다.
분녀는 학교에 가서도 늘 애들한테 따돌림을 당했다. 모두들 그를 빨갱이종자라고 골려주면서 또래에 넣어주지 않고 따돌렸다. 한 번은 한반 애들이 분녀를 길바닥에 깔고 앉아 언 개똥을 먹이기까지 했다. 그들 중에는 할아버지나 부모가 6.25때 억쇠의 손에 죽은 피해자들의 자손들도 있었다. 분녀는 하루 건너 얻어맞아 멍이 들거나 피를 흘리고 돌아오곤 했다.
“으매 꼬락서니 하부랑 보기 싫닥카이! 밲에 나가 꺼벅 뒤지기낙캐라!”
청도 댁은 보듬어줄 대신 욕설을 퍼부으며 회초리로 분녀의 종아리를 사정없이 때렸다. 칠성은 그저 지켜만 볼뿐 별다른 수가 없었다. 아버지가 저지른 죗값을 그 자식이 받아야한다는 사실이 불공정하다는 생각도 없지 않았지만 억울하게 죽은 피해자 가족의 심정도 이해가 되었기 때문이다.
분녀는 가정에서는 학대, 학교에서는 수모를 당하면서도 공부를 잘했다. 우수한 성적으로 고등학교입시에 합격했다. 그러나 어느 날 입학 등기하러 갔던 분녀는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 학교에서는 너 같은 애를 받을 수 없다. 네 아버진 빨갱이고 동네 사람들을 수십 명이나 학살했다면서?”
교감선생님이 그녀의 입학을 한마디로 잘라버렸던 것이다.
칠성은 개울가에 쭈그리고 앉아 하염없이 울고 있는 조카애를 측은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 애의 불행이 단지 그 애의 아비 억쇠의 죄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어쩌면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을지도 모른다. 애초에 아내의 말대로 그 애를 죽여 버렸으면 몰라도 수양을 했으니 좀 더 사랑을 베풀었어야 했다. 누나를 봐서라도, 조카의 앞날을 봐서라도…… 사실 그 자신도 분녀에게는 빚을 진 죄인이 아닌가. 그 애를 학대할 아무런 이유도 없었다.
그날 저녁 칠성은 술을 만취하도록 마시고 분녀를 앞에 불러 앉혔다. 술을 마시지 않고는 그 엄청난 역사를, 자신의 죄행을 이실직고할 용기가 없을 것 같아서였다. 그 애도 알 때가 되었다. 인젠 처녀가 되었고 고등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되었다. 아니 그 애도 알 권리가 있었다. 아버지에 대해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네가 빨갱이 자식이라고 사회의 외면과 버림을 받는 건 네 아비 탓이지 이 큰애빌 원망할 건 하나도 없다. 물론 그건 네 죄는 아니지. 네가 낳아달라고 아비, 어미한테 간청한 것도 아니니까. 그러나 이 큰애빈 지금껏 너한테 미안한 것이 하나 있었어. 오늘은 내가 너한테 죄다 말해주마. 너도 네 아비가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큰어머니를 학살한건 알고 있잖냐. 그런데 네 애빈 어떻게 죽었는지 알고 싶지 않으냐?”
전혀 뜻밖의 질문에 분녀는 고개를 흠칫 쳐들었다. 그 애도 알고 싶었던 게 분명하다. 그러나 감히 그 말을 입 밖에 꺼내지 못하고 참아왔으리라. 조카의 얼굴이 눈물로 얼룩져 있었다.
“큰아버지, 전 아버질 저주해요! 증오해요! 아버지가 어떻게 죽었건 누구에게 죽었건 그것마저도 알고 싶지 않아요.”
분녀는 고개를 떨어트리며 흑흑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의 말이 진심이 아님을 칠성은 알고 있었다. 한 번 보지도 못한 아버지 때문에 당한 수모와 아픔, 능욕과 설움이 너무나 컸을 것이다. 그러나 필경은 아버지였다. 살아 있는지? 살아 있으면 어디에 계시는지? 죽었는지, 죽었으면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해서 알고 싶은 것이다.
“알고 싶을 테지. 자식이니까. 내 네 마음을 다 안다. 억쇠가 월북해서 북한에 살고 있다고만 생각했을지도 모르지만 네 아빈 죽었어. 6.25 때.”
칠성은 잠시 말을 멈추고 술잔을 기울여 입 안에 털어 넣었다. 아직도 그 놀라운 사건을 실토하기엔 알코올이 모자란 느낌이었다.
“네 아빈 이 큰애비가 죽였어!”
저도 모르게 고함소리가 터져나갔다.
스스로도 그 말을 꺼내기가 두려웠다. 고함을 질러서라도 공포감에서 해탈하고 싶어서였다.
“네?! 큰아버지께서 우리 아버질 죽였다고요!”
분녀의 얼굴은 경악으로 창백해졌다. 믿을 수 없다는 듯 휘둥그레진 두 눈에 의혹의 그늘이 두텁게 깔렸다.
“그래 이 큰애비가 북으로 도망가는 네 아비를 뒤쫓아 가 총으로 쏴 죽였어!”
칠성은 갑자기 고개를 떨어트리며 어깨를 들먹이기 시작했다.
“어찌 그러실 수가? 어찌 그러실 수가!”
분녀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한 말을 연신 곱씹었다. 그렇다면 큰아버지도 우리 아버지와 다를 게 뭐가 있어요? 하고 그 애의 표정은 말하고 있었다. 억쇠도 빨갱이기 전에 필경은 사람이었고 한 아이의 아버지이며 한 여자의 남편인 것만은 틀림없었다.
“오래전부터 너한테 실토하려고 했다. 그러나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아 오늘까지 미뤄왔구나. 미안한 마음은 늘 있었다. 너나 네 어미한테 말이다. 하지만 큰애비는 네 할아버지, 할머니와 큰엄마를 학살한 원수를 찾아 복수했을 따름이란다.”
칠성이 다시 고개를 쳐들었을 때는 이미 분녀가 앉았던 자리는 텅 비어 있었다.……
한편 분녀는 북받치는 울분과 설움을 억누를 길 없어 집을 뛰쳐나오고 말았다. 자신을 양육해준 큰아버지가 부친을 살해한 원수라니? 이게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단 말인가.
눈앞이 캄캄해졌다. 정신이 아뜩아뜩해났다.
분통이 터져 집을 탈출하긴 했지만 정작 갈 곳은 없었다. 늘 큰아버지네 집이 싫었다. 지옥 같았고 감옥 같았다. 독사 같이 표독스러운 양모가 싫었고 술 마시고 주사부리는 큰아버지가 무서웠다. 그 집을 뛰쳐나와 멀리 달아나고 싶은 생각을 한두 번만 한 것이 아니었다. 오늘에야 그 소원을 이뤘건만 불행하게도 갈 곳이 없으니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녀는 문득 초등학교 때 한 반을 다녔던 미자가 생각났다. 그 집 역시 빨갱이가족이라고 사회에서 외면과 소박을 당해 분녀와 각별히 가깝게 지내던 사이었다. 지금은 아산에 이주하여 살고 있었다.
우선 미자를 찾아가기로 작심하고 아산으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다행히도 미자는 그녀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 집 부모님들도 분녀더러 딸의 방에 함께 거처하라고 선선히 허락해주었다.
그러나 신세도 하루 이틀이고 더부살이도 한계가 있었다. 아무 하릴없이 남의 집에 눌러앉아 공밥을 먹고 지내려니 하루가 십년같이 지루했다. 아무리 먹어도 배만 고프고 먹는 만큼 살이 내리는 것 같았다. 언제까지고 이런 방식으로 기생충생활을 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미자네 집 식구들도 날이 갈수록 그녀를 대하는 눈길이 못마땅하고 부담스러워 하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큰아버진데 집으로 돌아가야지 않니?”
“친척이 정말 그렇게도 없냐?”
“오늘 저녁엔 또 뭘 해먹지? 날마다 끼니 걱정이 태산 같아.”
그런 말들을 들을 때면 밥그릇에 숟가락을 가져다 대기가 눈치 보였고 엉덩이 밑에 송곳방석을 깔고 앉은 듯 마음이 조마조마해지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미자에게 쪽지 한 장만 남기고 서울로 상경했다. 행선지는 서울이었지만 그곳에도 지인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무작정 내친 초행길이었다. 그녀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체념하기로 작정했다. 아버지, 어머니의 버림을 받고 친척이나 사회의 버림을 받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자신의 존재를 헌신짝 버리듯 되는 대로 탕진해버리기로 결단을 내렸다. 누구도 나 같은 건 어여삐 여기지 않는다. 아무리 의미 있는 삶을 살려고 해도 버림받은 운명일 뿐이다. 그래 나 스스로 나 자신을 시궁창에 처박고 쓰레기통에 버리고 똥구덩이에 내던지리라. 그런들 누가 가슴 아파하랴.
“아가씨, 시골서 오셨죠? 서울이 처음이죠? 아는 사람도 없고?”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머리에 무스를 번들번들하게 바른 사내가 개찰구를 나서는 그녀에게 어슬렁어슬렁 접근하더니 마치도 구면인 것처럼 싱글싱글 웃으며 알은 체 했다.
“네.”
“잠자리와 먹을 곳을 마련해줄 테니 날 따라와요.”
사내는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돌아서서 성큼성큼 역 광장을 가로질러 거리 쪽으로 걸어갔다. 분녀는 잠시 망설였지만 그 사내가 사람들 속으로 스며들자 놓치기라도 할까봐 부랴부랴 뒤쫓아 갔다. 아닌 게 아니라 그녀는 갈 곳도 없었고 서울의 거리도 낯설었다. 하늘을 찌르는 고층건물들이 꽉 박아선 서울 복판에 내리자 덜컥 두려움부터 앞섰다. 맘씨 착한 분을 만난 게 도리어 다행이라고 생각되었다.
사내를 따라간 분녀는 서울 역 부근의 어느 여인숙에서 하룻밤을 지냈다. 더럽고 악취가 풍기긴 했지만 편히 다리 뻗고 잘 수가 있고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이었다. 사내는 텅 빈 그녀의 주머니사정을 아는지 숙박비 같은걸 내놓으라고 구차하게 들볶지도 않았다.
이튿날 그녀가 사내를 따라 간 곳은 종로의 어느 나이트클럽이었다. 사내는 그들과 뭐라고 쑥덕거리더니 두툼한 봉투를 받아 호주머니에 넣고는, 등 뒤에서 기다리고 있는 분녀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밖으로 휘잉, 나가버렸다.
분녀는 이튿날부터 나이트클럽에서 팬티와 브래지어만 걸치고 미친 듯 재즈음악에 맞추어 나체 무를 추는 무희가 되었다. 사장이 처음에 그녀더러 옷을 벗으라고 했을 때 망설이기도 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모든 것을 버리고 팔자소관대로 살기로 작심한 지금에 와서 주저할 것이 더 무엇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그녀를 체념하도록 했다.
그녀의 순결한 땅을 파고 맨 처음 남성의 씨앗을 뿌려준 사람은 바로 그 나이트클럽의 사장이었다.
“따라와.”
말 한마디에 사장을 따라 어느 여관으로 들어갔다.
“씻고 와.”
몸을 씻고 침대로 돌아오자 사장은 말없이 그녀의 옷을 벗겼다. 전신이 바삭바삭 말라들고 꼬깃꼬깃 오그라들었다. 숨결은 거칠어지고 토막이 났다. 느닷없이 큰아버지의 총탄을 맞고 죽어가는 아버지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 순간에 무엇 때문에 전혀 엉뚱한 아버지의 죽는 모습이 떠오르는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가슴을 움켜쥐었다. 가랑이를 오므렸다. 큰아버지가 발사한 총탄처럼, 아버지의 가슴을 파고들었던 총탄처럼 견고하고 뜨겁고 불가항력적인 무언가가 그녀의 몸속으로 깊숙이 굴착해 들어왔다.
아버지는 숨을 거두면서 울었을까? 울지 않고 지금 나처럼 모진 진통으로 몸부림을 쳤을까? 분녀는 울었다. 그리고 하신이 찢기는 통증을 느끼며 꿈틀거렸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순식간에 벌어졌고 순식간에 끝나버렸다. 그리고 그녀는 아버지처럼 죽지도 않았다. 아니, 그녀는 분명 자신의 몸에서 뭔가가 죽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그게 무엇일까?
그 뒤로 수많은 남자들이 그녀의 몸뚱어리를 짓밟고 지나갔지만 다시는 울지 않았다. 다시는 아파하지 않았다. 묵묵히 받아들였고 짓거리가 끝나면 침대 위에 널려 있는 지폐들을 주워 핸드백에 꼼꼼히 챙겨 넣었을 뿐이었다. 그녀의 몸뚱이는 그녀를 먹여 살리기 위한 노동공구에 불과했다. 그리고 남자들과의 그 짓은 그녀에게는 노동이었고 직업이었다.
분녀가 임신하여 낙향한 것은 그로부터 1년 뒤였다. 가을바람에 낙엽이 풀풀 날아 떨어지는 늦가을이었다. 꽃들도 지고 나뭇잎도 지고 곡식도 거두어들여 산과 들은 황량하기 그지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어떻게 큰아버지네 집으로 왔는지 몰랐다. 막달 된 배를 부여안고 도착한 집은 다름 아닌 큰말의 그 오두막집이었다.
“나가락카이! 어디 가서 붙여온 더러운 종자를 집안에 끌고 들어올락카노? 빨갱이 핏덩이를!”
큰아버지는 고개를 숙이고 담배만 뻐끔뻐끔 빨았고 청도 댁은 그녀의 등을 사정없이 울바자 밖으로 떠밀어냈다.
그녀는 울면서 아산으로 내려갔다. 거기서 미자의 도움을 받아 자취방 하나를 구했다. 그동안 몸뚱이를 팔아서라도 돈을 모아 둔 것이 얼마나 잘된 일인지 모르겠다.
사실 복중태아를 지워버리기도 싶었다. 그러나 웬일인지 뱃속의 태아가 측은해졌다. 그래도 자신은 인간 세상에 태어난 다음에 버림을 받았지만 복중태아는 지워버리면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엄마에게서 버림을 받게 되지 않는가. 아빠가 누군지는 그녀도 모른다. 그러나 그 핏덩이가 생겨난 건 그 애의 죄가 아니다. 그 애는 생겨난 만큼 이 세상에 태어날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기처럼 버림받고 소외당한 인생이 아닌 행복한 인생을 살게 하고 싶었다. 자신이 누리지 못한 행복을 그 애더러 누리게 하고 싶었다.
“처녀가 애를 어떻게 기른다고 그래. 시집은 안 갈 거니? 고집부리지 말고 병원에 가서 지워버려.”
미자의 간곡한 권고도 뿌리치고 기어이 뱃속의 아기를 분만하고야 말았다. 운명인지 태어난 아기 또한 계집애였다. 행복하라고 이름도 잘 지어주었다. 유명한 작명소에 찾아가 전지은이라는 이름을 받아왔다.
분녀는 아기에게 혼신의 사랑을 쏟아 부었다. 사랑과 정에 굶주렸던 그녀는 지은이에게 엄마로써 줄 수 있는 사랑을 깡그리 수혈했다.
그러나 지은의 운명 역시 그녀의 소원과는 달리 불행했다. 그 애의 뒤에는 늘 아비도 없는 사생아요, 빨갱이종자요 하는 온갖 누명들이 악마의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딸애를 괴롭혔다.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지은은 자신에게 억울하게 강요된, 부당하게 지워진 불행의 원인을 엄마에게 전가시키며 그녀를 원수처럼 저주하고 원망하기 시작했다.
“왜 날 세상에 태어나게 했어. 엄마의 불행을 위안하고 아픔을 달래기 위해 내가 필요했던 거지. 엄만 이기적이고 그래서 지독해. 아버지도 모르는 날 왜 낳았냐 말이야?”
이젠 낳아 준 것이 죄가 된 것이다.
분녀로선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 …
노인의 이야기는 끝났다.
그러나 좌중은 물 뿌린 듯 조용했다.
노인은 땅이 꺼질듯 무거운 한숨을 후, 내쉬더니 담배를 붙여 물었다.
“그때 내 조카를 길러준 양부가 죽으면서 내 누님이 들려준 이야기를 수양딸에게 죄다 알려주고 돌아가셨다는구나. 그래서 조카도 뒤늦게야 KBS방송을 통해 이 큰애빌 찾게 된 거고. 그러니 인젠 네 어미와 넌 나와 아무런 혈연적 관계도 없는 남남이 되어 버린 거다. 이제는 이 늙은이가 너희들 결혼을 하라말라 간섭할 자격도 없어졌다. 너희들 소신껏 알아서 결정해라. 그리고 어미나 너에겐 미안하다!”
노인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손으로 구들을 짚고 무거운 상체를 들어 올리려고 안간힘을 썼다.
준호가 다가가 얼른 부축해주었다.
“할 말은 다 했으니 난 이만 가봐야겠다.”
노인은 옆에서 거들어주는 준호를 밀어내며 스스로 미닫이문으로 다가가 신을 신었다. 그리고는 그때까지도 현관에 시립해 있던 명철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계단을 내려갔다. 노인은 한사코 준호의 부축을 거절했다. 스스로 난간을 잡고 한 계단, 한 계단 힘겹게 아래로 내려갔다. 택시를 불러 모시려고 했지만 그마저 거절하고 그냥 목발을 짚고 멀리 지하철역을 바라고 걸어갔다. 잘려나간 오른다리의 바짓가랑이가 바람에 펄럭펄럭 날렸다. 노인은 지하철역으로 내려갈 때까지도 바래주는 준호와 명철을 한 번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져버렸다. 노인은 영웅이면서 동시에 죄인이기도 했다.
모두들 일종의 허탈감에 빠져 침묵만 지키고 있었다. 빨갱이도 아니면서 두 세대에 걸쳐 억울하고 부당하게 가족과 사회에서 불공정한 대우를 받았으니 그에 대한 물질적, 정신적 손해보상은 어디 가서 받는단 말인가?
“어떻게 이런 비극이 발생할 수 있는 거지. 지금까지 소외받고 버림받은 우리 마음속의 상처는 누가 치료해주고. 너무 억울해. 분하고 원통해! 어찌 이럴 수가?!”
지은은 갑자기 울부짖으며 오열하기 시작했다.
“오빠, 이래도 돼. 죄 없는 사람이 이렇게 무시당해도 되냐고?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가 어떻게 두 세대의 억울한 아픔과 상처를 보상할 수 있어.”
지은은 술을 가져오더니 안주도 없이 마시기 시작했다.
명철이 눈치 빠르게 냉장고 안에서 마른안주를 꺼내 놓았다.
“난 지금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것 같아. 사회와 인간을 증오해.. 어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냐 말이야 글쎄. 난 인간과 사회에 배신감을 느껴!”
엉엉 소리 내어 통곡했다.
“너무 슬퍼하지 마. 이 모든 게 전쟁이 낳은 비극이고 그 후유증이 오늘까지 이어진 게 아니겠어.”
“글쎄. 하필 그 비극과 후유증이 왜 우리 모녀의 머리 위에 떨어지는가 말이야. 왜?”
“그러나 오늘 지은이에게 하나의 사실만은 확실해졌잖아. 지은은 비극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았고 그 자유의 첫 선물로 명철 씨와의 결혼이 성사되게 되었다는 거. 이제 그만 과거를 망각에 묻어 버려. 현실에서 얻은 것으로 만족할 줄 알아야 돼. 아니면 지은이도 할아버지를 죽인 원수인 칠성노인을 복수할거니?”
“억울한 버림을 받았잖아. 두 세대나. 그것도 아무런 죄도 없이. 이대로 덮어두기엔 너무나 억울하잖아. 반드시 누군가 책임져야 돼. 그냥 지나치고 용서하고 묵과하기엔 우리가 겪었던 아픔이 너무나 컸어.”
“남의 책임을 묻기 전에 저마다 자신의 책임을 잘 지키면 이 사회에는 억울한 사람들의 불행이 그만큼 감소되지 않을까.”
“전쟁은 끝나지 않았어. 아직 끝나지 않았어. 전쟁은 계속되고 있는 거야.”
준호는 이 순간 그녀의 귀에는 어떤 말도 들리지 않을 것임을 깨닫고 입을 다물어버렸다. 그렇다.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평화협정이 아닌 정전협정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전쟁은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뿐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그것은 현재진행형이지 과거완료형은 절대 아니다. 그리고 전쟁의 상처 역시 아직도 아물지 않았다. 계속해서 곪고 썩고 주기적으로 통증이 발작하고 있다.
술잔 두 개를 더 가져왔다. 그리고는 말없이 그녀의 끝없는 불평불만을 들어주며 술을 마셨다.
아픈 사람은 신음소리를 내기 마련이다.
그것은 아주 정상적인 생리반응일 뿐이다.
그리고 그 신음소리를 묵묵히 들어주는 것도 상처를 아물게 하는 일종의 유효한 약이 될 수 있다. 세월이 남긴 상처는 세월만이 치료해 줄 수 있다. 그러자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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